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1999년에 처음으로 열린 용연 선상(船上) 음악회의 모습이다. 이 음악회는 동굴소리연구회의 대표였던 현행복이 용연야범(龍淵夜泛)을 음악회로 재현한 문화행사로, 2002년부터는 제주시 주최 제주문화원 주관으로 해마다 개최되고 있다. 출연자들은 용연 계곡에 띄워진 제주의 전통 뗏목인 '테우'에 올라 공연을 펼치고, 관람석은 용연계곡의 동쪽과 서쪽 둔덕
▲ 일제강점기 때 제주시 칠성통의 반상점(伴商店)으로, 잡화를 팔았던 일본인 가게 모습이다. 이 상점은 나중에 한양상회가 됐다. 상점 왼쪽 집이 제주약국(김두봉 운영)이다. 전봇대 옆의 짐을 실은 자전거와 간판, 상점 안 풍경, 일본어로 쓰인 광고 문안 등이 이채롭다.(쓰루가와 사진). '사진으로 보는 제주역사1'에서 발췌.
▲ 1970년대 중반 제주공설운동장에서 열렸던 교련 실기대회. 뒤쪽 스탠드 오른편 상단에 총력안보라는 글씨가 보인다. 오현고등학교 학생들의 '받들어 총' 장면이다. 1969년 2월에 공포된 고등학교 교련과 교육 과정의 내용은 남녀의 특성을 감안해 남학생과 여학생으로 구분해 남학생은 제식훈련, 총검술, 사격, 독도법 및 군법 등을 지도하는 반면, 여학생은
▲ 1970년 여름에 찍은 서귀포 천지연 하류 쪽의 포구 모습이다. 많은 사람들이 몰려 있는 것으로 보아 아침에 만선을 이룬 고깃배가 막 들어올 때의 장면인 것 같다. 갯가에 모여 있는 사람들은 대부분 고기를 사러 나온 사람들일 것이다. 잔잔한 바다와 맞닿은 곳에 녹음이 무성하고 절벽 위로 초가가 운치 있게 자리를 잡았다.(국가기록원) '사진으로 보는 제
▲ 우도 동굴음악회는 1997년 동굴소리연구회 현행복 대표가 '동굴과 소리의 만남'이라는 이색적인 아이템을 갖고 시작됐다. 우도 동굴음악회를 찾은 관광객들이 환상의 하모니에 빠져들고 있다. 그 사이 우도 동굴음악회는 이색문화상품으로 자리매김했다. 우도 동굴음악회는 1997년 속칭 '고래콧구멍동굴'에서 시작된 이후 동안경굴 외에 1998년 동해시 천곡
▲ 1960년대에 찍은 사진이다. 농부들이 말과 마차를 끌고 어디론가 가고 있다. 앞에는 마차 두 대가 지나가고 있는데, 마차에는 사람들이 타고 있다. 뒤에는 농부 세 사람이 한 필 또는 두 필의 말을 끌고 가고 있다. 도로는 확장된 것같이 보이나 포장은 이뤄지지 않았다. 길가로는 집들이 늘어서 있고 왼편으로 성(城)의 일부분도 보인다. 대정현성 부근으로
▲ 1930년대 제주민속자료 1호인 복신미륵상인 서자복을 촬영한 유리건판 사진이다. 서자복은 제주시 용담동 동한두기 용화사 경내에 있는 미륵상으로, 요즘과는 사뭇 다른 느낌으로 다가온다. 제주읍성을 중심으로 동쪽 건입동에 있는 동미륵상과 마주보는 형태로 세워졌다. 이들 미륵상은 자복상으로 불리는데, 서쪽에 있어서 서자복상, 동쪽에 있어 동자복상이라 부른다.
▲ 1990년대의 자리돔 잡는 장면이다. 테우를 이용하던 에전의 모습과는 달리 한 척의 작은 배를 활용해 그물로 자리돔을 잡아 올리고 있다. 서귀포시 보목동 앞바다 섶섭 부근에서 촬영한 것이다. 예로부터 자리돔 하면 모슬포와 보목의 자리돔이 유명하다. 물살이 센 바다에서 잡히는 모슬포 자리돔은 크기가 굵고 가시가 억세어 주로 구이와 조림용으로 이용되는데 비
▲ 1977년 9월15일 12시50분 에베레스트 한국원정대(대장 김영도) 고상돈 대원이 셰르파 펨바 노르부와 함께 에베레스트 8848m 정상에서 태극기를 들어 정상 정복의 기쁨을 만끽하고 있다. 그는 "여기는 정상"이라는 말로 정상에 선 기쁨을 표현했다. '세계의 지붕'이라는 에베레스트 정상에 섬으로써 제주도 산악인의 기상을 보여주었다
▲ 지금은 제주공항 확장과정에서 사라진 1970년대 말의 도두동 '몰래물' 마을의 모습이다. 낮게 자리잡은 초가, 그 사이로 난 꾸불꾸불한 마을길, 군데군데 보이는 제법 큰 나무들이 1960~1970년대 제주도의 전형적인 농촌마을을 연상시킨다. 1979년까지 3차례에 걸친 제주공항 확장공사로 인해 '몰래물' 마을은 완전히 폐동되고, 한때 150 여
▲ 오현단 일대가 새롭게 복원되기 이전의 모습이다. 오현의 위패를 상장히는 조두석과 함께 목사 장인식이 1850년 4월에 써서 세운 <귤림서원묘정비기> 비가 이도1동 142-3에 서있다. 오현단은 고종 8년(1871) 귤림서원이 철폐된 후, 고종 8년(1892) 제주 유림대표 김희정 등의 건의에 의해 귤림서원에 배향됐던 오현을 기리기 위해 마련한
▲ 일제강점기 때 제주도에서 검사장을 지냈던 박종훈 판사 일행이 외도 월대에서 망중한을 보내고 있는 모습이다. 모자와 흰 두루마기가 이채롭다. 월대는 외도2동 도근천 하류에 있는데, 물이 깊고 맑으며 바닷물과 민물이 만나는 곳이어서 뱀장어와 은어가 많다. 마을 사람들은 "신선이 하늘에서 내려와 동쪽 숲 사이로 떠오르는 달이 맑은 물가에 비친 달 그
▲ 표선면 성읍리 일관헌 주변에 위치한 느티나무이다. 이곳은 조선시대 때에 정의현청이 있었던 곳으로 느티나무는 정의현성 안 정의현감이 정무를 보던 동헌 오른쪽에 자리한다. 현재 이곳에 있는 1그루의 느티나무와 3그루의 팽나무는 천연기념물 제161호로 지정(1964. 1. 31.)됐다. 그 중 느티나무의 높이는 15m, 둘레 5.3m이며 지상 1m 부위에서
▲ 1960년대 조천포구 모습을 담은 사진이다. 육지에 올려놓은 배와 포구에 정박해 있는 배 모습이 대조적이다. 오른쪽의 성담은 조천진성의 일부 성곽으로 추정된다. 왼쪽에 배가 왕래하는 길을 제외하고 길게 돌담으로 파도를 막는 벙어벽이 설치돼 있다. 포구 뒤로 대다수의 초가들이 옹기종기 모여서 마을을 이루고 있다. 초천포는 지금의 조천읍 조천리에 있는 개낭
▲ 등산을 하던 사람들이 철쪽꽃이 활짝 피어 있는 곳에서 쉬고 있는 장면이다. 철쭉꽃은 5월 중순에서부터 한라산의 고도를 따라 피기 시작해 6월 중순경이면 '왕관릉, 장구목, 만세동산, 선작지왓, 영실' 일대에 이르기까지 화려한 분홍빛으로 산을 아름답게 수놓는다. 5월말 산악인들이 한 자리에 모여 철쭉제를 지내는데 철쭉제에 참가한 사람들 중에서 철쪽꽃
▲ 제주도에 화물자동차가 등장해 자동차운수업을 시작한 것은 1932년 2월로 알려져 있다. 신형 시보레 화물차 1대가 들어와 화물 운수업을 했는데, 그때까지 우마차에 의존하던 화물 운송이 큰 변화를 맞게 됐다. 초창기에는 전기노선 없이 운송주문에 따라 운행됐는데, 요금은 1리를 기준으로 20근 이내 25전, 50근 이내 55전, 100근 이상은 100근 증
▲ 1960년대 초반에 천지연에 서식하는 무태장어를 붙잡은 모습이다. 무태장어는 뱀장어과에 속하는 열대성 물고기이다. 몸길이가 2m까지 자라는 큰 물고기로 몸은 황갈색 내지 암청색이며 배는 담색이다. 뱀장어와 비슷하나 암갈색 구름모양의 무늬와 작은 반점이 몸과 지느러미에 있다. 민물에서 5~8년간 서식하다가 깊은 바다로 내려가 알을 낳는다. 수중의 바위틈이
▲ 1940년대 바닷가 풍경으로, 해녀들이 바닷가에서 '듬북, 몸' 따위 등 해초를 공동으로 작업하는 모습이다. 왼쪽 아래쪽에 작은 거룻배가 보이는 것으로 보아 바다에서 따온 '듬북'이나 '몸' 등을 뭍으로 올려놓고 제각각 나누어 지게에 지고 갈 요량을 하고 있는 것 같다. 팔짱 끼고 구경하는 사람, 가마니때기를 허리에 대고 지게에 해초를 얹으려
▲ 1960년대 관덕정 동남쪽에 자리한 돌하르방이다. 길 건너편에는 경찰서 관사로 쓰였던 한옥이다. 이 돌하르방은 둥그스름하고 태가 뚜렷이 나타나는 모자를 쓰고 있다. 계란형 얼굴로서 긴 원통형 몸체를 지니고 있다. 툭 튀어나온 부리부리한 큰 눈과 자루병 같은 코, 입은 일자로 곧게 다물었고, 오른손은 가슴 위에 올려 놓았다. 돌하르방은 제주도의 대표적인
▲ 고구마를 얇게 썰어 햇볕에 말린 절간고구마를 제주에서는 '감저뻿데기'라 한다. 절간고구마는 주정원료로 이용됐다. 고구마를 쌓아 놓은 곳에서 절단기로 고구마를 썰어 놓으면 아낙들이 썰어 놓은 고구마를 잘 말릴 수 있도록 우도의 풀밭에 뿌리고 있는 모습이다. 고구마 절단기는 손으로 회전판 절단기와 연결된 손잡이를 돌리는 방식의 절단기를 사용