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 동부지역 곳곳서 덜 발효된 음식물쓰레기 야적·매립 현장 포착

▲ 제주시 회천쓰레기매립장 내 음식물자원화센터 공터에 비닐 포장으로 덮힌 음식물쓰레기 더미가 사방에 쌓여있었다.

19일 오후 3시경 제주시 봉개동 회천쓰레기매립장 내 음식물자원화센터에 들어서자 유난히도 악취가 진동하는 한 구역이 눈에 띄었다.

매립장 내 큰노리손이오름으로부터 약 10~20m 떨어진 공터에는 비닐 포장으로 덮인 음식물쓰레기 더미들이 사방에 쌓여있었다.

▲ 지난 14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구덩이가 19일에는 떡하니 공터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해 파둔 것으로 보인다. 

쓰레기더미에서는 비닐 사이로 가스가 터져 연기가 피어 오르고, 공터 한 가운데는 성인 3~4명은 족히 들어가 앉을 수 있는 폭으로 100m 가량이 움푹 파여 있었다.

발 밑에는 음식물쓰레기를 운반한 것으로 보이는 덤프트럭 바퀴자국들과 음식물쓰레기 잔여물들이 뒤섞여 있었으며, 군데군데 패인 웅덩이에는 허연 기름띠가 낀 썩은 물이 고여있었다.

▲ 군데군데 패인 웅덩이에는 허연 기름띠가 낀 썩은 물이 고여있었다.

최근 <제주도민일보>가 익명의 독자들로부터 제보 받은 음식물쓰레기 ‘매립’ 현장이었다.

발효실 좁아 발효 덜 된 음식물쓰레기 그대로 매립… 침출수 지하수로 스며들어

지난 2005년부터 ‘폐기물 관리법 시행 규칙’에 따라 음식물 쓰레기를 매립지에 직접 묻는 것은 법으로 금지됐다. 악취와 해충, 침출수로 인한 2차 환경오염 등을 막기 위해서다.

이에 따라 제주도는 음식물쓰레기퇴비화시설을 갖추고 음식물쓰레기를 발효·후숙시켜 퇴비를 생산해 농가 등에 보급해왔다.

▲ 음식물쓰레기를 운반한 것으로 보이는 덤프트럭 바퀴자국들과 음식물쓰레기 잔여물들이 얼기설기 뒤섞여 있었다.

하지만 반입→선별→파쇄→탈수→발효→후숙→포장 과정을 거쳐야만 비로소 상품화 할 수 있는데도 불구하고 음식물쓰레기 반입 양이 늘어나 음식물쓰레기퇴비화시설이 포화 상태에 이르면서 덜 발효·후숙된 음식물쓰레기들을 그대로 땅에 매립하고 있다는 지적이다.

이로인해 제주의 생명수인 지하수가 오염되는 것은 물론 인근 곶자왈·오름 등 생태계를 파괴시키고 있다는 것이다.

▲ 군데군데 웅덩이에 침출수들과 썩은 물들이 고여있었다.

음식물자원화센터 내 음식물쓰레기퇴비화시설 관계자 G씨는 “이곳은 침출수를 막는 시설이 전혀 돼 있지 않아 비가 올 경우 폐수가 지하로 그대로 흘러들어간다”면서 “완전한 상품성을 갖추지 못한 퇴비를 땅에 묻는 건 엄연한 불법행위”라고 일침을 가했다.

아울러 “침출수 중 유분이 포함된 탈리액은 무조건 육상처리 해야 하나 처리시설이 따로 없어 하루 평균 40~50톤 내외의 탈리액을 이곳에 함께 매립하고 있는 실정”이라고 고발했다.

G씨에 따르면 음식물쓰레기 불법 매립 또는 야적은 비단 회천쓰레기매립장 내에서만 자행되는 것이 아니었다.

▲ 음식물쓰레기 잔여물들이 나뒹굴고 곳곳에 고인 썩은 물에서는 악취가 진동했다.

"농민들 무상으로 쓰라"며 발효 덜 된 음식물쓰레기 마을 부지에 임시 야적… 악취 곤혹

회천쓰레기매립장 입구로부터 약 100m 떨어진 하천주변 약 5000평에 이르는 부지에서도 비닐 포장으로 덮힌 음식물쓰레기 더미들을 쉽게 발견할 수 있었다.

▲ 회천쓰레기매립장 입구로부터 약 100m 떨어진 하천주변에서도 음식물쓰레기 더미가 발견됐다.

봉개동 주민 A씨는 “발효실이 비좁다 보니 어쩔수 없이 50% 정도 발효된 걸 인근 부지에 임시로 쌓아놓은 것”이라면서 “협작물을 걸러내 퇴비로 이용하기에 별 이상이 없고 주민들은 무상으로 갖다 써도 된다고 해서 허락한 것”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면서 “비가 오면 침출수가 생길 우려가 있어 물이 침투하지 않게 비닐 포장으로 덮어놓은 상황”이라면서 “지자체에서 별 이상이 없다고 하니까 믿고 쓰긴 하지만 정말로 문제가 없는건지 누가 좀 과학적으로 증명해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 벌판 곳곳에서 '퇴비'라는 명목으로 쌓여있는 음식물쓰레기 더미를 어렵지 않게  발견할 수 있었다.

‘문제’를 증명하듯 매립장에서 500m쯤 떨어진 곳에서 식당을 운영하고 있는 B씨가 이로인한 고충을 털어놓았다.

B씨는 “비가 오는 날이면 음식물쓰레기가 하천으로 흘러 내려와 악취로 인해 손님들이 밥을 못 먹을 지경”이라며 “영업에 막대한 지장을 받고 있다”고 토로했다.

음식물쓰레기에서 나오는 엄청난 침출수가 지하수와 섞여 하천으로 흘러들면서 마을 전체를 악취 속으로 몰아넣고 있는 상황.

바농오름 아래 부지에 '불법 야적' 의혹… 토양·수질오염은 '시간문제'

▲ 교래리 돌문화공원 후문에 위치한 바농오름 앞 부지에 발효가 덜 된 음식물쓰레기가 쌓여있다.

몸살을 앓는 건 봉개동 뿐만이 아니었다.

봉개동 인근 마을인 전원마을에도 음식물쓰레기 악취가 흘러들어가고 있다는 제보가 잇따랐다.

전원마을 주민 K씨는 “지난해 10월 새벽녘 트럭들이 요란하게 왔다갔다 하더니 마음에 악취가 퍼지기 시작했다”며 “의심쩍어 트럭 바퀴 흔적을 따라간 곳에는 약 500톤 가량의 음식물쓰레기가 쌓여있었다”고 설명했다.

▲ 바람에 비닐이 벗겨지면서 발효가 덜 된 음식물쓰레기가 모습을 드러냈다.

K씨가 말한 곳은 바로 교래리 돌문화공원 후문에 위치한 바농오름 아래 부지다. 인근에는 교래곶자왈 등이 있어 보전녹지지역에 해당되는 곳에 완전히 발효되지 않은 음식물쓰레기가 무자비하게 뿌려져 있는 것.

당시 K씨를 비롯한 마을 주민들은 제주도청 관련 부서에 찾아가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고 물었으나 돌아오는 답은 ‘우리도 몰랐다’는 것이었다.

이에 전원마을 주민들은 음식물쓰레기의 유입지인 회천쓰레기처리장에 가서 자초지종을 물었더니 그제서야 ‘개인에게 관리각서를 받고 퇴비용으로 내보낸 것’이라는 답변을 들을 수 있었다.

하지만 K씨는 ‘불법 야적’이라는 의심을 저버릴 수 없었다. 마을주민들 중 누가 퇴비를 요구했는지도 알 수 없었으며 한 개인에게 과연 500톤 가량에 이르는 퇴비를 내칠 수 있는 것인지 그 누구도 설명해주는 이가 없었기 때문이다.

▲ 임시방편으로 덮은 비닐이 찢겨지면서 안에 있는 음식물쓰레기 냄새가 진동했다.

이들이 도청을 찾아간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음식물쓰레기에는 비닐 포장이 씌워졌다.

하지만 그동안 관리가 안된 탓인지 19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당시에는 임시방편으로 덮은 비닐이 벗겨져 바람에 날리고 있었다.

대규모로 투척된 음식물쓰레기들은 여전히 발효되지 않은 채 악취를 풍겼으며, 벗겨진 비닐 사이로 희뿌연 연기가 피어올랐다.

▲ 쓰레기더미 주변 토양이 검게 변해 거북이등처럼 쩍쩍 갈라졌다.

쓰레기더미 주변 토양은 검게 변해 거북이등처럼 쩍쩍 갈라져 있었다. 육안으로만 봐도 토양이 얼마나 심각하게 변질됐는지 가늠할 수 있었다.

K씨는 “비닐 포대를 덮어놔도 침출수는 지하로 스며들 수 밖에 없다”며 “침출수가 인근 오름과 곶자왈, 지하수에 스며드는 건 시간문제”라고 꼬집었다.

▲ 비닐이 벗겨진 쓰레기더미 속 모습.

행정기관 "음식물쓰레기 넘쳐서 어쩔 수 없다"… 대책마련 시급

품질 기준에 미치지 못한 음식물쓰레기가 ‘퇴비’라는 명목으로 제주지역 곳곳에 쌓이면서 제주땅과 물이 서서히 썩고가고 있지만 관련 행정기관은 여전히 ‘모르쇠’로 일관하고 있는 실정이다.

음식물자원화센터 관계자는 “지난 2007년부터 센터에서 1일 처리할 수 있는 용량인 110톤을 넘어서면서 처리에 어려움을 겪고 있다”며 “늘어나는 음식물쓰레기를 감당하기가 버거워 궁여지책으로 후숙이 덜된 퇴비를 농가에 무상으로 제공하는 것밖에 방법이 없었다”고 설명했다.

▲ 육안으로만 봐도 얼마나 토양오염이 심각한 지 가늠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환경수도를 자랑하는 제주도가 ‘음식물쓰레기가 넘쳐서 어쩔 수 없다’는 이유로 법을 어기고 자연을 훼손하면서까지 음식물쓰레기를 마구자비로 내쳐서는 것은 안 될 일이다.

제주의 가장 큰 재산인 자연을 스스로 잃고 땅을 치고 후회하기 전에 하루 빨리 음식물쓰레기 퇴비화 시설을 확충하고 처리공정의 기술을 보완하는 등 종합적인 대책마련이 필요해 보인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 쓰레기더미에서는 침출수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 음식물쓰레기를 덮은 비닐포장이 벗겨져 나풀거리고 있다.
▲ 발효·후숙이 덜 된 음식물쓰레기.
▲ 비에 젖어 침출수를 지하로 내보내고 있는 음식물쓰레기.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