제주도교육청 마음치유프로그램  활동 사진.  [제주도교육청 제공]
제주도교육청 마음치유프로그램  활동 사진.  [제주도교육청 제공]

[제주도민일보 최지희 기자] 제주 청소년의 자살시도 건수가 최근 3년 사이 눈에 띄게 증가했다. 통계만 보면 위기가 심화된 듯 보이지만 그 안에는 위기 신호를 더 세밀하게 포착하고 개입하는 정책 변화가 작용한 측면도 있다. 실제로 자살 시도가 사망으로 이어진 사례는 감소하고 있지만 제주 청소년의 삶의 질은 여전히 전국 하위권에 머물고 있어 정서적 기반을 떠받칠 구조가 취약하다는 현실은 변하지 않았다.

12일 제주도교육청 집계에 따르면 제주지역 학생 자살 시도 건수는 2023년 25건, 2024년 30건에서 올해 상반기(6월 30일 기준) 이미 31건으로 늘었다. 같은 기간 자살로 숨진 학생은 2023년 3명, 2024년 1명에서 올해는 한 건도 발생하지 않았다.

반면 전국적으로는 자살 사망 학생이 2023년 214명, 2024년 219명으로 오히려 증가했다. 이는 제주에서 학생 정서·행동 변화 등 위기 징후가 많이 포착되고 있지만 조기 개입과 지원을 통해 실제 사망으로 이어지는 경우는 줄고 있음을 보여준다.

제주도의회 교육위원회는 지난 7일 열린 제441회 임시회 제1차 회의에서 최근 학생 자살 시도 건수 급증 통계를 근거로 제주도교육청에 생명존중(죽음이해) 교육 강화를 주문했다. 그러나 학교 현장에서는 ‘위험이 커졌다’는 해석보다는 집계 방식의 변화와 대응 체계 강화가 수치 증가에 영향을 미친 것으로 보고 있다.

임지현 제주도교육청 학생마음건강센터 전문상담교사는 본보와의 인터뷰에서 “예전에는 자해를 자살 시도로 보지 않아 학교 내부에서만 관리했지만 지금은 조기 개입 체계가 자리 잡아 위험 신호가 더 자주 포착되고 있다”며 “신호를 발견하면 즉시 지원으로 연결하는 구조가 정착됐다”고 말했다.

이어 “과거에는 쉽게 은폐되던 학생들의 자해가 이제는 공식적으로 ‘위기 신호’로 인지돼 곧바로 개입이 이뤄진다”며 “그 결과 통계상 시도 건수는 늘었지만 개입 기회도 함께 확대됐다”고 덧붙였다.

◼ 제주 청소년 삶의 질 지표, 여전히 구조적 취약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은 지난 6월 12일 ‘제주지역 청소년 삶의 질 진단과 시사점’ 보고서를 발간하고 한국청소년정책연구원의 2023년 ‘아동·청소년 인권실태조사’ 원자료를 분석한 결과를 공개했다.

보고서에 따르면 제주 청소년의 평균 삶의 만족도는 7.04점(전국 10위), 행복감은 7.12점(전국 5위)로 겉보기에는 양호했다. 그러나 세부 집단별로 보면 양상이 다르다. 여학생의 삶의 만족도(6.59점)와 행복감(6.74점)은 남학생(각각 7.51점)보다 약 0.9점 낮았으며 전국 순위로는 만족도 14위, 행복감은 10위권 밖에 머물렀다.

학교급별로도 초등학교에서 중·고등학교로 갈수록 지표가 하락했고 특히 고등 여학생의 수치가 가장 낮았다.

경제 수준별 격차는 더 컸다. 경제 수준이 ‘낮다’고 응답한 청소년은 만족도 6.13점, 행복감 5.20점으로 전국 최하위권이었고 ‘높다’고 답한 집단은 각각 7.98점, 7.92점을 기록했다.

연구진은 ▲자기존중감 ▲신체·정신 건강 ▲부모·교사·친구의 사회적 지지 ▲학업 성취 ▲경제적 수준이 삶의 질을 결정짓는 핵심 요인이라고 분석했다. 자아 존중이 낮거나 건강 상태가 좋지 않고, 정서적 지지를 받지 못하며, 학업 성취가 낮고, 경제적으로 어려울수록 행복감이 크게 떨어진다는 것이다.

◼ 발견부터 추후관리까지...3단계 위기 대응 체계 가동

이 같은 상황에서 생명존중 교육만으로는 위기를 줄이는 데 한계가 있다. 위기 신호를 조기에 포착하고 개입과 이후 관리까지 이어지는 체계적 구조가 함께 작동해야 한다.

도교육청은 이를 위해 학생마음건강센터를 중심으로 예방부터 추후 관리까지 연결되는 3단계 위기 대응 체계를 운영하고 있다.

첫 단계인 ‘발견’ 단계에서는 정서행동특성검사 결과와 교사의 관찰, 또래나 보호자의 제보 등 다양한 경로를 통해 위험 신호를 수집한다. 응급 상황이 발생하면 학교와 도교육청, 병원, 경찰이 즉시 연계된다.

두 번째 ‘개입’ 단계에서는 초기면담 후 정신건강의학과 전문의, 임상심리사, 전문상담(교)사 등이 참여하는 사례회의를 열어 개입 계획을 세운다. 이후 주 1회, 최대 12회기에 걸쳐 상담을 진행하며 필요 시 종합심리평가를 실시하고 병·의원 치료비를 최대 70만원까지 지원한다. 가족 요인이 큰 경우에는 보호자를 대상으로 1대 1 양육 코칭을 제공한다.

마지막 ‘추후관리’ 단계에서는 상담이 종결된 이후에도 일정 기간 학생의 상태를 관찰한다. 전학이나 진급 시에는 사례를 새로 맡은 담당자에게 인계해 재개입 여부를 상시 점검하며 효과가 미흡할 경우 개입 계획을 다시 수립한다.

◼ 학생 맞춤형 프로그램으로 위기 차단

학생별 상황에 맞춘 맞춤형 프로그램도 촘촘하게 운영된다.

중·고등학생 대상 1대 1 정서역량 강화 프로그램 ‘마음자람’은 감정 인식과 조절 훈련을 8회기로 진행해 참여 학생의 94.4%가 “감정 표현과 인식에 도움이 됐다”고 응답했다.

초등학생을 위한 ‘마음치유’는 치유농장에서 7회기 활동으로 관계와 정서를 회복하도록 돕는다. 주의력이나 자기조절에 어려움이 있는 저학년에게는 12회기 놀이 기반 인지훈련 ‘생각자람’을 운영해 수업 집중력을 높인다.

위기 학생의 학급 복귀를 돕는 ‘정서위기학생 집단상담’은 학급 단위로 4회기 표준으로 운영되며 참여 학급의 80% 이상이 “학급 분위기가 좋아졌다”고 평가했다.

이와 함께 고위기 상황에 즉시 투입되는 ‘학생긴급심리지원’은 지난해 195명을 지원해 다수의 자해 재발을 막아냈다.

◼ 위기 전 선제 대응, 촘촘한 관계망이 해법

이처럼 개별 맞춤 프로그램이 성과를 내고 있지만 여성가족연구원의 보고서 결과는 여전히 우려를 남긴다. 청소년의 삶의 질 격차가 구조적으로 뿌리 깊게 존재하고 특히 여학생·고등학생·경제 취약층에서 심각하다는 분석은 향후 지원체계의 재설계를 요구한다.

학생 자살 사망 ‘0명’ 기조를 유지하고 자살 시도 건수를 줄이기 위해서는 집중 지원이 필요한 대상을 우선적으로 명확히 해야 한다. 특히 여학생, 그중에서도 고등 여학생의 낮은 자기존중감과 취약한 정신 건강 지표를 개선하기 위해 멘토링·심리 안정·진로 탐색을 결합한 패키지형 지원을 확대할 필요가 있다. 학교급별로는 초등에는 예방과 관계 형성, 중등에는 자아정체감 확립과 위기 대응 훈련, 고등에는 진로 불안 완화와 회복 프로그램을 중심으로 한 차등 설계가 요구된다.

경제 취약 가구 학생에게는 상담·치료에 더해 실질적인 비용 지원과 문화·진로 체험, 맞춤형 학습 지원을 함께 제공해야 효과를 높일 수 있다.

조기 발견은 ‘우연’이 아닌 ‘제도’로 만들어야 한다. 담임·보건·상담교사가 동일한 체크리스트와 의뢰 절차로 움직이고 클릭 한 번에 센터·의료·복지로 연결되는 상시 라인을 갖춰야 한다. 특히 밤과 주말에도 작동하는 연락망을 갖추면 평일 외 시간대에 발생하는 학생의 위기 신호를 놓치지 않고 즉시 개입할 수 있어 재발 위험 기간을 단축할 수 있다.

마지막으로 평가는 숫자의 질을 바꿔야 한다. 교육 횟수와 참여 인원 대신 재시도율, 무자해 기간, 출석·학업 회복 정도, 교사와 또래의 신뢰도 등 복합 지표로 성과를 추적함으로써 프로그램이 학생들의 생활과 행동에 실질적인 변화를 가져왔는지를 확인해야 한다.

결국 현재 학생 자살 시도 건수 증가는 “문제가 커졌다”는 경고이자 “보이지 않던 문제가 드러났다”는 신호다. 어느 쪽이든 해법은 같다. 위기 신호를 더 빨리 잡아내고 더 알맞게 개입하며 더 오래 붙들어주는 것이다. 그리고 그 바탕에는 학생이 기댈 수 있는 정서적 자원, 신뢰할 관계망, 최소한의 경제적 안전이 놓여 있어야 한다. 그 구조를 단단히 만드는 일, 거기서부터 통계의 방향이 바뀔 것이다.

“예전엔 보이지 않던 아이들의 신호가 이제는 드러나고 있다. 힘들다고 말할 수 있는 환경이 마련된 만큼 그 손을 놓지 않고 끝까지 함께 가는 것이 우리의 역할”-임지현 제주도교육청 학생마음건강센터 전문상담교사

누군가 끝까지 곁을 지키고 귀 기울여줄 때 그 순간이 회복을 여는 첫걸음이 된다. “두렵다”, “버겁다”라는 한마디는 상처를 이겨내 보겠다는 작은 결심이자 도움을 청하는 신호다. 제주도교육청 정서회복과 학생마음건강센터는 오늘도 그 신호를 놓치지 않기 위해 보이지 않는 위기 속 아이들의 곁을 지키고 있다. 주저하던 손길이 그곳으로 닿아 다시 걸어갈 힘을 얻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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