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도민일보 최지희 기자] 제주도가 전국 최초로 광역자치단체 단위의 ‘건강주치의 제도’ 도입을 본격 추진하고 있다. 지난 24일 열린 도민공청회에서는 올해 1월부터 진행된 실행연구 결과를 토대로 설계된 ‘제주형 건강주치의 시범사업 실행모델’이 공개됐다. 도는 26일 추진위원회를 거쳐 최종안을 확정하고 오는 7월 시범 도입을 목표로 세부 실행계획 수립에 나설 계획이다.
이번 모델은 65세 이상 노인과 12세 이하 아동을 대상으로 한다. 의료 접근성이 낮은 읍면지역과 제주시 삼도1동 등 7개 권역이 시범지역으로 설정됐고 환자는 주치의를 직접 등록해 건강상담, 만성질환 관리, 방문진료, 복지 연계 등 10개 항목의 포괄적 서비스를 주기적으로 받는 방식이다. 주치의에게는 등록환자 수와 활동 내역에 따라 정액 수가와 성과 보상, 방문 가산 등 차등화된 인센티브가 제공된다.
제도 설계의 방향은 분명하다. 기존의 병원 중심, 치료 중심 의료체계에서 벗어나 삶 가까이에서 건강을 지키는 예방 중심의 일차의료체계로의 전환을 꾀하고 있다. 고령화가 빠르게 진행되고 의료 공백이 큰 지역이 많은 제주에서 이 시도는 시의적이고 절실한 선택일 수 있다.
그러나 제도의 설계가 곧바로 현실에서 작동하는 것은 아니다. 공청회 현장에서 제기된 지적들도 대부분 이 점을 향하고 있다. 무엇보다 주치의 역할을 실제로 수행할 수 있는 의료 인력을 어떻게 확보할 것인지, 진료와 행정 부담이 이미 큰 1차의료기관이 개별 환자를 장기적으로 관리할 수 있는 여건이 마련돼 있는지, 그리고 보건소, 병의원, 복지기관을 하나의 체계로 묶는 지역 단위 거버넌스 구축이 현실적으로 가능한지에 대한 의문이 제기됐다. 이처럼 제안된 모델은 제도 설계로서의 방향성과 구조를 갖췄을지 몰라도 현장 적용을 위한 구체적 방안과 실현 전략은 여전히 보완이 필요하다는 지적이 뒤따랐다.
여기에 더해 제도는 시작부터 형평성의 한계를 안고 있다. 노인과 아동을 우선 대상으로 삼은 점은 정책 실험으로서 이해할 수 있지만 실제 의료 부담이 집중된 중장년층과 복합적 건강위험에 노출된 취약계층은 제도 밖에 놓일 수 있다. 시범사업 이후 본사업으로 확대하려면 대상자 확대에 대한 중장기 계획과 건강 형평성을 고려한 설계 보완이 반드시 필요하다.
또한 이 제도가 단지 행정적 구조로만 추진된다면 도민의 삶 속에 뿌리내리기 어렵다. 건강을 장기적으로 맡길 수 있는 ‘주치의’라는 개념이 실질적인 신뢰를 얻기 위해서는 제도의 취지와 방식에 대한 충분한 설명과 설득, 그리고 의료계와 주민의 자발적 동참을 이끌어내는 과정이 반드시 필요하다.
제도의 성패는 설계가 아니라 일상 속에서 얼마나 안정적으로 작동하느냐에 달려 있다. 도민의 건강을 함께 책임질 수 있는 주치의가 현실 속에서 자리잡을 때 제주형 건강주치의는 비로소 제 몫을 하게 될 것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