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집 인터뷰] 까막눈 설움 벗는 늦깎이 학생들…④
남편 장례 치르고 학교로 간 이연식씨 “봉사 위해 공부”

▲ 지난달 12일 고졸 검정고시를 합격한 이연식(54)씨.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모자를 푹 눌러쓴 한 여인이 초점 없는 눈으로 하얀 눈길을 걸어간다. 핏기 없는 얼굴에 금방이라도 쓰러질 듯한 몸짓으로 한 발, 한 발을 내딛는다. 찬 바람이 옷 속을 파고들지만 개의치 않는다.

2012년 1월16일, 남편의 장례를 치른 지 이제 겨우 보름을 넘긴 날이었다. 2011년 12월30일 세상에 둘도 없는 ‘착한 그이’가 세상을 떠났다. 위암이었다. 세상이 무너진 것 같았지만 어김없이 새해는 밝았고 시간은 흘렀다.

장례식을 치른 뒤 집 안에 틀어박혀 먹지도, 자지도 않았다. 할 수 있는 거라곤 방바닥에 기대 눈물을 쏟는 일 뿐이었다. 남편의 빈자리만 멍하니 바라보던 그 때, 딸아이가 안방 문을 두드렸다.

눈이 팅팅 부어 온 딸아이는 ‘엄마, 아빠는 좋은 곳으로 가셨을거야. 우리 힘내서 잘살자’고 말했다. 제 슬픔도 다 추스리지 못했을 딸아이의 위로에 ‘엄마가 되서 이러면 안되겠구나’ 싶었다.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얼 해야 할 지 곰곰히 생각했다.

그런데 아무리 생각해봐도 남편없이 홀로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

“나는 내가 막 잘난 줄 알았거든요. 근데 아니었어요. 남편과 애들만 바라보면서 살다보니 정작 나는 할 줄 아는 게 없더라고요. 그래서 ‘배우는 길’밖에 없다고 생각했어요”

남편과 아이 셋의 삶이 마치 자신의 삶인 것처럼 살다보니 ‘중졸’이라는 학력을 잠시 잊고 살았다. 20년이 넘게 건축일을 했던 남편 옆에선 ‘사모님’으로 불렸다. 생활에 여유가 생기다보니 배움이 그리 중요한가 싶었다.

하지만 홀로 세상에 나가기 위해선 더 많은 배움이 필요했고, 배움만이 죽은 남편의 뜻을 따를 수 있는 방법이었다. 자수성가한 남편은 늘 ‘사회에 환원해야 한다’고 강조했었다.

세수도 하지 않은 채 그 길로 동려평생학교로 향했다. 신경쇠약으로 인해 병원치료가 필요했지만, 병원에 가기 전 꼭 들러야만 했다. 그래야만 답답함이 풀릴 것 같았다.

“갈 곳이 여기밖에 없더라고요”

이연식(54)씨는 그렇게 동려평생학교 중학생이 됐다. 부모님이 어느 날 갑자기 교통사고로 돌아가시면서 그만둬야만 했던 배움을, 남편이 죽고 나서야 다시 시작하게 됐다.

허전함이 그득했던 그 해 겨울, 오로지 공부만이 이씨를 버티게 했다. 집, 학교, 병원을 오가다보니 이윽고 봄이 왔고 소박한 꿈이 하나 생겼다. 대학에 가서 사회복지를 공부하는 것이다.

꿈이 생기니 공부에 가속도가 붙었다. 4개월만에 중학교를 졸업하고, 고등반에 올랐다. 훗날 사회복지를 실현하는 데 도움이 될만한 조리사, 요양보호사, 조경기능사 등 자격증도 연이어 땄다.

“남편의 영향이예요. 그이는 이웃들이 도와주지 않았더라면 우리가 잘 살 수 없었을 거라면서 봉사활동과 기부를 꾸준히 했어요. 나는 옆에서 거들뿐이었죠”

이제 남편의 몫까지 해내기 위해 이씨는 배우고 또 배운다. 학업 뿐만 아니라 남을 이해하는 법도 다시 공부하고 있다.

“사실 경제적으로 넉넉하다보니 까분 적도 있었어요. 그런데 이곳(학교)에 와서 겸손해졌어요. 책을 통해 때로는 참고 배려해야한다는 것도 배우고, 훌륭한 인생 선배님들을 만나서 느낀 것도 많아요”

공부할수록 고개를 숙인 덕분에 지난달 12일 시행된 고졸 검정고시까지 무사히 치러냈다. 감사한 마음에 합격한 뒤에는 곧바로 평생학교 보조교사를 자원했다. 이씨처럼 비틀거리며 학교에 들어선 이들의 마음을 보듬어주기 위해서다.

“중학교를 중퇴하면서 내가 누굴 가르쳐보리라고는 차마 생각도 못해봤어요. 어르신들이 저한테 ‘선생님’이라고 부르는 게 얼마나 낯선 지 몰라요”

그러나 이씨는 이미 지난 3월부터 ‘선생님’으로 불리고 있었다. 지난해 웃음치료 자격증을 취득해 3월부터 정식으로 실버 강의를 나가고 있던 것이다. 이전에는 ‘식사봉사’로 웃음을 줬던 노인정에서 이제는 ‘긍정의 말’로 어르신들에게 웃음을 안겨드리고 있다.

“사람들 앞에 섰을 때 ‘감히 내가 여기까지 왔구나’ 하면서 가슴이 벅차더라고요. 어르신들이 저를 보고 웃으실 때 얼마나 행복한 지 몰라요. 누군가에게 위로가 됐으면, 힘이 됐으면 좋겠어요”

이씨는 그렇게 꿈에 성큼성큼 다가가고 있다. 수능 공부에 웃음치료사, 자원교사 활동 등으로 정신없이 바쁜 요즘이지만, 그를 필요로하는 곳이 생겨서 참 좋은 나날들이다.

“감사하게도 남편이 가는 날까지 살 수 있을 만큼 준비를 해주고 갔어요. 자식들도 셋 다 바르게 컸고요. 이제 제가 할 일은 그동안 받은 걸 갚는 일 뿐이예요. 저를 필요로 하는 곳이라면 어디든 갈거예요”

‘봉사’가 아니라 ‘받은 게 너무 많아서 갚는 것’이라고 말하는 이씨. 그는 오늘도 세상에 진 빚을 갚기 위해 책 속에 얼굴을 파묻는다. 하늘에서 그를 흐뭇하게 바라보고 있을 남편을 떠올리며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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