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시, 사적인 만남 금지 추진 구시대적 발상의 전형
출장 일상 실무부서 연락 無…'"과연 청렴도 올라갈까"

제주시는 이번 인사부터 핸드폰 번호를 없앤 청렴명함을 도입한다. 사진은 제주시 명함 교체 전과 후.

제주시가 청렴도 향상을 위한 고육지책으로 청렴명함 도입을 추진하는 가운데 시민 소통은 뒷전으로 둔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일고 있다.

13일 제주시에 따르면 이번 인사부터 핸드폰 번호를 없앤 청렴명함을 도입한다.

현행 제주시 공무원의 명함을 살펴보면 이름, 소속, 제주시청 주소, 사무실 전화번호, 팩스번호, 핸드폰번호, 이메일, QR코드(제주시 모바일홈페이지 접속) 등이 명시돼 있다.

추진중인 청렴명함에는 이중 핸드폰 번호가 없어지고, 스마트폰으로 제주도 감사위원회의 '공직자 부조리신고센터'로 직접 접속이 가능한 QR 코드와 함께 청렴을 향한 제주시 공직자의 다짐이 기재된다.

이처럼 명함에서 핸드폰 번호를 없애는 데는 청렴도 향상을 위한다는 이른바 고육지책.

지난해 국민권익위원회 '2016년 공공기관 청렴도 평가'에서 제주시는 종합점수 7.35점 4등급을 받았다. 이는 전년도 2등급에 비해 2단계나 떨어진 것.

상반기 <제주도민일보>가 문제삼았던 '해외원정 골프접대' 등으로 인해 상대적으로 낮은 점수를 받은 외부 청렴도가 등급 하락에 영향을 끼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외부 청렴도 평가시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 부분인 사적인 만남과 금품 수수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해 아예 핸드폰 번호를 없앤다는게 제주시의 설명이다.

핸드폰 번호가 있는 이전 제주시 명함의 앞면(상)과 뒷면(우)과 핸드폰 번호가 없는 새로 바뀐 제주시 명함의 앞면(상)과 뒷면(우) 비교.

이를 놓고 시민과의 소통은 아랑곳하지 않은 구시대적 발상으로, 전시행정이라는 지적이 제기되고 있다.

우선 업무의 태반이 출장인 실무부서 담당자 등과 연락을 하기 위해선 핸드폰 번호를 모르는 민원인들은 최소 2~3단계(메모를 남긴후 전화를 기다리거나 사무실에서 전화를 받은 직원이 전화를 걸어 다시 전화를 하게 하는 등)를 거쳐야만 된다.

특히 사회복지시설과 아동복지시설, 노인요양시설 등에서의 긴급 연락도 업무시간 이후에는 사실상 불가능해질 수 밖에 없다.

청렴도 향상을 위해 핸드폰 번호를 없애는 것은 근시안적 행정이라는 비판도 잇따르고 있다.

제주시는 중앙부처에서 핸드폰 번호를 없앤 명함을 쓰고 있다고 설명하고 있지만, 중앙부처에서도 국민권익위와 보건복지부 등 일부 부서에서만 핸드폰 번호가 사라진 명함을 사용중이다.

오히려 사적인 만남이 차단돼야 할 국토교통부 등 몇몇 부서에선 핸드폰 번호가 기재된 명함을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더욱이 시민 속으로 스며들고, 시민들과의 소통을 가장 중요하게 여겨야 할 일선 지자체에서 핸드폰 번호를 명함에서 없애는 것 자체가 귀를 닫겠다는 의미로 받아들여지고 있다.

원희룡 도정이 들어선 이후 숱하게 강조해온 '소통'은 뒷전으로 두고 보여주기식 행정의 표본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될 수 밖에 없는 대목이다.

또한 제주시보다 청렴도를 훨씬 높게 받은 제주도와 제주도의회도 사적인 만남을 금지하는 공무원 행동강령 등만 규정하고 있을뿐, 명함에서 핸드폰 번호를 없애겠다는 시도조차 하지 않고 있다.

시민 A모씨(42)는 "명함에 핸드폰 번호가 없다고 청렴도가 상향된다고 하면, 전경련 해체한다고 재벌이 정경유착 안할 거라는 거랑 같다"며 쓴소리를 내뱉었다.

A씨는 또 "시민은 아랑곳 하지 않은 전형적 불통 행정의 극치다"며 "쓰레기 정책도 그렇고 7~80년대 관료주의 시대도 아니고…"라며 혀를 찼다.

제주시 관계자는 "지난해 청렴도 하락의 이유인 사적만남을 원천 봉쇄하기 위한 고육지책"이라며 "명함에 사무실 번호는 있기 때문에 불통의 문제는 없을 것"이라고 해명했다.

새로 바뀐 제주시 명함 앞면(상)과 뒷면(우). 앞면에 보면 핸드폰 번호가 사라져 있고, 뒷면은 부패비리신고 사이트로 접속 가능한 QR코드가 수록됐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