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정의 달 기획] 폭력에 흔들리는 가정…②
곪을대로 곪은 가정 속에서 되물림 되는 폭력…‘침묵’은 정답 아니

5월은 가정의 달이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스승의 날’, ‘성년의 날’, ‘부부의 날’ 등 가족의 소중함을 다시 한 번 되새기게 하는 달이다.
 
하지만 최근 가정이라는 울타리 안에서 고통 받는 ‘위기의 가정’이 늘고 있다. 이제는 ‘가정의 위기’라는 말을 넘어서 ‘가족 해체’, ‘가족 붕괴’라는 말까지 나오고 있다.
 
5월 ‘가정의 달’을 맞아 지역사회의 심각한 문제로 떠오르는 ‘가정폭력’의 단면을 짚어보고 행복한 가족으로 거듭날 수 있는 대안을 모색하고자 한다.<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제주도의 이혼율 1위, 그 뒤에는 ‘가정폭력’
2. 드러나지 않은 면…가정해체 막으려고 ‘침묵’
3. 사생활이라고 숨기면 늦어져…털어놓고 함께 풀어야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13년간 남편의 폭력에 시달린 이선미(54·가명)씨는 결국 이혼에 이른 자신의 삶을 놓고 ‘실패한 인생’이라고 자평했다.

이씨는 “애들 어렸을 땐 아빠가 있어야 하는데 큰아이 5학년 때 더이상 참을 수 없는 상황에 이르러서 결국 집을 뛰쳐 나왔다”며 “가족이 해체된 것은 내 잘못도 크다”고 자책했다.

그러면서 “당장의 상황을 모면하기 위해 남편이 해달란대로 다 해주고 살았던 게 잘못이었다. 무조건 ‘응’, ‘알았어’라고 수긍하고 참는다고 해서 남편이 변하는 건 아니더라”며 현명하게 대처하지 못했던 당시를 떠올렸다.

이씨는 아이들에게 ‘가정’을 지켜주기 위해 긴 세월을 맞고 버텼다. 그것이 엄마로서의 역할이라고 생각했다. 맞아 죽더라도 그게 낫겠지 싶었다.

그러던 어느 날, 술에 취해 들어온 남편의 구타가 어김없이 시작됐을 때였다. ‘또 시작이구나’ 생각하며 맞고 있는데 방문 틈으로 아이들과 눈이 마주쳤다.

“너무 불쌍하더라고요. ‘내가 맞아 죽으면 저 애들은 어떡하지’ 그 생각이 드니까 살아야겠다 싶었어요. 애들도 나처럼 맞고 살게할 순 없잖아요”

그 길로 문을 열고 집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 며칠 뒤 아이들도 데리고 나왔다. 무일푼으로 나온 세상은 캄캄했지만 남편 곁에 있을 때보다 숨 쉴만 했다. ‘엄마를 때리지 말라’며 달려들다 호되게 맞았던 큰아이는 더이상 아버지의 이름을 꺼내지 않았다.

▲ [뉴시스]
지난해 제주여성가족연구원이 도민 3000명을 상대로 실시한 가정폭력 실태조사 결과에 따르면 피해건수(중복포함)는 총 308건(10.3%)으로 집계됐다. 대략 10명 중 1명 꼴로 가정폭력을 경험한 것이다.

특히 여성 피해자(66.9%)가 남성 피해자(33.1%) 보다 두 배 이상 많았으며, 여성은 주로 배우자(33.5%)로부터, 남성은 주로 아버지(53.9%)로부터 폭력을 경험한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피해자들 대부분은 가정폭력을 당할 당시 아무런 대응을 하지 않은 것으로 확인됐다. ‘그냥 맞으면서 참음(56%)’이 가장 많았으며 그 다음은 ‘무조건 피함(28.4%)’, ‘주위에 도움 요청(7.8%)’ 순으로 나타났다.

이들이 가정폭력을 당한 후에도 경찰의 도움을 요청하지 않은 이유는 ‘신고해도 소용 없을 것 같아서(27.1%)’가 가장 컸고, 그 다음으로는 ‘집안일이 알려지는 것이 창피해서(23.6%)’였다.

가정폭력 상담을 맡고 있는 제주해바라기센터 고은비 부소장은 “도움을 요청한다 하더라도 별로 달라지지 않을 것 같아서 드러내지 않는 경우가 많다”며 “특히나 애써 감춰왔던 삶을 낱낱이 밝히는 것에 대해서 많이들 힘들어 한다”고 전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이 단 한 번에서 그치지 않고 지속적·반복적으로 일어나는 이유는 피해자가 가만히 있으면 ‘이래도 되는 사람’, ‘함부로 짓밟아도 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기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이 순간만 넘기면 되겠지’라는 생각으로 무조건 참지만 순간은 거듭되고 폭력의 대상은 자녀로까지 확대됐다. 실제로 설문조사 결과 아동기(7~13세)때 최초 폭력을 겪은 피해자(53%)가 상당한 것으로 드러났다.

제주시내 한 지역아동센터에서 돌봄선생님으로 근무하는 김지윤(48·가명)씨는 “센터에서 일하면서 애들이 맞고 오는 경우를 많이 본다”며 “동네에 소문이라도 날까봐 서로 쉬쉬하지만 심각한 경우에는 아동보호전문기관에 말하기도 한다”고 말했다.

겉으로만 멀쩡한 가정 속에서 곪을대로 곪아버린 상처는 돌이킬 수 없는 비극을 불러오기도 한다.

수십년간 아버지로부터 갖은 학대와 폭력에 시달린 지적장애 아들 문모(35)씨가 지난해 7월 집에 불을 질러 아버지(55)를 살해한 사건이 대표적인 사례다. 당시 문씨가 재판에 넘겨지자 그의 어머니는 눈물로 아들의 선처를 호소하기도 했다.

이보다 앞선 5월에도 20여년간 아버지로부터 폭력에 시달려온 김모(45)씨가 암투병 중인 아버지(81)를 폭행해 국민참여재판에 넘겨지기도 했다. 당시 배심원 다수가 김씨의 정신분열 등을 참작해 ‘징역 10월에 집행유예 2년’이라는 다소 가벼운 의견을 내 받아들여졌다.

살인과 폭행은 어떤 이유로도 용납될 수 없다. 하지만 그들이 왜 폭력의 굴레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악순환을 할 수 밖에 없었는 지 들여다 볼 필요가 있겠다. <3부에 계속>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