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첨] 음식물쓰레기로 제주땅 ‘신음’…행정당국 ‘태연’

▲ 음식물자원화센터 내 음식물쓰레기퇴비화시설. 음식물쓰레기를 탈수한 뒤 톱밥과 혼합해 발효중이다.

제주시 봉개동 회천쓰레기매립장 내에 위치한 음식물자원화센터는 시내에서 발생하는 음식물쓰레기를 퇴비로 만들어 각 농가에 공급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

음식물쓰레기가 퇴비로 만들어지기까지는 반입→선별→파쇄→탈수·혼합→발효→후숙→포장과정을 거쳐야 하는데, 이에 따라 생산되는 퇴비의 공정규격 및 품질관리 등은 ‘비료관리법’에서 규정하는 방법 및 기준에 적합해야 한다.

▲ 음식물자원화센터 내부.

하지만 이 과정에서 덜 발효된 퇴비를 포장하지 않은 채 농가에 반출하면서 제주시 동부지역 곳곳에 음식물쓰레기가 매립·야적되고 있는 현장이 적발됐다.

<제주도민일보>는 지난 21일 ‘음식물쓰레기로 제주땅이 썩고있다’라는 제목의 르포기사를 통해 이 문제를 짚어봤으며 이후 23일에는 제주MBC 8시 뉴스데스크에서도 이 문제의 심각성을 보도한 바 있다.

▲ 덜 발효된 음식물쓰레기가 매립된 토지 부근. 군데군데 패인 웅덩이에는 허연 기름띠가 낀 썩은 물이 고여있다. 

현장 관계자 “임시야적이 대안” vs 행정당국 “포장만 안됐을 뿐” 의견 엇갈려

당시 음식물자원화센터 관계자는 “늘어나는 음식물쓰레기를 감당하기가 버거워 궁여지책으로 발효가 덜 된 퇴비를 인근 부지에 임시 야적해 놓은 것”이라면서 “임시야적이 아니면 대안이 없다”고 해명했다.

하지만 제주도청 해당 담당자에게 이에 대해 묻자 “매립장 내에 매립은 사실 무근”이라면서 “발효가 완전히 안 된 채 농장에 보급하는 경우도 내가 알기론 없다”고 단호하게 말했다.

▲ 지난 14일 기자가 현장을 찾았을 당시에는 보이지 않았던 구덩이가 19일에는 떡하니 공터 한 가운데 자리잡고 있었다. 음식물쓰레기를 매립하기 위해 파둔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제주도청 해당 담당자는 "매립한 적은 없다"고 딱 잘라 말했다.

그러면서 “다만 음식물쓰레기 양이 많아지면서 처리 인력이 부족해 포장이 안된 채 농가에 공급되는 경우는 있다”면서 “봉개동 주민들과는 합의 하에 포장이 안 된 채 나가는 대신 무상으로 제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이어 “개인에게 포장이 안된 채 무상으로 지급할 경우 ‘관리 각서’를 받는다”면서 “바로 뿌리면 악취 우려가 있어 토지주에게 ‘일정기간 비닐포대를 덮어서 숙성시킨 다음 쓰라’고 당부하고 있다”고 말했다.

‘일정기간’의 정확한 일수를 묻자 담당자는 “각 농가마다 다르지 않겠느냐”며 다소 모호한 답변을 내놓았다.

현장에서 실제로 음식물쓰레기를 처리하는 음식물자원센터 관계자와 행정 업무를 담당하는 도청 직원의 말이 엇갈리는 상황.

퇴비화시설의 처리용량 한계는 지난 2007년부터 제기돼 왔지만 왜 아직까지도 대책을 강구하지 못한 채 제주땅 곳곳에 매립·야적해야만 했는지 ‘원인’이 여실히 드러난 것이다.

지자체의 안이한 행정과 각 관계기관 간의 소통 부재는 제주도가 세계환경수도로 도약하기까지 얼마나 갈 길이 먼 지를 증명했다.

▲ 회천쓰레기매립장 입구로부터 약 100m 떨어진 하천주변에서도 음식물쓰레기 더미를 쉽게 발견할 수 있다.

‘불량톱밥’ 혼합해 애초에 퇴비상품 가치 없어… 공정과정 관리 부실

하지만 문제는 여기서 끝나지 않았다. 덜 발효된 문제는 차치하고서라도 애초에 퇴비의 질이 적절치 않다는 지적이다.

비료제조업 관계자 고창완씨에 따르면 비료관리법 상 음식물쓰레기는 탈수 이후 좋은 톱밥 20% 정도를 섞어 발효·후숙시켜야 하는데, 이 과정에서 값이 싼 불량톱밥(폐목재)를 사용해 발효가 전혀 되지 않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비료 공정규격 설정 및 지정 농촌진흥청 고시 212-1호 제6조(비료의 원료 등)에 따르면 폐목재의 분류 및 재활용 기준의 제 1등급에 해당되지 않은 폐목재는 비료원료로 사용할 수 없다.

고창완씨는 “폐목재를 이용해 생산된 비료는 ‘가공된 쓰레기’나 다름없다”면서 “비 온 뒤 음식물쓰레기 야적지에 하얀 찌꺼기가 끼는 것도 바로 이 때문”이라고 지적했다.

▲ 비닐이 벗겨진 쓰레기더미 속 모습.

퇴비화시설 주요 공정과정에서 철저한 관리가 이뤄져야 함에도 불구하고 현재 음식물쓰레기자원화센터에는 주민들로 이뤄진 감시원만 배치된 상황이다.

봉개동 주민 A씨는 “감시원들은 50% 정도 발효됐는지 확인하고 농가에 반출시킨다”며 “시설이 좁고 제주도가 가진 공법이 열악하다보니 이 정도는 이해하고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제주 환경이 소리없이 병들어가고 있는데 단순히 주민과 관계기관간의 ‘이해관계’만으로 상품화되지 않은 음식물 퇴비를 내쳐선 안 될 일이다.

▲ 불량 톱밥과 섞인 음식물쓰레기가 발효가 되지 않은 채 비닐 속에 묻혀 있다. 

지자체, 환경수도 지향하려면 ‘대책마련’ 시급

엄격한 공정과정 관리와 더불어 처리공정 기술의 보완이 시급한 상황.

이에 비료제조업자 고창완씨는 음식물쓰레기 처리 방법의 새로운 대안으로 음식물 내에 들어있는 다량의 열 에너지를 이용해 고체연료로 재활용하는 ‘연료화(Refuse Dericed Fuel) 공법’을 추천했다.

고 씨는 “완투입된 음식물을 호기적 조건 및 적절한 공정 하에 짧은 시간 내 건조·탈취 시킴으로써 음식물 잔재량이 거의 발생하지 않는다”면서 “기존처리방법의 문제로 지적된 2차적 환경문제도 전혀 일으키지 않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 쓰레기더미 주변 토양이 검게 변해 거북이등처럼 쩍쩍 갈라져있었다.

비단 고씨의 제안 뿐만 아니라 지자체 스스로도 음식물쓰레기의 효과적인 자원화를 위한 대안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그저 ‘어쩔 수 없다’는 핑계로 덜 발효된 음식물쓰레기를 내치고 ‘값이 더 싸다’는 이유로 불량톱밥을 이용하는 등의 ‘주먹구구식’ 행정은 머지않아 청정제주를 썩은제주로 만드는 가장 큰 ‘원흉’이 될 것이다.

자연을 잃고나서야 비로소 그 자리에 자연이 있었다는 걸 인지한다면, 그 순간은 이미 늦었다. 환경수도를 운운하기 전에 먼저 자연의 신음소리에 귀 기울이길 바래본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 교래리 돌문화공원 후문에 위치한 바농오름 앞 부지에 발효가 덜 된 음식물쓰레기가 쌓여있다.
▲ 쓰레기더미에서는 침출수가 새어나오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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