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까막눈 설움 벗는 늦깎이 학생들…⑤
평생소원 ‘글공부’ 이룬 박점례씨 “일찍 올 걸…지금이 재밌고 행복해”

▲ 동려평생학교 초등반에 재학 중인 박점례(80)씨.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사랑하는 아들 창우에게. 추운 겨울도 어느덧 지나가고 봄이 왔구나. 너와 애들도 다 잘 있지?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써본다. 에미(어미)는 일본에서 보다 바쁘게 살지만 제주에서 사는 것이 더 행복하다. 에미는 동려평생학교를 열심히 잘 다니고 있다. 나이는 많이 먹었지만 공부하는 것이 참 행복하다. 너도 건강하고 행복하게 지내기 바란다.’
‘추신. 창우야 보고싶구나. 어멍(엄마) 아들 사랑한다. 고생하며 사는 네가 더 생각난다.’
‘제주에서 에미가’ 2014년 3월22일

태어나서 처음으로 아들에게 편지를 썼다. 학교를 다닌 지 4년 만이다. 학교에 다니는 것도 행복하지만 아들에게 편지를 쓸 수 있어 더 행복하다.

어버이날을 며칠 앞두고 만난 박점례(80)씨는 늦게나마 학교를 다니게 된 얘기를 하던 도중 손녀에게, 아들에게 쓴 편지를 꺼내 보이며 눈시울을 붉혔다. 배울 수 있는 기쁨과 타국에 있는 아들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이 순간 교차한 것이다.

2011년 봄. 일흔여섯의 나이에 다시 제주 땅을 밟았다. 공항 밖을 나서니 서늘한 바람이 살결에 와 닿았고 사람들의 말소리가 귓가를 맴돌았다.

무려 23년을 그리워했던 풍경이 눈앞에 펼쳐졌다. 마치 청각장애인처럼 듣지도, 말하지도 못했던 일본에서의 삶을 정리하고 다시 돌아온 고향은 여전히 따뜻했다.

“마흔일곱에 남편을 잃고 7년을 아등바등 살았어요. 그러다 1988년 자식들이 있는 일본으로 건너갔죠. 근데 도통 말이 통해야 말이죠. 그저 집에만 틀어박혀 지냈어요”

가내수공업을 하고 살림을 돕고 손주를 돌보는 것이 일상의 전부였다. 말이 통하는 벗 한 명도 없이 그저 손주 녀석들 커가는 걸 바라보는 낙으로 하루하루를 흘려보냈다.

그러던 어느 날 초등학교 1학년인 손주가 100점짜리 시험지를 가져와선 대뜸 ‘할머니! 이거 읽을 수 있어요?’라고 물었다. 순간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얼마나 못 배웠으면 손주한테 이런 소릴 들을까 싶더라고요. 일본말도 못하고 한국말은 제대로 쓸 줄도 모르니 얼마나 속이 상했는지 몰라요”

그래서 결심했다. 한국에 돌아가 평생소원이었던 ‘글공부’를 하기로 말이다. 제주에 오자마자 짐을 던져두고 동려평생학교에 갔다. 그렇게 난생 처음으로 ‘학교’에 발을 들였다. 슬하에 2남2녀가 있지만 단 한 번도 자식들이 다니는 학교에 가 본 적이 없다.

“애들이 학교에 다니던 어느 날이었어요. 동네 아줌마가 나더러 ‘애가 1등을 했는데 어째서 학교에 얼굴 한 번 내비치지 않느냐’고 나무라더라고요. 그때 알았어요. 작은 딸이 일제고사에서 1등을 했다는 사실을요”

평소 내성적이었던 딸이 집에 알리지 않은 것이다. 헌데 소식을 전해 듣고도 아는 체를 할 수 없었다. 학교에 가는 것이 겁이 났기 때문이다.

“아무리 자식이 공부를 잘해도 떳떳이 갈 수가 없더라고요. 뭘 알아야 챙겨줄 텐데 그럴 수가 없잖아요. 가서 괜히 창피라도 줄까봐서….”

자식들에게 늘 미안한 마음이었다. 학교에서 ‘부모님의 학벌’을 써오라는 말에 큰 딸은 ‘초졸’이라고 거짓으로 써내곤 했다. 시간이 한참 흐른 뒤에야 알게 된 사실이다.

못 배워서 서러웠던 날이 어디 이뿐이겠는가. 겹겹이 쌓인 서러움을 안고 드디어 학교에 왔다. 하지만 늦은 나이에 시작한 공부는 좀처럼 진도가 나가지 않았다.

“자식들 학교 보내면서 왜 배울 생각을 못 했나 몰라요. ‘조금 더 일찍 올 걸’하고 매일 후회해요. 일흔살만 됐어도 머리가 더 잘 굴러갔을 텐데 말예요”

▲ 지난 3월22일 막내아들에게 쓴 편지.
배움에 대한 갈망은 더욱 깊어졌지만 몸이 따라주지 않았다. 2013년 큰 수술을 받으면서 1년간 학교를 쉬어야만 했다. 여느 날과 마찬가지로 지루하게 흐르던 어느 날 밤, 평생학교 선생님이 집 문을 두드렸다.

“쉬는 동안에도 꾸준히 글을 읽어야 한다면서 직접 동화책을 갖다주셨어요. 일과를 마치고 들른 모양이더라고요. 할머니들 가르치느라 안 그래도 힘드실 텐데 그렇게 마음써주니 얼마나 고마웠는지 몰라요”

‘끝까지 공부를 놓지 말라’는 선생님의 응원에 힘입어 이듬해 자리를 털고 일어났다. 허리가 아파 거동이 불편했지만 개의치 않고 다시 씩씩하게 학교에 갔다.

“3년이 넘게 공부했는데 아직도 초등반이예요. 여전히 수학이랑 영어는 어렵더라고요. 그래도 이제 읽고 쓰는 건 웬만큼 할 줄 알아요”

누구보다 뒤지지 않는 열정으로 지난해에는 전남 군산에서 열린 ‘도전, 실버 골든벨’에 나가기도 했다. 동려평생학교 학생들을 대표해서 말이다. 비록 예선탈락이라는 쓴맛을 맛봐야했지만 선생님과 동료들과 함께한 군산에서의 밤은 참 따뜻했다.

“주변에서 누가 ‘일본에서 살 때 좋았느냐’고 물으면 늘 ‘지옥이었다’고 말해요. 그때는 한 마디로 말해서 바보로 살았어요. 이렇게 재미있게 사는 방법이 있는 줄도 모르고 말예요”

박씨는 요즘 매일 ‘치매에 걸리지 않게 해 달라’고 빌고 또 빈다. 쓰고 싶은 글을 마음대로 쓰기 위해선 글자를 까먹어선 안 되기 때문이다. 일본에 있는 자식과 손주들에게 편지를 써야하기 때문이다.

▲ 2011년 손녀 레이꼬에게 쓴 편지.

레이꼬에게

그간 잘 지내고 있지?
유이와 니꾸이 눈에 선하다. 보고 싶구나!
제주에 와서 산 지도 열 달이 다 되었다. 처음 육개월은 힘들었다. 지금은 은인 덕택에 넓은 집에서 살고 있다.
아침 4시에 일어나서 노인복지관에 가는 것이 하루 시작이다. 그곳에서 운동을 하고 점심 준비를 도와준다. 일주일에 두 번 요가를 낮에 한다.
아프면 돈 걱정 없이 병원에 가서 치료 받고 약도 타온다. 점심은 노인복지관에서 먹는다.
저녁 6시부터 9시까지는 학교 가서 한글과 수학을 배우고 있다. 공부하고 싶었던 평생 소원이루어져서 기쁘다.
토요일부터 일요일까지가 집에 있는 시간이 많다.
일본에 사는 가족들이 보고 싶고 많이 외롭다.
그럴 때마다 고마운 학교 선생님, 담임 선생님과 왕언니라고 부르면서 따뜻하게 대해주는 소망반 사람들 생각하면서 책도 들여다보고 밀렸던 숙제를 하다 집 가까이 살고 있는 진실이가 찾아와서 딸처럼 이것저것 챙겨준다. 진실이는 옛날부터 할머니가 일본가기 전부터 알고 지낸 어머니 같이 생각하는 ‘어르신’의 딸이다.
레이꼬야!
할머니는 외로운 것 빼고는 이 제주 생활에 만족한다. 그러니 할머니 걱정하지 말고 열심히 살아다오.
어느덧 11월 올 한 해가 저무는구나. 할머니는 이 세상에서 가장 레이꼬를 사랑한다. 다시 만날 날을 기원하며 이만 줄인다.

2011년 11월19일 할머니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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