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년 간 미성년자 주류 제공 업자 100명 이상 적발
허위 신분증 제시에 직접 경찰 신고 후 음식값 안 내
업주는 영업정지·과징금…정부, 자영업자 보호 나서

청소년 주류제공으로 적발된 제주시내 한 음식점 앞에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담배 판매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서희 기자
청소년 주류제공으로 적발된 제주시내 한 음식점 앞에 ‘19세 미만 청소년에게 술·담배 판매금지’ 안내문이 붙어있다. 이서희 기자

[제주도민일보 이서희 기자] #제주시에서 닭갈비 가게를 운영하는 60대 A씨는 지난 2022년 1월 4명의 손님을 받았다. 주말 저녁 시간 밀려드는 주문으로 음식을 만드느라 정신이 없었던 A씨 대신 외국인 직원이 이들에게 닭갈비와 돼지 껍데기를 주문받았다. 직원이 주문 메뉴를 A씨에게 전하려고 주방에 들어간 사이 4명의 손님은 술이 보관된 냉장고에서 소주 5병을 몰래 꺼내왔다. 이들은 밑반찬이 나오기도 전에 각자의 잔에 소주 1병을 나눠 따라놓았다. 곧바로 경찰이 단속을 나왔고 A씨와 직원은 그제야 이들이 소주를 몰래 꺼낸 사실을 알아차렸다. A씨가 억울함을 호소했지만 제주지방검찰청은 청소년 보호법 위반 혐의로 A씨에 대해 벌금 50만원의 구약식 처분을 내렸다. 청소년 주류제공에 따른 형사처벌로 영업정지 행정처분도 받았다.

#금요일 늦은 오후, 50대 B씨가 운영하는 프랜차이즈 맥줏집에 키 180cm가 넘는 남성 2명이 술에 취한 상태로 들어왔다. 이들은 신분증 제시를 요구하는 가게 직원에게 “다른 곳에서 술을 마시고 왔기 때문에 미성년자가 아니다”라고 말했다. 이들의 주장에 직원은 주류를 제공했으나 이후 신고를 받고 출동한 경찰에 의해 청소년임이 드러났다. B씨는 매일 직원들에게 청소년 주류제공 금지 교육을 실시할 정도로 예방에 철저했으나 바쁜 시간대 술에 취해 들어온 미성년자에 속아 과징금 처분을 받았다.

이처럼 제주지역 자영업자들이 청소년인 걸 알지 못하고 술을 팔거나 고의적인 속임에 의해 처벌 또는 행정처분을 받고 있어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

청소년 보호법에 따라 만 19세 미만의 미성년자에게 술을 판매하면 2년 이하의 징역이나 2000만원 이하의 벌금에 처해진다.

제주경찰청에 따르면 최근 2년(2021~2022년) 간 제주에서 미성년자 주류 제공으로 적발된 자영업자는 124명으로 집계됐다.

연도별로 보면 2021년 50명, 2022년 74명이다.

특히 청소년 보호법상 청소년 주류제공으로 형사처벌될 경우 식품위생법에 따라 영업정지 2개월에서 영업장 폐쇄까지 행정처분을 받을 수도 있다.

지난 2016년 식품위생법 시행규칙이 개정되며 신분증 위·변조로 인해 청소년인 사실을 알지 못한 사정이 인정될 경우 행정처분이 경감될 수 있도록 했지만 입증책임이 업주에 있기 때문에 경감 받기는 쉽지 않다.

실제 제주시 일도동에서 식당을 운영하는 고모씨 역시 청소년이 제시한 허위 신분증에 속아 주류를 제공했다가 경찰에 적발됐다.

다행히 고 씨의 가게 내부에 CCTV가 있어 허위 신분증을 확인하는 모습이 찍혔고 영업정지 2개월 처분에서 과징금 처분으로 경감받을 수 있었다.

하지만 영세한 음식점들의 경우 CCTV가 없는 곳이 많아 허위 신분증을 제시하더라도 입증이 어려운 상황이다. 영업정지에서 과징금으로 행정처분이 경감된다고 하더라도 수백만 원의 과징금이 부담스럽긴 마찬가지다.

또 억울한 사연이 있을 때 소송이나 행정심판 등을 통해 처분을 경감받을 수 있으나 비용과 절차 등 문제가 복잡해 포기를 하는 자영업자들이 많은 실정이다.

제주시 연동에서 감자탕집을 운영하는 최모씨는 “직원이 청소년으로 보이지 않는 손님에게 주류를 제공했는데 알고 보니 청소년이었다”며 “행정심판 등 절차가 복잡해 시도도 해보지 못하고 영업정지 2개월 처분이 확정됐다. 영업을 쉬는 동안 수천만 원의 피해가 발생했다”고 토로했다.

인터넷 커뮤니티 갈무리.

더 큰 문제는 미성년자가 아니라고 속여 술을 마신 청소년은 처벌되지 않는 법을 악용하는 사례가 있다는 것이다.

일부 청소년들은 음식값을 내지 않기 위해 술과 음식을 주문해 먹은 뒤 직접 경찰에 신고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 단속에 당황한 업주들이 청소년에게 음식값을 받지 못하는 점을 노리는 것이다.

이로 인해 영업정지 처분을 받은 자영업자들은 폐업을 하는 등 생계를 위협받고 있다.

자영업자들의 피해가 커지자 정부는 청소년이 나이를 속여 술·담배를 구매하거나 숙박시설을 이용했을 때 업주가 억울하게 행정처분을 받지 않도록 법령을 개정하기로 했다.

자영업자가 신분증 검사를 제대로 하는 등 ‘고의성’이 없었다면 구제해주겠다는 것이 골자다.

앞서 지난 15일 정부세종청사에서 열린 ‘선량한 소상공인 보호 관계기관 협의회’에서 윤석열 대통령은 청소년에 속아 피해를 본 자영업자들의 사연을 들은 뒤 “청소년 여부를 따져봤다는 것만 입증되면 영업정지가 되는 불이익 처분을 하면 안 된다”며 담당 부처에 개선 조치 마련을 지시한 바 있다.

이와 관련 정부 관계자는 “관계기관과 지속적으로 협업해 소상공인이 안심하고 영업할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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