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지역신문 위기와 기회를 말한다
<4> 경쟁없는 레드오션

 

▲한 기관에서 나온 광고가 비슷한 시기 도내 신문사에 똑같이 게재된다. 이러한 관공서의 일괄 광고 배분방식은 도내 일간지들의 경쟁 구도를 저하시키는 하나의 요인으로 작용하고 있다. 박민호 기자 mino@

글싣는 순서>

<1> 위기의 신문, 떠나는 독자
<2> 나, 신문에 할말 있소
<3> 침묵의 카르텔
<4> 경쟁없는 레드오션
<5> 110만원 기자의 하루
<6> 대안을 찾아서
<7> 의미있는 도전
<8> 언론, 누가 견제하나


자기 욕심만 채우려는 사주
일괄 배분되는 관공서 광고

기사 하향 평준화 일등공신

제주에는 5개의 지역종합일간지가 있다. 인구가 56만명임을 감안하면 대략 11만명이 1개의 신문시장에 노출돼 있는 셈이다. 1300만명의 경상도와 560만명의 전라도에 각각 20여개의 일간지가 있는 것과 비교하면 산술적으로도 비교적 지역내 일간지가 많다고 볼 수 있다.

그런데 과연 이 신문들이 서로 치열하게 경쟁을 하며 충실하게 신문을 만들어내고 있느냐하는 문제에 대해서는 선뜻 답을 할 수 있는 사람이 많지 않다. 제주지역 일간지 시장에서는 기사에서부터 광고·발행과 관련한 크고 작은 결정에 이르기까지 신문사간 경쟁보다는 ‘추이 지켜보기’와 ‘따라가기’가 대세다.


 기사 경쟁 말리는 회사

기자들은 처음 자신의 기명기사가 나가던 때의 기쁨을 기억한다. 선배들은 ‘일단 물어만 오면 무엇이든 써주마’ 약속을 했고 어린 기자들은 천군만마를 얻은 심정으로 곳곳을 발로 뛰면서도 힘든 줄 몰랐다. 하지만 기자에게 ‘기사를 발굴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이 있음을 알게 되는 데까지는 그리 오랜 시간이 걸리지 않는다.

“요즘은 (취재를) ‘기본’만 해요. 차라리 인물 동정하나 더 챙기는 게 더 나아요. 애써 취재해봤자 비판 기사는 ‘킬’ 당하기 십상이고 괜히 바쁘게 움직이다 단신이나 동정 하나 놓치면 더 욕먹으니까 굳이 필요를 못 느껴요. 바빠서 힘도 없고” 어느 일간지 기자의 말이다.

제주지역 신문에 치열한 경쟁이 없다. 언론이라면 매일매일 벌어지는 다양한 사안들에서 옥석을 가리고 맥을 짚어 자신들만의 시각으로 줄기를 엮어내야 한다. 기자들의 취재를 통해 탄탄히 재정비된 새로운 기사들은 신문을 통해 매일 독자들과 만나며 여론화된다. 그런데 현행 신문사 가운데는 좋은 기사보다 단신이나 인물동정, 유관기관장들의 소식을 놓치지 않는 기자를 원하는 곳들이 있다.

기사 경쟁 없는 밍밍한 신문 시장을 만드는 일등공신은 사주다. 목적을 가지고 신문사를 인수한 사주들은 기자들의 근무환경을 개선시키고 질 높은 기사 발굴을 독려하기보단 이미 시장에 진입한 신문사의 영향력을 통해 사업 등에 활용하거나 주위 사람들의 요청을 들어주며 인맥을 넓히는 수단으로만 활용하고 있다.

사주의 이러한 생각과 입김은 편집권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건강한 기사, 성실한 기자 키우기에 관심이 없는 회사의 방침은 새로운 기사거리 취재에 대한 기자들의 의욕을 꺾고 기자들의 근무 여건을 악화, 점차 질 낮은 기사를 반복 재생산 하도록 방치한다. 의식 있는 기자들의 불만은 인사권의 위력 앞에 꼬리를 내린다. 기자들은 불만과 내성화의 시기를 반복하다 결국 자포자기한다.

사주의 편집권 침해와 관련, 기자들이 우려를 제기하자 “원래 사주가 있으면 이 정도는 우리도 해줘야 한다”고 했던 A일보 편집국장의 말은 일부 기자들의 자기성찰이 결렬됐음을 단적으로 보여준다.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최낙진 교수 등이 발표한 「지역언론의 내적 통제요인에 관한 연구」에서는 제주지역 기자들이 기사 보도 과정에서 직장동료나 상사·경영진 등 내부 윗선의 영향을 상당 부분 받고 있는 것으로 분석됐다. 윗선에 의한 보도 통제는 윗선들의 입장과 인맥에 따라 기사의 게재여부와 방향, 비중을 달리하며 언론의 사명을 수행하는 데 인색해지는 주요 원인으로 지목됐다.

그리고 이러한 일련의 상황들은 결국 독자들이 신문을 외면하는 상황으로 귀결된다. 지난달 실시한 제주도민일보 여론조사에서 응답자 504명 중 59.5%가 제주지역신문을 구독하지 않는다고 답했다. 이들중 61.0%는 지역신문을 보지 않는 이유로 ‘인터넷·방송 등 타 매체로도 기사를 확인할 수 있어서’라고 응답했다. 신문 기사 내용이 인터넷이나 방송 등 타 매체와 다르지 않다는 의미다.

몇년전 ‘미디어 오늘’이 현직 기자를 대상으로 실시한 언론 개혁과 관련 설문조사에 따르면 ‘언론자정을 위한 선행과제’를 묻는 질문에 38.0%의 기자들이 ‘기자들의 의식 변화’를 가장 먼저 꼽았다. 그 다음으로 ‘취재관행의 변화(27.6%)’, ‘취재비 현실화(21.6%)’의 순으로 그들의 생각을 나타냈다. 언론 자정은 관행이나 비용의 문제도 있지만 무엇보다 의식이 바뀌어야 한다고 기자들이 생각하고 있음을 시사하고 있다. 전국 기자를 대상으로 한 설문이지만 결과는 제주에서 역시 예외는 아니다.
 

비경쟁적 광고시장

사주와 함께, 제주지역신문들이 경쟁을 게을리하게 되는 요인으로 지적되는 것이 관공서의 일괄 광고 배분 방식이다.

제주도에 따르면 현재 도내 신문사(인터넷 신문 포함, 2009년 기준)는 총 24곳이다. 지난 2004년까지 3곳에 불과했던 도내 신문사는 2007년을 기점으로 기하급수적으로 증가했다. 연도별로 살펴보면 2004년 3곳, 2005년 4곳, 2006년 7곳, 2007년 22곳, 2008년 21곳, 2009년 24곳이다. 5년 사이 무려 21곳(700%)이 늘었다. 매체별로는 인터넷 신문사의 증가가 눈에 띈다. 2006년 3곳의 인터넷 신문사가 창간한 것을 시작으로 현재 15곳의 인터넷 매체가 제주도에 등록돼 있다.

신문사 증가의 주된 원인은 지자체의 일괄 정액 광고 배분 방식에 있다.

도 공보관실 관계자는 “매체별 단가의 차이는 있지만 창간 등 별도의 광고외에 도정홍보시책이나, 공고 등과 관련된 광고는 전 신문사에 일괄적으로 배분한다”고 밝혔다.

이처럼 도의 홍보예산 집행 기준이 ‘다수의 신문사에 균등하게 배분’ 되는 것을 원칙으로 하다보니 신문사는 기사의 질 제고를 통한 독자 확보나 영향력 확대에 신경을 쓸 필요가 없다. 반면, 기존 신문들은 ‘파이’가 작아지는 것을 막기 위해 다른 신문의 진입을 차단하는 데 주력한다.

무엇보다 큰 문제는 관공서 광고에 의존하려는 신문사가 많으면 많을수록 전체 신문시장의 질은 더욱 떨어질 수밖에 없다는 데 있다. 한 지역에 신문사가 많다는 것은 그만큼 그 지역에 다양한 비판과 담론이 형성된다는 장점을 가진다. 그러나 일괄적으로 지원되는 광고와 그에 의존하는 수익구조는 신문의 비판기능을 무뎌지게 만들었으며 모든 신문사가 ‘똑같은 목소리’를 낼 수 밖에 없는 요인으로 작용한다.

광고 일괄배분 풍토는 관공서에만 국한되지 않는다. 일반광고 시장에도 비일비재하게 일어나고 있다.
지난 2007년 김희정 제주대 언론홍보학과 교수가 발표한 ‘지역신문 광고시장 구조분석’ 자료에 따르면 도내 광고주가 광고를 모든 지역신문에 게재해야 하기 때문에 부담이 크다고 지적하고 있다. 특히 이 자료에 나온 한 광고주의 인터뷰 내용은 지역신문의 잘못된 광고 유치행태를 여실히 꼬집고 있다.

“한 매체사에 광고를 게재하면 다른 매체사 광고국 직원들이 광고주와 학연, 지연, 혈연 등 직·간접적인 방법으로 접촉해 무언의 압력을 행사한다. 이러한 추세 때문에 광고주들은 신문사에 상당히 배타적이다” (B 광고회사 대표이사)

비정상적인 광고유치 풍토는 일반 광고주들의 광고 기피현상을 부채질 했고, 신문사는 관공서 광고에 더욱 의존하면서 확대를 요구하는 악순환이 반복된다. 기존 4개 일간지 사장들로 구성된 이른바 ‘사장단 협의회’는 관공서는 물론 유관기관·단체와 관련기업 등의 압력수단이라는 눈총을 받고 있다.

이같은 결과는 A신문사의 광고 매출표를 통해 고스란히 드러난다. A신문사의 지난해 영업광고 매출은 지난 2008년보다 12%가 감소한 반면 관공서 광고는 52%가 증가했다.

정당한 경쟁 통한 건강한 기사 배출돼야  

제주지역내 신문사간 치열한 기사 경쟁이 없는 것은 현재의 신문시장이 경쟁을 유도 하지 않기 때문이다. 부수와 관계없이 일괄 배분되는 광고시장이 그 이유고, 개인적 성취에 눈이 먼 사주들의 방관이 다른 이유다. 그리고 오랜 기간 무경쟁 구도에 익숙해진 기자들의 자포자기와 관성화도 한 원인이다.

한 언론인은 “기자가 발로 뛰어 정성껏 취재한 기사가 신문사의 논조를 만들어 가는 밑거름”이라며 “신문사들이 각자의 논조와 강점으로 차별화된 신문을 만들때 지역에도 다양한 담론이 형성될 것”이라고 말했다.

글 문정임 기자 mun@·이상민 기자 ghostden@
사진 박민호 기자 mino@

 

 

 

/문정임 기자 mun@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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