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생생교육]<14>유치원 사교육
갈수록 빨라지는 교육열 점화시기
영어·독서·미술 입시 교육 미리미리
이른 공부, 아이 흥미를 잃게 하는 주범

전문> “맘들(엄마들) 사교육 언제부터 시작하나요? 아는 언니는 4살부터 시작했다는데. 제 딸은 이제 7살이에요. 지금부터 시작해도 괜찮을까요?”(제주도육아카페·하윤맘)

자식 교육을 위해 세 번이나 이사를 다녔다는 ‘맹모삼천지교’는 이제 더이상 위인전에서나 볼 수 있는 얘기가 아니다. 요즘 부모들은 ‘내 아이를 위해’ 해야 할 일이 너무 많다. 잘 나가는 유치원이 집에서 멀다면 유치원 출퇴근은 불사하고, 영유아때부터 서둘러 예약하는 것은 기본이다.

아이를 가진 부모들은 불안하다. 내 아이가 경쟁에서 뒤처지지 않기 위해 더 많이 더 빨리 공부하기를 바란다.

전문가들은 부모들의 이런 행동이 경쟁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에서 비롯된 것이라고 진단한다. ‘교육열’이라기보다는 ‘학벌열’에 더 가깝다고 지적한다.

△조기 교육, 점차 낮아지는 연령대
예전에는 고등학교→중학교→초등학교 순으로 교육열이 불붙기 시작했다면, 최근 들어서는 갈수록 ‘점화 시기’가 빨라지고 있다.

이제 7살이 되는 딸을 둔 유모씨(32)는 “엄마들은 (사립)유치원으로 소문난 곳에 아이를 보내기 위해 매일 아침·저녁 먼거리 출퇴근을 마다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유씨가 말하는 ‘좋은 유치원’은 영어를 잘 가르치고, ‘친환경’으로만 엄선한 간식을 아이들에게 먹이는 곳이다. 많은 엄마들이 경쟁적으로 몰리는 유치원이라는 프리미엄이 붙으면 금상첨화.

유명세를 탈수록 비용은 올라간다. 도내에서 가장 경쟁이 치열하다는 A유치원은 수업료·입학료·급·간식비와 각종 현장학급 경비, 준비물 등을 합하면 최소 월평균 50만원 이상이 필요하다. 일반 공립유치원이 수업료·급식비를 포함 6만원대라는 점을 감안하면 8~9배 가량 차이가 난다.

△영어·독서 논술 ‘미리’ 배워야?
사교육에서 가장 많은 관심을 보이는 부분은 바로 영어 교육. 유치원의 선택기준도 ‘영어’로 가름된다.

영어반이 있는 유치원에 아이를 2년째 보내고 있다는 김미정씨(38)는 “어렸을 때 영어를 들었기 때문인지 영어를 공부라고 생각하지 않는 것 같다”며 “일찍 영어를 접하게 한 것이 좋은 것 같다”고 말했다.

반면 이모씨는 “아직 어린 아이가 적응하기 쉽지 않은것 같다”며 “수업에 집중하지 못하고 딴 짓만 하는 아이를 보니 이건 아니다 싶었다”고 말했다. 이씨는 초등학교 이후에 영어를 가르칠 생각이라고 했다.

영어뿐만이 아니다. 아이가 8살이라는 최정진씨(35)는 최근 엄마들 모임에 참석했다가 놀랐다. 다른 아이들이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부터 다양한 사교육을 받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치원만 다니는 아이는 저희 아이 하나뿐이더라고요. 영어에 사고력 수학, 독서 논술교육까지. 저희 아이는 유치원 방과 후 수업에서 미술수업을 주 1회 하는데 또래 엄마들에게 말도 못 꺼냈어요”
유씨는 “아직 어린 아이에게 뭘 그렇게 시켜야하나 싶으면서도 내 아이만 너무 안 시키는 게 아닌가 싶어” 걱정스럽다.

미술·음악 등 조기 예체능교육도 빠지지 않는다.

예체능교육은 정서적인 안정감은 물론 두뇌발달과 창의력 발달에도 도움을 준다. 하지만 대개 본래의 목적에서 벗어나 있는 경우가 많다.

이모씨(32)는 “초등수업의 즐거운 생활과정 이해와 향후 수행평가를 위해 6살때부터 아이를 피아노학원에 보내기 시작했다”며 “고학년이 되면 학교 공부에 지장이 있을 것 같아 딱 3년만 보내려고 한다”고 말했다.

고소영씨(35)도 마찬가지다. 고씨는 “8살이 되면 체력단련을 위해 미리 수영을 배우게 할 생각”이라고 말했다.

미술학원 강사인 홍미란씨는 “엄마들의 조급함때문에 아이들이 예체능의 즐거움을 못 느끼고 학습의 한 형태로 받아들이게 된다”고 우려했다.

△너무 이른 사교육 ‘글쎄’
부모들은 이른 사교육의 원인을 불안감 때문이라고 하소연한다.

중3 딸과 초등학교 6학년 아들의 사교육비로 한달에 각각 150여만원씩을 쓴다는 김모씨(45)는 “이 정도라도 하지 않으면 불안해서 견딜 수가 없다”고 말했다. 김씨는 “이렇게까지 해야 하나 싶다가도 아이의 미래를 생각하면 불안해서 잠이 안 온다”고 털어놨다.

초등 고학년부터 입시에 대해 고민하던 시대는 옛날이다. 요즘 아이들은 서너 살이면 한글을 떼고 유아 시절부터 영어 등 온갖 사교육을 받는다. “내 아이가 남보다 앞서 나갔으면‘하는 바람때문이다.

하지만 초등교육전문가 김혜원씨(「초등 1학년 엄마의 12달」 저자)는 “초등 저학년 담임선생님들이 가장 애를 먹는 부분 가운데 하나가 과도한 사교육과 선행학습으로 학습에 대한 흥미를 잃은 학생들의 눈과 귀를 수업에 집중시키는 일”이라고 지적한다.

김씨는 “너무 이른 사교육은 유아의 스트레스를 높이고 창의력에도 도움이 되지 않을 수 있다”고 조언한다.

그는 “사교육에 정답은 없지만 너무 이른 나이부터 좋은 성적을 내고 남보다 앞서는 일에만 치중하면 아이는 해당시기에 길러야 하는 바른 생활 태도를 놓치기 쉽다”라고 강조했다.

조용환 교수(서울대 교육학과)는 “부모들이 교육이 무엇인지에 대한 진지한 성찰 없이 경쟁에서 낙오될 것이라는 불안감에 너도나도 사교육으로 뛰어들고 있다”며 “조기 교육에 돈을 쏟아붓는 것은 엄밀히 말해 교육열을 가장한 학벌열이며 ‘사회적 지위 쟁탈전’에 불과하다”고 말했다. /오경희 기자 noke3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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