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민들, '차바' 피해 속출속 품목 규모에 따라 배제 논란
“피해도 막막한데 설상가상 농민들에게 떠넘기는 처사"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서귀포시 남원읍의 감귤나무.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제주지역에선 농작물 품목을 가리지 않고 직격탄을 맞은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더욱이 태풍 피해복구가 한창인 가운데 농업 피해를 신고하는 과정에 특정지역에선 일부 품목이나 직접적으로 피해로 보이지 않는 내용을 배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논란이 일고 있다.

가뜩이나 태풍으로 농사를 망친 농민들에겐게 다시한번 상실감을 안겨준다는 우려와 함께 “피해규모가 작은 건 피해가 아니냐”는 분통섞인 목소리까지 나오고 있다.

이번 태풍으로 농업피해를 신고하기 위해 읍사무소를 찾았던 남원읍의 김모(50)씨는 허탈감에 발길을 돌려야만 했다.

태풍으로 비닐하우스가 모두 찢어져 이를 신고하러 갔지만 읍사무소 관계자로부터 돌아온 것은 “하우스 비닐은 농업재해보험으로도 할 수 있으니 접수받기 어렵다”는 말이었다.

이에 김씨는 “행정이 농업피해 규모를 축소하는데 앞장서고 있다”며 “우리 농민들이 태풍이 오라고 한 것도 아니고, 태풍으로 인한 피해를 우리가 당하고 싶어서 당한 것도 아닌데 행정이 너무 해도 너무한 것아니냐"고 불쾌감을 드러냈다.

애월읍의 한 농민도 한창 자라나는 콩이 태풍과 비, 흙탕물에 휩쓸려 수확을 포기해야 할 지경에 이르렀다.

이 농민은 “피해규모가 적어도 피해를 입은 건데, 피해규모가 작다는 이유로 리사무소에서 돌려 보냈다”고 토로했다.

콩, 감귤 뿐만 아니라 메밀도 수확을 앞두고 있지만 이미 태풍 때문에 피해를 입어 수확을 하기 어려운 상태라는 게 농민들의 설명이다.

더욱이 제주도가 야심차게 ‘메밀의 6차산업화’를 선포하며 계획을 추진하고 있지만 이번 태풍에 이 계획 마저도 차질을 빚을 것으로 보인다고 우려하기도 했다.

안덕면에서 메밀과 조 농사를 짓고 있는 고모씨는 “메밀은 이미 소득의 70%를 포기해야 할 지경으로, 꽃이 피고 열매가 달리는 시기인데 태풍으로 모두 쓰러졌다”며 “조는 이 보다 더 심각하다”고 설명했다.

더욱이 구좌읍과 성산읍을 중심으로 이미 파종된 당근과 감자, 월동무 또한 피해가 극심해 월동채소 생산량 하락으로 농가에 큰 시름을 안길 수 밖에 없을 것으로 보인다.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구좌읍의 밭.

구좌읍의 김모씨는 “당근은 올 여름 극심한 가뭄 때문에 재파종을 했는데, 이번엔 태풍때 내린 비로 잠겨 버리고 휩쓸렸다”며 “월동무와 감자 등도 피해가 심각해 수확할 수 있을 지 현재로선 장담할 수 없는 상황”이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이와 함께 애월, 한림 등에서 주로 재배하고 있는 양배추, 콜라비 등 또한 이번 태풍피해로 인해 제주지역 1차 산업은 말 그대로 ‘초토화’를 맞고 있다.

감귤 역시 더 할나위 없다는 게 농민들의 우려다.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지만 무너진 하우스와 찢어진 비닐 때문에 10월에 비라도 자주 내리게 되면 당도가 떨어질 수 밖에 없기 때문이다.

남원읍 태흥리 김모(48)씨는 “태풍으로 하우스가 몽땅 무너지고, 주변에 있는 방풍림도 무너졌다. 비닐도 찢어져 감귤을 수확해야 하는데 수확도 못하고 복구하는데 신경쓰고 있는 형국”이라며 “지금은 비가 내리지 않아 괜찮지만 피해복구가 빨리 이뤄지지 않은채 비가 내려버리면 정말 큰 일"이라고 우려했다.

농민들은 또 태풍으로 방풍림이 종잇장 처럼 쓰러져 이를 복구하는데도 어려움이 적지않다고 토로하고 있다. 보통 방풍림은 감귤 과수원 주변을 둘러싸고 있고 농민들의 연령대가 고령인 점을 감안하면 태풍으로 쓰러진 방풍림을 제거하는 데도 여간 힘들지 않을 수 없다는 것.

상황이 이렇자 농민들은 특별재난구역으로 지정 돼도 피해보상이 미비할 뿐만 아니라 현실에 맞지 않기 때문에 보다 더 강한 대책이 필요하다고 입을 모으고 있다.

특히 농민들은 "제주지역 1차 산업이 제주 경제에 차지하고 있는 비중이 크다"며 11일 오후 4시 제주도청 앞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제주도를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해 줄 것을 촉구할 예정이다.

전농 제주도연맹 관계자는 “자연재해 해결 방식을 자꾸 보험, 농민 개인에게 떠 넘기려는 정부와 행정의 입장이 강하다”며 “이는 농민들에게 부담이 될 수 밖에 없어 농사 의욕을 꺾는 처사에 다름없다"고 지적하고 있다.

한림읍 하우스 피해 현장.
태풍 차바의 영향으로 피해를 입은 서귀포시 남원읍의 감귤나무 밭 창고.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구좌읍의 밭.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구좌읍의 밭.
태풍으로 피해를 입은 구좌읍의 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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