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까막눈 설움 벗는 늦깎이 학생들…③
질경이처럼 살아 온 김을림씨, 60세에 배운 글에 ‘팬레터’까지 받아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제게도 이런 날이 오다니….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목이 메여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물이 앞을 가려서 꽃다발을 들고 와 준 자식들의 얼굴도 보이지 않았다. 단상에 올라 거듭 고개 숙여 감사인사를 했다.

인사할 때마다 정수리를 비집고 자란 흰머리가 관객석을 향했지만 신경쓸 겨를도 없었다. 60년만에 처음 느껴보는 감정에 어찌할 바를 몰랐다.

“‘내가 이럴 수 있다니’ 머릿속이 하얬어요. 상타는 건 그저 남의 얘긴줄로만 알고 살아왔는데 김.을.림 이름 석 자가 상장에 떡하니 써 있더라고요”

난생 처음 상이란 걸 탔다. 지난해 9월8일 ‘세계 문해의 날’을 기념해 국가평생교육진흥원이 개최한 ‘전국 성인문해교육 시화전’에 시를 출품해 당당히 수상의 영예를 안은 것이다.

“글을 알게 된 것만으로도 감사한데 이런 ‘호사’를 누려도 되나 싶었죠”

아무런 기대도 없이 쓴 시가 수상작으로 선정됐다는 소식을 들었을 땐 ‘이게 무슨 소린가’ 싶었다. 상을 받기 위해 육지행 비행기에 올라서야 실감이 났다. 진짜 하늘을 나는 기분이었다.

많은 사람들의 박수갈채를 받으며 세종문화회관 뜨락에서 시상식을 치렀다. 볕이 유난히도 좋은 가을 날이었다.

▲ 동려평생학교 중등반에 재학중인 김을림씨. 
늦깍이 중학생 김을림(61)씨.

서귀포시의 한 시골마을에서 8남매 중 첫째로 태어났다. 그래서인지 포기해야만 하는 것들이 너무 많았다.

“부모님도 학교에 가면 안 된다고 하셨어. 배우고 싶은데 배우고 싶다는 말 한 번 못 꺼내봤지. 학교에 다니는 남동생한테 물어봤지. '아버지', '어머니'는 어떻게 쓰냐고 말이야”

그렇게 어깨 너머로 글자를 익혔다. 학교 문턱은 단 한 번도 넘어본 적 없지만 간판 정돈 읽을 수 있게 됐다. 그런데 쓸 줄은 몰랐다. 글자를 통으로 외웠기 때문이다.

“받침이 뭔지 알아야 쓰지. 쓰는 건 엄두도 못냈어. 그래도 그림처럼 외워둔 덕분에 생활하는데 큰 지장은 없었지”

결혼하고, 애 낳고, 돈 벌면서 애들을 키웠다. 애들이 커서 직장엘 보내고 결혼도 시켰다. 남들 사는 것처럼 그렇게 살았다. 힘들지 않은 삶이 어디 있겠으랴 위안 삼으며 버텼다.

다만 딱 하나 바라는 것이 있다면 기록할 수 없는 슬픔을 털어내는 것이었다.

“들에 가서 나무를 보면, 바람에 휘날리며서도 굳게 서 있는 모습이 꼭 나같다는 생각이 들었거든. 떠오르는 생각들은 너무 많은데 글자를 모르니 담아낼 수가 있어야지”

수많은 생각들을 깜깜한 세월에 흘려보내고 난 뒤에야 글을 배우게 됐다.

“마흔살쯤이었을까. 글이 너무 배우고 싶어서 평생학교에 오긴 왔는데 사는 게 힘들어서 계속 다닐 수가 없겠더라고. 어찌됐든 먹고 사는 게 먼저니깐 말야”

20여년이 흘러 ‘먹고 사는 일’을 걱정하지 않아도 되는 시절이 돼서야 다시 학교에 올 수 있었다. 삶이 슬슬 허무해질 무렵이었다.

시간만 나면 예습복습을 했고 머리맡에 공책을 펴두고 눈만 뜨면 글자연습을 했다. 닥치는대로 쓰고 소리내어 읽었다. 떠오르는 생각들을 담아내기 위한 노력은 오래지 않아 빛을 발했다.

남들보다 1년이나 일찍 검정고시를 통과해 중등반에 오른 것이다. 이제는 틀린 글씨 없이 일기도 쓰고, 불쑥불쑥 튀어나오는 생각들을 받아적을 수도 있다.

“길을 가다가도 생각나고, 친구들을 만나서도 생각나고, 잠자려고 누우면 생각나. 마음을 받아적는 일이 얼마나 재밌는 지 몰라”

질경이

질경이처럼 질긴 내 인생
질경이처럼 가냘프고 약해보여도
뿌리 많은 단단한 내 마음속에는
언제나 굳은 마음 뿐

모진 세월 속에
속앓이하며 살아온 내 인생
한 번쯤은 햇볕이 쨍하고 쬘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살아가는 내 청춘

언젠가는 나에게도
쨍하고 해가 뜨겠지
그날 졸업하는 날을 기다리며
오늘도 자신있게 살아갑니다

 (한국교직원공제회 이사장상 수상作)

 

그러던 어느 날 시를 써오라는 숙제가 주어졌다. 그때 문득 ‘질경이’가 떠올랐다.

“질경이는 우리가 촌에 살 때 길가에 흔하게 나 있었거든. 그게 얼마나 질긴지 밟고 지나가도 살아나는 풀이야. 게다가 이파리도 피우고, 꽃도 피우고, 열매도 맺고, 자기 할 도리는 다 하거든. 내가 꼭 걔처럼 살았단 생각이 들더라고”

그 마음을 받아적었다. 60여년이란 세월을 이 세상 속에서 아무 말 없이 버티며 살아온 가슴으로 시를 써내려갔다.

“무심코 써낸 시로 그렇게 좋은 결과가 나올 줄 몰랐어”

수상 이후에는 난생 처음 겪는 일들의 연속이었다.  

누군가로부터 팬레터를 받은 것이다. 한 초등학생은 ‘시를 읽으면서 감동 받았다’고 말했다. 자신을 시인이라고 밝힌 누군가는 ‘지금까지 고생했지만 이제 눈물 뚝! 행복 시작’이라고 응원해줬다.

“‘어떻게 내가 눈물 난 걸 알았지? 아, 질경이를 보고 알았구나’ 싶었지”

시와 사람으로부터 삶을 위로받은 힘으로, 이제는 또 다른 질경이들을 찾아 나서려 한다.

“배운 게 아무것도 없으니 꿈이란 걸 꿔본 적이 없거든. 그런데 이제는 큰 꿈이 하나 생겼어. 바로 즐겁게 사는 방법을 나누는거야. 고등반까지만 졸업하면 힘들게 살아온 사람들, 나보다 모르는 사람들을 위해 봉사하고 싶어”

글을 몰라 여전히 깜깜한 세월을 보내고 있을 이들에게 다가가 손을 내밀고 싶다는 작지만 큰 꿈이다.

“부모님은 비록 내게 글을 가르쳐주시진 않았지만, 뭐든 할 수 있다는 용기를 주셨어. 그게 참 감사하더라고”

원망 보다는 감사함이 먼저인 김을림씨는 예순이 돼 처음으로 갖게된 꿈을 이루기 위해 오늘도 꼿꼿이 허리를 세우고 학교에 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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