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획] 세월호 참사 1주기, 산자의 고통…행정·제도의 한계는?…①
살아남은 자들 매일 같이 고통 호소…악몽·자살충동에 약물로 버텨

16일로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다. 270여명의 학생과 30여명의 일반인의 목숨을 앗아간 세월호 참사는 그야말로 비극이었다. 국민은 정부를 불신하게 됐다. 바다에 자식을 묻어야 했던 부모들은 오늘도 풍천노숙하며 참사의 원인과 진실을 요구하고 있다.

매일 슬픔의 나날을 보냈다. 아픔을 견뎌온 사람들에겐 지금을 살아가는 것조차 힘들다. 세월호 참사는 현재 진행형이다. 철저한 진상규명이 이뤄지지 않는 한 계속해서 현재 진행형일 수 밖에 없다. 세월호의 슬픔과 아픔은 전 국민적 분노가 됐다. 그 분노는 권력의 심장부를 향하고 있다.

1년이 지난 지금. 우리는 어떤 모습으로 살고 있을까? 또 세월호 참사에서 살아남은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고 있을까? 지난 1년동안 정부의 안전 대책은 얼마나 개선됐을까? 정부가 세월호 참사 원인을 책임지려 하고 있었나? 이러한 물음에 대한 대답은 여전히 비극적이고 슬플 수밖에 없다.

제주도도 피해갈 수 없다. 제주에서도 전체 희생자의 10%인 30여명의 생존자들이 현재를 견뎌내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민일보>는 이들이 처한 아픔과 슬픔을 들여다보고 정부가 발표한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과 제주도 행정의 문제점과 한계점을 들여다봤다. <편집자 주>

글 싣는 순서

1. 살아남은 자들의 고통, “사는게 아니라 버티는 것”
2. 정부의 세월호 특별법 시행령 발표, “우리들의 분노를 더 키웠다”

▲ 세월호 참사 1주기를 맞았지만 여전히 진실은 밝혀지지 않고 있다. 지지부진한 조사와 정치권 공방만 이어가다 해를 넘겨 벌써 1년을 맞이했다. 그동안 한국사회의 안전의식은 많이 올랐지만, 정부는 사태의 심각성을 모르는 듯 책임소재를 민간에 떠넘기려 하고 있다. / 사진=제주도민일보 DB

[제주도민일보=최병근 기자] “사는게 사는게 아닙니다. 이게 버티는 거지 사는 겁니까?”

매일 악몽을 꿨다. 신경안정제(수면제)를 먹지 않고는 잠을 잘 수가 없었다. 신경안정제에 의지하는 것은 좋지 않다는 의사의 말에도 어쩔 수 없었다. 술을 마셔볼까도 고민도 했다. 하지만 참았다. 병원에서도 권하는 방법도 아니었고 술로 이겨낼 수 없다는 걸 그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눈을 감으면 배에 타고 있던 어린이들의 모습이 눈앞에 어른거렸다. 미치고 환장할 것만 같았다. 혼자만 살아남은 죄책감이 시도 때도 없이 가슴을 짓눌렀다. 죄책감 때문에 못된 생각이 자꾸 들었다.

참사 이후 5개월간 사람을 만나지 못했다. 사람을 만나는 게 무서웠다. ‘내가 사람을 만나도 되나…’는 회의적인 생각만 자꾸 들었다. 가만히 있어도 하염없이 눈물을 흘렀다. 무의식 중에 그날의 모습이 신경을 자극했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다.

병원에서는 신경안정제와 종교의 힘으로 극복해 보라고 했지만 말처럼 쉽지 않다. 병원에서도 극복하기 힘들 것이라고 했다. 그래도 견뎌내야 했다. 아니 견뎌내고 오롯이 살아야 했다. 죽은자들의 몫까지 살아내기 위해서. 그리고 진실을 알려내기 위해서 그는 살아야 했다.

지난해 4월16일, 화물업에 종사하는 장 모씨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세월호에 몸을 실었다. 물론 화물차와 함께. 수학여행 시즌이라 고등학생들이 배에 가득했다. 아이들이 웃고 떠드는 모습에 나이가 쉰인 그도 ‘아빠미소’를 지을 수밖에 없었다. 그는 학생들이 안산 단원고등학교 학생들인 줄 몰랐다. 나중에 언론보도를 통해 알게 됐다.

인천을 출발, 제주로 향해 가던 세월호가 진도해역을 지나고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세월호가 이상했다. 좌우로 심하게 흔들리더니 이윽고 한쪽으로 기울었다. ‘설마…배가 침몰하겠어?’라는 생각은 여지없이 무너졌다. 배가 ‘침몰’했다. 상상도 하지 못한 일이 그에게 일어났다.

그는 배가 기울기 시작하자 주위를 두리번거리기 시작했다. 그리고 이내 탈출구를 찾았다. 지체할 시간이 없었다. 뛰었다. 살아남아야 했다. 그 당시에는 그 생각밖에 없었다. 아이들은 안내원의 방송에 따라 구명조끼를 입고 배 안에 대기하고 있었다.

그는 “배가 침몰할 줄 누가 알았겠어요. 그것도 내가 탄 배가”라며 눈을 감았다. 상상조차 하기 싫은 듯 눈을 감고 머리를 좌우로 흔들었다.

▲ [제주도민일보 DB] 세월호 참사는 국가적 비극이었다. 세월호는 현재 진행형이다. 아마도 진상규명이 이뤄질 때까지 현재 진행형이 될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세월호 참사이후 현재를 살아가는 생존자들은 사는게 아니라 버티고 있다. 또 삶과 죽음의 갈림길에서 그들은 목숨을 저울질 하고 있다. 트라우마로 인한 고통을 국가와 사회가 나서 보듬고 다독여야 한다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다.

“배에 들어가 한명이라도 더 구했어야 했는데...”

세월호에 탑승했던 또 다른 생존자인 B씨는 스스로 목숨을 끊으려 했다. 그날 자신들이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눈에서 떠나지 않아 트라우마에 시달렸기 때문이다.

B씨는 “창문에서 학생들과 일반인들이 물에 잠기는 모습을 본 게 가장 힘들다. 진짜 생각하기 싫은데 그게 자꾸 생각난다”며 “힘들다. 죄책감도 많이 든다. 내가 (배에) 들어가서 한명이라도 더 구했으면 이런 참사는 발생하지 않았을 텐데…”라고 한숨을 내쉬었다.

제주를 고향으로 하는 세월호 생존자들은 이구동성으로 “사는게 사는게 아니다. 버티는 것”이라고 말한다. 30여명의 생존자들은 현재 끔찍한 나날을 보내고 있다. 아직도 악몽을 꾸고 있는 생존자도 있다.

세월호 참사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심리치료에 필요한 인터뷰를 진행해 온 홍리리 제주여성인권연대 대표는 “생존자들은 하나 같이 삶을 포기하려고 한다”며 “세월호 참사로 인한 1차 피해를 넘어 트라우마라는 2차 피해에 심각히 노출돼 있다”고 깊은 우려감을 내 비쳤다.

홍 대표는 이어 “(세월호 생존자들을 대상으로 인터뷰하면서) '지난해 참사 당시 가장 안타까웠던 것이 무엇이었냐'고 질문했더니 '공권력이 투입되지도 않았고 (공권력이) 늘어나지도 않았다. 구조를 하기 위한 모습을 보이지 않아 참담하고 공포스러웠다'고 말했다”고 전했다.

그는 또 “'생존자들이 배에 남았 있는 사람들을 구하기 위해 배의 구조와 사람들 위치를 알려주고 싶었으나 누구하나 이야기를 들어주지 않았다'고 한다”며 “생존자들은 그러한 모습을 보고 아직도 트라우마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고 토로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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