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72년 4월9일 제주시민회관에서 10대 가수들과 인기 연예인들이 총출동, 제주지역 최대의 가요잔치가 벌어졌다. 제남신문사가 기획한 한라문화상 시상식이다. 사진은 이날 나훈아, 최희준 등 당대의 인기 가수들이 총출동한다는 소식에 제주시민회관 앞에 모여든 시민들이 인산인해를 이룬 장면이다. 우리나라 10대 가수상 외에 영화부문 최우수 인기상, 최우수 신
▲ 밤새 어로작업을 마친 작은 어선들이 하나둘 서귀포 어항으로 들어오자 흰 수건을 쓰고 구덕을 든 여인들이 고기를 사기 위해 모여들고 있다. 남자들이 한가롭게 뒷짐 진 채 서 있는 모습에서 전형적인 옛 포구의 정취를 느낄 수 있다. 왼쪽에서는 노를 저으며 배 한 척이 들어오고 있다. 옷차림으로 보아서는 여름철인 듯하고, 물양장시설이 제대로 안돼 있는 것으로
▲ 조천읍 신흥리 마을 사람들이 돌을 나르며 '쉐물깍'이라는 포구를 만들고 있는 모습이다. 멀리 보이는 산이 함덕리에 위치한 서우봉이다. 사람들은 포구를 축조하기 위해 여자는 등어리에 가마니때기를 대고 좀 가벼운 돌 두덩이를 등짐으로 나르고, 장정은 맨손으로 무거운 돌을 옆구리에 끼어 나르고 있다. 사람이 들기 힘든 큰 돌은 기중기를 이용해 위로 들어올
▲ 전자계산기가 없던 시절 모든 계산은 주산으로 했다. 때문에 당시에는 학교에서 주산 시간이 따로 있었을 정도였다. 매해 2 ~ 3회의 주산경진대회가 열리기도 했으나 1980년도에 들어서면서 전자계산기가 나오고 모든 사무처리가 전산화되기 시작하면서 주산 교육의 열기가 시들해졌다. 사진은 1979년 무렵 제주 상공회의소 주최 주산검정시험 모습이다. '사진으
▲ 수많은 해녀들이 한꺼번에 '테왁'을 껴안고 헤엄치며 나아가는 모습이 장관을 이룬다. 좀더 먼 바다로 나아가면 그들은 자맥질해 물속으로 들어갔다 나오기를 반복할 것이고, 몇 번이고 '숨비소리'를 토해낼 것이다. '숨비소리'는 해녀들이 물질 도중에 바다 위로 올라와 가쁜 숨을 내쉴때 "호오이~" 하고 내는 소리로, 해녀들의 힘겨
▲ 1901년 프랑스 안세화 주교(프랑스 이름은 Demange이다) 일행이 전도를 위한 순방 중 고갯길에서 잠시 휴식을 위하고 있는 모습이다. 서양인들과 한국인들의 모자를 비롯한 복장에서 대조를 이루고 있다. 운반 수단으로 말과 짐꾼이 동원됐다. 오른쪽 짐꾼들은 앉아 있는데, 우산을 준비하고 있는 것이 이채롭다. 이 사진은 <사진으로 본 한국의 백년&
▲ 가운데로 관덕정 건물, 그 뒤로 사라봉이 보이는 1970년대 초반의 제주시 서문로 포장 공사 장면이다. 골재를 까는 작업에 주로 여성들이 동원됐음을 알 수 있다. 대부분 머리에 수건을 둘러쓴 채 일하고 있다. 옷가게, 약국, 이발관, 담배가게, 접골원 등이 길 양옆으로 보인다.(국가기록원)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에서 발췌.
▲ 화사한 새봄의 향연을 즐길 수 있는 제주의 봄 축제인 왕밪꽃축제. 제주시 중심가인 전농로는 벚꽃거리로 도심 속의 자연을 만끽할 수 있는 곳이다. 수령 20~100년생 벚나무들이 1km 정도 늘어서 있는 이 벚꽃거리는 꽃이 만개하기 시작하는 4월이면 많은 관광객과 시민들이 붐빈다. 국내외 관광객들의 벚꽃 감상과 함께 시민들이 어우러지는 장을
▲ 1940년대 건입동 1388번지 매립지 일대에 섰던 오일장 모습이다. 뒤쪽 담장은 방파제이며, 이 방파제를 의지해 사람들이 모여 있다. 담소를 나누는 사람, 아기를 어르는 사람도 보인다. 허벅과 육지에서 들여온 듯한 유약 항아리도 보인다. 오른쪽이 사라봉 자락이다. 제주시 오일장은 관덕정 광장 → 측후소 앞 → 탑동 → 시민회
▲ 1966년 해외 홍보를 목적으로 한 문화영화 <제주도>를 제작하기 위해 도내 해안가에서 해녀들을 촬영하고 있다. 제주도의 전통민속과 자연풍광 등을 담은 이 영화는 김학수 감독이 메가폰을 잡았으며, 35밀리 영화로 제작됐다. 1962년에는 미공보원 영화제작소가 <신비의 섬 제주도>를 제작하겠다고 발표했다. 1963년에는 문화공보부가
▲ 지금은 복개된 병문천 모습이다. 병문천은 산지천, 한천과 함께 제주시내로 흘러내리는 큰 하천 중 하나다. 복개되기 전 서문다리 아래는 작은 시장이 서기도 했고, 여름철이면 시원한 바람이 불어와 노인들의 휴식장소가 됐다. 이 사진은 옛 서문다리 위에서 찍은 것으로, 계곡 하류지역은 하상정비작업을 마쳤는지 하천바닥이 잘 정리돼 있다. 계곡 한편에서 아이들이
▲ 당이 차려진 곳에서 심방이 작은굿을 행하는 모습이다. 밥.과일.술 등 제물을 차려놓고 심방이 쌀알을 던지면서 굿을 주도하는 가운데 여러 아낙들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뒤의 돌담에 '십자가와 함께 주 예수를 믿으라'는 문구가 이채롭다. 무속신앙을 배격했던 기독교인의 행위로 보인다. 제주도 무속의례는 그 규모에 따라 우선 굿과 비념으로 나눈다. 굿이란
▲ 작업 복장과 작업 도구를 갖춘 두 해녀가 갯바위에서 활짝 웃고 있다. 홍보를 위해 포즈를 취한 것으로 보이는데, 1957년 7월21일 촬영한 사진이다. 물질할 때의 작업복인 하얀색 '물소중의'와 '물적삼'을 입고, 머리에는 '물수건'과 눈알이 두 개인 '족세눈'을 착용했다. 박으로 만든 '테왁'과 채취한 해산물을 넣어두는 '망사리'
▲ 어느 한 마을의 남성들이 유교식 제법으로 마을제를 치르고 있는 모습이다. 제단(祭壇) 위에는 돼지 한 마리가 통째로 올려져 있으며 그 밑으로 메와 과일, 향과 촛불이 켜져있고 그 위에 비와 바람을 막기 위해 천막이 쳐져 있다. 제단을 보호하는 건축물 없이 인근에서 전기불을 끌어다가 불을 밝히고 있다. 제관, 집사 등이 각자 맡은 역할에 따라 마을제를 지
▲ 1970년대 조천읍 북촌리 포구인 '뒷개'로 들어오는 돛단배 모습이다. 돛을 내리는 사람과 노를 젓는 사람 간의 호흡이 잘 맞아 보인다. 포구 너머에 팽나무가 포구의 운치를 더해 주고 있다. 이 북촌 포구는 예전에는 전쟁에 필요한 장비를 갖춘 배를 숨길 수 있을 정도의 포구로서 '큰성창'이라 부르기도 햇다.(고길홍 사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
▲ 1970년대 산천단 곰솔과 초가 모습이다. 지금의 도로가 나기 전에는 이곳으로 버스가 다녔으며 초가 앞이 산천단 정류소이다. 산천단 곰솔을 보호하기 위해 철책으로 두르고, 도로를 바깥으로 냈다. 초가는 구멍가게로, 산처단을 오가는 사람들의 쉼터 역할을 하던 곳이다. 산천단 곰솔은 국가지정 천연기념물 160호(1961. 1. 31.)로 지정, 보호되고 있
▲ 봄부터 가을까지 목장이나 들판에서 방목하던 말들이 겨울이 다가오자 내려오고 있다. 제주지역에서는 각 지역별로 마을목장이 있어 소나 말들을 봄부터 가을까지 마을목장에 방목을 시키다가 겨울철이 다가오면 각자 집으로 몰고 온다. 마을목장이 없는 지역에서는 산으로 방목을 보내기도 했었다. 사진은 1969년 12월 구좌읍 하도리의 한 주민이 그동안 마을목장에서
▲ 1954년 제주시 용담동에서의 결혼식 모습이다. 양복을 말쑥히 차려입은 신랑과 하얀 면사포를 쓴 신부를 중심으로 신랑신부의 친구와 친지들이 신랑집 마당에서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집 입구에 나무로 기둥을 세워 벽보판을 만들고, 신랑신부 이름을 적어놓았다.
▲ 1960년대의 용연으로 주변에 인공물이 전혀 보이지 않는다. 시퍼런 물에 고기떼가 노니는 모습을 환히 볼 수 있었다. 물이 좋고 주변의 기암절벽이 아름다워 예로부터 이곳에서 뱃놀이를 즐기는 이들이 많았다. 용연(龍淵)은 용이 살았던 연못이라고 해서 붙여진 이름이다. 바다와 이어져 있어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다. 깎아지른 절벽에 병풍을 두른것 같고,
▲ 2002년 10월 마라도 해녀축제 때 섬 북쪽 돌로 제단을 쌓은 '애기업개당'에서 한 무당이 제를 올리고 있는 모습이다. 모슬포가 멀리 보이는 바닷가에 있는 당으로 '처녀당' '비바리당' '아기업개당' '할망당'이라고 불리기도 한다. 바닷가 돌 울타리 속에 돌집을 만들어 신체(神體)를 모시고 있다. 신체는 백지와 오색천이고, 그 바깥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