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 폭력에 흔들리는 가정…③
"폭력의 대물림 방지해야…경찰 개입, 가정의 평화 찾아주기 위함"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하지만 최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통 받는 ‘위기의 가정’이 늘고 있다. 이제는 ‘가정의 위기’라는 말을 넘어서 ‘가족 해체’, ‘가족 붕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지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정폭력’의 단면을 짚어보고 행복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제주도의 이혼율 1위, 그 뒤에는 ‘가정폭력’
2. 드러나지 않은 면…가정해체 막으려고 ‘침묵’
3. 가정폭력, 더 이상 ‘집안일’ 아니…털어놓고 함께 풀어야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이선미(54·가명)씨가 가장 두려워하는 것은 바로 ‘폭력의 대물림’이다. 엄마에 대한 아빠의 폭력을 목격한 아들녀석이 훗날 ‘폭력남편’, ‘폭력아빠’가 되진 않을까 하는 우려다.

이씨는 “다사다난한 상황에서도 다행히 아이들이 착하게 자라줬다”면서도 “혹여라도 아들이 커서 아빠가 한 걸 따라하게 될까봐 겁이 난다”고 고민을 털어놨다.

술만 마시면 집안 물건을 던지고 폭언을 일삼는 남편 때문에 고통스러워하는 박진숙(48·가명)씨는 “그래도 때리진 않으니까 참는다”면서도 “나야 참고 살지만 우리 아들이 보고 배워서 나중에 며느리한테 똑같이 할까봐 걱정이 된다”고 말했다.

실제로 가정폭력을 목격하거나 경험한 아이들은 ‘나는 절대 저렇게 안 살거야’라고 다짐하면서도 자신도 모르게 폭력을 학습하고 가해자가 될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것이 전문가들의 공통된 견해다.

지금 내 가정뿐만 아니라 다음 세대의 가정까지 병들게 하는 가정폭력의 악순환을 끊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할까?

고은비 제주해바라기센터 부소장은 “가정폭력은 은폐성이 높고 반복적·지속적으로 발생하는 문제”라며 “숨기거나 참는다고 해결되진 않는다”고 힘주어 말했다. ‘침묵’은 해결방법이 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좁은 섬 특성상 ‘누구네 엄마’가 파출소에만 들어가도 소문이 파다하게 나고 두 세 다리만 건너면 ‘아는 사람’인 제주지역에서 집 안의 문제를 외부에 알리기란 더더욱 쉽지 않다.

뿐만아니라 가정구성원인 가해자가 형사처벌을 받게 되는 것이 두려워 신고를 꺼려하는 경우도 많다. 이래나 저래나 ‘애들 아빠’이기 때문이다.

대법원에까지 가서야 남편과 갈라설 수 있었던 이씨 역시 “맞아서 병원에 입원할 지경이 되서도 차마 경찰에 신고할 수는 없었다”며 “아이들 아빠를 전과자로 만드는 게 싫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지난날의 스스로의 모습을 ‘바보’라고 칭했다. 그러면서 “내가 변하지 않으면 그 굴레를 벗어날 수 없더라. 엄마가 맞는 모습을 지켜보는 아이들을 생각해보라”며 “캄캄하다고 해서 발을 내딛지 않으면 가정은 썩을 수밖에 없다”고 조언했다.

아울러 “무조건 참는 게 좋은 엄마가 아니”라며 “드러내고 대화하고 해결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그런 용기를 낼 줄 알아야 바로 엄마”라고 강조했다.

이와 관련해 고 부소장은 “가정폭력은 더 이상 ‘집안일’이 아니다. 반드시 뿌리 뽑아야 할 4대 사회악 중 하나”라며 “적극적으로 알리고 경찰에 도움을 요청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그는 또 “만약 경찰에 신고가 꺼려질 경우에는 억울하고 화난 감정을 들어줄 수 있는 전문상담사들이 있다”며 “112가 부답스럽다면 여성긴급전화 1366(24시간 운영) 또는 가정폭력상담소로 연락하면 된다”고 설명했다.

제주해바라기센터를 포함한 제주지역 내 11개 가정폭력상담소에선 가정폭력 상담은 물론이고 법률지원, 신체적·정신적 치료, 수사지원(경찰), 보호시설(쉼터) 연계 등의 도움을 받을 수 있다.

이 과정에서 ‘신고’와 ‘이혼’은 별개의 문제다.

신고를 한 후 어떻게 처벌할 것인지는 피해자 본인이 나중에 결정하면 된다. 가정폭력 사건에 경찰의 개입은 어디까지나 더 큰 가정폭력을 예방하고 가정의 평화를 되찾아 주기 위함이기 때문이다.

고 부소장은 “피해자 뿐만아니라 가해자, 자녀도 함께 상담치료를 받으면서 충분한 대화의 시간을 갖고 근본적인 원인과 해결방법을 찾도록 한다”며 “적극적으로 피해사실을 알리라”고 거듭 당부했다.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남편의 폭력을 무조건 참고만 살았던 이씨는 “처음 상처가 났을 때부터 드러내고 해결의 노력을 해봤다면 이처럼 곪아 터지진 않았을 것”이라고 후회를 남겼다. <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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