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최지희 기자] 제주도교육청이 추진 중인 특성화고 학과 개편의 윤곽이 처음으로 드러났다. 지난 2일 발표된 연구용역 1차 보고회를 통해 2027년 개교 예정인 제주미래산업고(가칭)와 성산고의 전환 학과 구성 초안이 공개된 것이다.
도교육청은 이 초안을 바탕으로 지역사회의 다양한 의견을 수렴해 오는 7월 최종안을 확정할 계획이라고 밝혔다. 하지만 현재 공개된 구성안과 그 근거가 교육 현장과 산업계 모두에 충분히 납득될 수 있는 수준인지에 대해서는 여전히 신중한 검토가 필요하다.
이번 개편안은 제주대학교 산학협력단의 연구용역 결과를 바탕으로 마련됐다. 중학생과 학부모는 ‘조리’와 ‘디지털콘텐츠’ 분야를, 산업계는 ‘AI’와 ‘해양’ 분야를 각각 희망 및 필요 분야로 응답했으며 이를 반영해 제주미래산업고에는 ▲스마트푸드 ▲스마트콘텐츠 ▲스마트경영 ▲스마트팜 학과가, 성산고에는 ▲해양운항·시스템 ▲해양서비스경영 학과가 제시됐다.
수요 간극을 조율하며 학과를 설계하려는 시도 자체는 분명 의미가 있다. ‘조리’나 ‘디지털콘텐츠’, ‘해양운항’ 등 학생과 학부모가 가장 높은 선호를 보인 분야들이 구성안에 일부 반영된 점은 긍정적으로 평가할 수 있다. 그러나 현재 단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은 제안된 학과들이 실제 지역 산업과 직업 세계에서 얼마나 현실적으로 작동 가능한가다.
보고서에서 강조하는 ‘미래산업 인재 양성’이라는 구호는 매력적이다. 하지만 그 기반이 되는 지역의 현실은 녹록지 않다. 도내 기업의 98% 이상이 종사자 50인 미만의 소규모 업체이며 관광과 농수산업이 지역경제의 뿌리다. 이 구조에서 AI, 메타버스, 스마트경영 분야의 고졸 인력을 수요할 기업이 얼마나 존재하며 이들이 실제 채용으로 이어질지에 대한 정확한 수요 예측과 기업 협력체계는 충분히 검토되지 않았다.
의견 수렴 방식도 보완이 필요하다. 다양한 집단을 대상으로 설문조사를 진행했다고 밝혔지만 해당 조사는 대부분 정량적 설문에 그쳤고 보고서만으로는 구체적인 협의 구조나 숙의 방식이 어떻게 마련됐는지 파악하기 어렵다. 학과 개편이 학생 진로와 직결된다는 점에서 의견 수렴은 단순한 절차의 문제가 아니라 정책의 신뢰와 타당성을 좌우하는 핵심 요소다.
다행히 도교육청은 이번 발표가 ‘초안’에 불과하며 앞으로 지역사회 의견을 수렴해 최종안을 마련하겠다는 입장이다. 그렇다면 지금부터가 진짜 시작이다. 단순한 설명회나 서면 수렴으로는 부족하다. 학부모와 학생, 교사, 산업체가 직접 참여하는 숙의형 공론화 기구를 통해 각 학과가 지닌 교육적 의미와 진로 연결 가능성에 대해 충분히 논의하는 장이 열려야 한다.
‘학생 맞춤형 직업교육체제’라는 목표가 공허한 구호에 그치지 않으려면 지금 단계에서부터 정밀하고 설득력 있는 정책 설계가 필요하다. 초안은 공개됐다. 이제 과제는 그 초안이 교육 현장과 지역사회에 공감받는 실현 가능한 안으로 다듬어질 수 있도록 과정을 투명하고 충실하게 밟아나가는 일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