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3평화재단에 설치된 ‘비설(모녀상)’ 전경
4·3평화재단에 설치된 ‘비설(모녀상)’ 전경

[제주도민일보 최지희 기자] 제주도의회가 지난 25일 제436회 임시회 본회의에서 ‘제주특별자치도 명예도민 선정 및 예우에 관한 조례 일부개정조례안’을 가결했다.

이번 개정안은 제주4·3을 왜곡하거나 사회적 물의를 일으킨 인물에 대해 명예도민 위촉을 취소할 수 있도록 명문화한 것으로 제도의 상징성과 공공성을 지키기 위한 최소한의 제도적 장치를 마련했다는 점에서 의미가 크다.

개정안은 취소 사유를 보다 명확히 규정했다.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에 관한 특별법’ 제13조에 해당하는 4·3 역사 왜곡 행위 ▲사회적 물의를 일으켜 제주도 명예를 실추한 경우 ▲공적이 허위로 밝혀진 경우 ▲국가안전에 관한 죄를 범해 형을 선고받거나 적대지역으로 도피한 이력 ▲사형·무기 또는 1년 이상의 징역이나 금고형이 확정된 경우 등이 포함됐다. 이는 명예도민이라는 지위가 단순한 예우가 아니라 도민 사회의 가치와 기억을 공유할 수 있는 자격이라는 점을 명확히 한 것이다.

그간 명예도민 제도는 공헌자에 대한 상징적 예우로 운용돼 왔으나 제주4·3을 부정하거나 희생자를 모욕한 인물에게조차 제도상 아무런 제재 없이 명예도민 자격이 유지되는 사례가 발생해 논란이 일었다. 이는 도민사회의 역사적 정체성과 공동체적 신뢰를 훼손하는 구조적 허점이었다.

제주4·3은 단지 지역적 비극이 아니다. 지난 1947년 3월 1일부터 1954년 9월 21일까지 제주에서 벌어진 국가 공권력의 과잉 대응과 진압 과정에서 수많은 민간인이 무고하게 희생당한 사건으로 이는 ‘제주4·3특별법’에 따라 대한민국 정부가 공식적으로 인정한 현대사의 국가폭력 사건이다. 오랜 침묵과 왜곡의 시간을 지나 유족과 지역사회의 끈질긴 노력 끝에 진상규명, 희생자 인정, 국가 사과, 명예회복이라는 과정을 통해 이제야 비로소 공동체적 정의와 화해의 길 위에 놓이게 된 역사다. 그런 4·3을 왜곡하거나 악의적으로 정치화한 인물에게 명예도민 자격을 유지시킨다는 것은 공동체가 지켜온 가치와 정의를 스스로 부정하는 일이다.

일각에서는 이번 개정이 표현의 자유를 침해할 수 있다는 우려도 제기된다. 그러나 이 조례는 발언이나 의견 자체를 금지하거나 처벌하는 것이 아니다. 공동체의 이름으로 부여한 명예가 계속 유지될 수 있는지를 공공의 기준에서 판단하겠다는 최소한의 조치다. 명예는 권리가 아니라 책임이며 자유는 공동체적 신뢰 위에서만 보장된다.

이제 남은 과제는 제도가 실제 상황에서도 공정하고 일관되게 적용될 수 있도록 운영 체계를 정비하는 일이다. 자격 취소 사유에 대한 구체적 기준과 명확한 판단 절차, 정치적 오·남용을 막을 수 있는 객관적인 심사 체계, 그리고 도민 사회의 공감대를 반영할 수 있는 투명한 행정 운영이 함께 뒤따라야 한다.

명예는 아무에게나 주어질 수 없다. 특히 역사의 진실을 부정하고 공동체의 아픔을 가볍게 여기는 이들에게는 더더욱 그렇다. 이번 조례 개정은 특정인을 겨냥한 ‘제재’가 아니라 제주의 역사와 함께할 수 있는 자격에 대한 사회적 책임을 다시 확인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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