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상 상황 영향 큰 ‘불’ 대신 ‘빛’으로 대체했음에도 강한 바람에 가로 막혀
시대·기후 변화에 따른 새로운 형태 축제로 전환을 위한 도민 의견 수렴 필요
[제주도민일보 이서희 기자] 옛 목축문화를 현대적으로 재해석한 제주의 대표적인 문화관광축제인 ‘제주들불축제’가 중대한 기로에 섰다.
기상 등 외부적 영향을 최소화 하기위해 불을 없애고 빛으로 채운 축제가 또 기상 상황에 가로막히면서 축제를 계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물음표까지 찍히고 있다.
17일 제주시에 따르면 시는 지난 14일부터 16일까지 열릴 예정이었던 제주들불축제의 2, 3일 차 축제 일정을 전면 취소했다.
축제 2일 차인 15일 제주 전역에 강풍특보가 내려져 행사장에는 최대 순간풍속 초속 20m 이상의 강한 바람이 몰아쳤다.
이에 따라 행사장에 설치된 천막과 집기 등이 파손되고 바람에 날리면서 현장은 그야말로 아수라장이 됐다.
이에 김완근 제주시장 주재로 제주서부소방서, 제주지방기상청, 제주서부경찰서 등과 상황판단 회의가 열렸고 전면 취소 결정이 내려졌다.
시는 “시민의 안전을 최우선으로 고려해 부득이하게 행사 취소를 결정했다”라고 밝혔다.
실제 들불축제 안전관리계획에 따르면 최대순간풍속 초속 20m 이상 시에는 행사 취소 또는 연기하도록 돼 있다.
■‘디지털 탈바꿈’에도 날씨에 발목 잡혔다
지난 1997년 첫선을 보인 제주들불축제는 매해 기상 상황에 따라 축제 성패가 판가름 났다.
지난 2019년에는 제주들불축제 기간 비가 내려 프로그램이 대거 축소됐다.
또 2016년과 2009년에도 비와 강한 바람 등 악기상으로 행사 일정이 취소 또는 연기됐다.
무엇보다 2023년까지 무려 3차례나 기상 상황으로 인해 불 없는 축제가 이뤄져 관람객들의 아쉬움을 샀다.
특히 2023년부터 전국에 대형 산불이 이어지면서 제주들불축제에 대해 곱지 않은 시선이 쏟아졌다.
건조하고 바람이 많이 부는 3월, 오름에 불을 직접 놓아 대형 산불 위험을 높인다는 이유에서였다.
실제 전국에 산불이 연이어 발생하고 정부에서 산불방지 대국민 담화문까지 발표하자 2023년 제주들불축제 오름 불놓기는 행사 직전 취소되기도 했다.
이에 더해 환경오염 문제로 오름 불놓기 행사에 대한 폐지를 요구하는 목소리는 더욱 커졌다.
결국 같은 해 4월, 제주들불축제에 대한 숙의형 정책 개발이 청구됐고, 도민참여단 원탁회의 결과에 따라 지난해 오름 불놓기 폐지가 결정됐다.
대신 제주시는 미디어파사드 등 빛으로 불의 빈자리를 빼곡히 채우기로 했고 달집태우기 등 불과 관련된 행사도 모두 디지털로 대체했다.
이 때문에 시는 행사 개최 일주일 전 악기상 예보에도 성공적인 개최를 자신했다.
하지만 새롭게 단장한 행사는 첫날 개막식만 해보고 강풍에 가로막혔다.
산불 위험도, 환경오염 우려도 아닌 시설물 날림으로 인한 안전사고 위험이 가장 큰 원인이었다.
축제 정체성을 흔들만한 큰 결정을 내린 것이 무용지물이 된 셈이다.
■제주 대표 축제 명맥 잇기 위해선 ‘수술대’ 올라야
새롭게 바뀐 제주들불축제가 또 악기상에 좌절하면서 축제 구조에 대한 대대적인 개편이 필요하다는 목소리에 힘이 실린다.
일각에선 새별오름에만 집중된 행사를 분산시켜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과거에도 비나 강풍으로 피해를 본 것은 행사장 천막이 대부분이었다.
물론 행사장 주무대도 강풍에 날리는 등 피해가 있었으나 메인 행사인 오름 불놓기는 시간을 앞당기거나 연기했을 뿐 큰 문제가 없었다.
제주시가 올해 불놓기 대신 하려고 했던 미디어파사드 공연 역시 비나 강풍에 큰 문제가 되지 않았다.
악기상 예보에도 제주시가 행사 연기 등을 검토하지 않은 것이 이에 대한 반증이다.
이 때문에 행사장에 집중된 천막을 제주시 내 곳곳에 분산 배치하고 피해를 줄이는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는 것이다.
제주들불축제를 지속해야 하는지에 대한 회의적인 시각도 있다.
행정의 노력과 별개로 제주들불축제가 관광객을 끌어들이는 관광축제에서 지역축제로 점점 퇴색하고 있다는 이유에서다.
과거 오름 불놓기와 제주 전통 공연을 중심으로 이뤄졌던 축제는 최근 들어 먹거리와 마을 홍보가 주가 되면서 차별점을 잃고 도외 지역 관람객을 끌어들이지 못한다는 것이다.
결국 시대적 변화에 발맞춘 완전히 새로운 축제로 탈바꿈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그러기 위해선 무엇보다 축제에 대한 충분한 도민 의견 수렴과 고민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보인다.
■지역민 피해 해결 시급…예산 낭비 비판은 불가피
제주들불축제 행사 전면 취소로 인해 장사를 제대로 하지 못한 지역 상인들의 손해는 우선 해결해야 할 문제다.
이번 축제가 음식과 특산물 판매에 집중했던 만큼 식재료 피해가 상당한 상황으로, 손해액 보전 등을 위한 대책 마련이 시급한 상황이다.
무엇보다 예산 낭비 비판은 불가피할 것으로 보인다.
불을 대신한 ‘빛 축제’ 개최를 위한 용역과 행사 준비에는 막대한 예산이 투입됐다.
불을 대신한 디지털 축제로 운영하기 위한 대행 용역비만 4억원이지만, 개막일 하루를 빼고 제대로 된 행사도 하지 못한 채 축제에 투입된 예산은 ‘빛’이 아닌 제주시민의 ‘빚’으로 남게 됐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