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년 지방선거 화두는 성장과 일자리 확대
숫자놀음 이제 그만…양보다 질 매우 중요

[좌승훈 칼럼] 지금 우리 사회의 최대 화두는 일자리 창출이다. 일자리 창출과 확대야말로 부의 분배와 복지에 이르는 최선의 사회 안정 대책이다.

지난 5.9 대선 때도 그랬다. 대선주자들은 너나 할 것 없이 일자리 창출을 앞세웠다. ‘일자리 대통령’을 표방했다. '공공부문 일자리 81만개 창출'을 공약으로 내건 문재인 대통령의 첫 업무 지시도 '대통령 직속 일자리위원회' 설치였다.

미국의 트럼프 대통령도 예외가 아니었다. 당선 후 처음으로 가진 기자회견에서 ‘일자리(Job)’라는 말을 17차례나 되풀이했을 정도다. 경제회생을 위해 ‘위대한 일자리 창출자’가 될 것이라고도 했다. 일자리 창출은 이처럼 세계 어느 정권이나 가장 중요한 정책 목표 중 하나가 됐다.

일자리 창출과 청년 실업 해소는 매 선거 때마다 등장하는 단골 메뉴다. 이번 대선 뿐 만아니라, 역대 총선, 지방선거 때도 핵심 공약이었다. 그러나 매번 녹음기 틀 듯했다. 포장만 요란하고 내용은 부실하다보니, 정작 성과는 만족할 만한 수준이 못 됐다.

일자리박람회.

# 민선 4기 2만개・민선 5기 2만개, 국제자유도시 9만개…결과는?

지난 2014년 6.‧4 지방선거에서 원희룡 지사는 공약집 ‘제주 3·6·5약속’을 통해 5년 후 제주경제규모를 GRDP(지역 내 총생산) 25조원 수준으로 키우겠다고 선언한 바 있다.

일자리 창출에 대해서는 이전 도정과는 달리, 연간 또는 임기 내 일자리 창출 목표치를 제시하지 않았지만, ▷수도권 성장·유망기업 유치를 통한 일자리 창출 ▷청년 일자리 만들기 사업 확대 ▷취약계층 일자리 지원 사업 ▷일자리 정보 통합관리 및 고용지원센터 역할 강화 등을 약속했다.

당시 상대 후보였던 신구범 전 지사는 도지사 직속의 ‘좋은 일자리 위원회’를 만들고, 매년 5,000개의 양질의 새로운 일자리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놓기도 했다.

앞서, 우근민 지사는 2010년 6・2 지방선거에서 ▷지역산업 육성을 통한 일자리 창출 ▷중소기업 육성을 통한 기업 경영 안정화 ▷미래 인재 양성을 통한 인적 인프라 구축을 통해 일자리 2만개 창출을 핵심 공약으로 제시했다.

김태환 지사도 2006년 5・31 지방선거에서 공공분야에서 5,000명, 관광개발 및 투자유치 분야 등에서 1만5,000명의 일자리를 창출하겠다는 공약을 내걸었다.

또한 2002년 6・13 지방선거에서 당선된 우근민 지사는 당시 제주국제자유도시 추진과 관련해 2011년까지 29조원이 투입되는 내국인 면세점, 쇼핑 아웃렛, 서귀포 관광 미항, 휴양 주거단지, 생태·신화·역사 공원 조성 등 7대 선도 프로젝트를 통해 9만개의 일자리가 새로 창출된다고도 했다.

# 일자리 공약대로라면 취업 걱정 ‘끝’…현실은 ‘보릿고개’

일자리 공약만 보면 취업 걱정은 끝이다. 그러나 현실은 여전히 ‘보릿고개’였다.

역대 도정이 일자리 창출 청사진을 제시하고 피부에 와 닿는 성과를 내겠다고 했지만, 기대가 물거품이 된 게 다반사였다.

일례를 보자. 2006년 10월 국회 행정자치위원회에 제출한 제주도의 국정감사자료에 따른 보도내용. 2004년 1월부터 2006년 7월까지 제주도는 일자리 창출 사업을 통해 도민 1만240명을 취업시켰다고 발표했다. 제주도는 이를 위해 혈세 116억7,800만원을 썼다. 그러나 직종 상당수가 도로 청소 등 공공근로사업(3,480명)과 아르바이트성 고학력 취업 연수(4,207명) 등 몇 개월짜리 단기 계약직이었다. 질보다 양이었고, 숫자잔치에 휘둘렸다.

투자진흥지구도 예외는 아니다. 투자진흥지구는 핵심 산업 육성과 투자 유치를 위해 500만 달러이상 투자하는 국내・외 자본에 조세 특례를 주는 제도다. 2002년 제도가 첫 도입된 후, 현재 제주도내에는 45개 투자진흥지구가 있다. 지구 지정이 되면 국세, 지방세, 각종 부담금 감면 혜택이 주어진다.

세제혜택이 많고 행정 지원 또한 적극적이어서 해당 업체들은 지구 지정을 받기 위해 저마다 인허가 과정에서 일자리 창출을 통한 지역경제 활성화를 적극 내세웠다.

일자리를 아예 직급별 숫자까지 구체적으로 명시했다. 그러나 대부분 그 때 뿐이었다. 사업이 완료되고 나면, 기존 정규직을 근로자 공급과 파견, 용역, 도급, 위탁, 사내 하청 등의 간접고용 형태로 전환한 곳이 많다.

좋은 일자리는커녕 저임금에 지속성 없는 일자리만 만들었다. 이는 굳이 세제 혜택을 쏟아 붓지 않고서도 만들 수 있는 일자리다. 우리가 이러려고 투지진흥지구를 지정한 것은 아니지 않은가?

사업 현장에 대한 정기 점검 강화와 투자계획 대비 실적, 일자리 창출 등에 대한 행정의 보다 엄격한 잣대가 필요한 이유다.

소속 외 근로자는 직접 고용인 정규직과 기간제에 포함되지 않아 상대적으로 고용의 질이 낮기 때문에 소위 '나쁜 일자리'로 분류된다.

지금 기업들은 싼 값으로 사람을 쓰는 데 익숙해져 있다. 부동산 개발 바람을 타고 최근 10년 동안 도내에 휴양콘도미니엄, 호텔 등 관광 숙박업이 경쟁적으로 들어서면서 인력 파견을 전문으로 하는 아웃소싱업체도 큰 폭으로 늘어났다. 이는 좋은 일자리 늘지 않고, 나쁜 일자리만 늘었다는 방증이기도 하다.

일자리박람회.

# 청년 일자리 부족…인력 역외 유출↑, 출산율↓, 지역 활력↓

제주지역 대학 진학률은 81.9%다. 전국 평균 70.8%보다 많다. 문제는 교육열이 치열한데 반해 ‘양질의 일자리’는 매우 부족하다는 것이다.

최근 3년 동안 제주지역 15~29세 청년층 실업률은 2014년 6.1%를 기록한 후, 2015년 4.9%로 나아지는 듯 했으나, 2016년 5.2%로 올랐다. 실업자 통계에 잡히지 않는 취업 준비생이나 구직 포기자, 단시간 근로자를 감안하면 실질적인 청년 실업률은 이를 훨씬 웃돌 것이다.

더욱이 지역 내 청년 일자리 부족은 지역 청년의 역외 유출로 이어진다. 청년층의 이탈은 결과적으로 출산율 하락과 지역의 활력을 떨어뜨리는 원인이 된다.

# 일자리 창출 당위적 과제 “보다 정교한 청사진 내놔라”

내년 6・13 전국동시지방선거 때도 일자리 창출은 최대 화두가 될 것이다. ‘일자리 도지사’가 될 것이며 ‘일자리를 만드는 게 최우선 목표’라는 후보도 나올 것이다. 이를 두고 “누가 옳고, 누가 진짜 일자리 만들 수 있는 후보인가?”에 대한 치열한 검증도 따를 것이다.

그러나 상황은 녹록치 않다. 저성장 기조가 고착화되면서 일자리 수 자체를 대폭 늘리긴 쉽지 않다. 세금으로 일자리를 마냥 늘릴 수도 없다. 임시방편에 불과하다. 오래가지 않을 뿐 만 아니라, 세금만 축낼 수 있다. 비효율적인 공공부문이 더 비대해질 수 있다.

일자리 창출은 당위적 과제다. 중요한 것은 재원 확보 방안을 비롯해 구체적인 실행 방향과 전략을 내놔야 한다는 것이다.

세금 쏟아 붓는 일자리나 재원 조달 대책이 없는 일자리는 지속 가능할 수 없다. 일자리 확대를 위해 어떠한 복안을 갖고 있는지 보다 정교한 청사진이 제시돼야 한다.

이를 위해 노·사·민·정 사회협약을 통해 일자리 관련 정책의 컨트롤타워와 같은 역할을 할 조직이 필요하며, 또한 일자리를 만드는 것은 결국 기업이라는 점에서, 단순 고용 보다는 양질의 일자리를 확대하는 기업에 대해 각종 인센티브를 제공할 수도 있을 것이다. 일자리 양극화가 갈수록 심화되는 만큼, 저임금 근로자가 중간 일자리로 옮겨갈 수 있도록 사다리를 만들어 주는 것도 방법이다.

좌승훈 주필.

분명한 것은 숫자 채우기 식의 상투적인 일자리 공약은 이제 더 이상 유권자들의 ‘눈높이’를 따라갈 수 없다는 것이다.

실적에 급급한 전략은 더 이상 의미가 없다. 피부에 와 닿는 성과가 더욱 절실하다. 진짜 ‘일자리 도지사’를 원하는 이유다. 이는 결과적으로 유권자들이 바로잡을 수밖에 없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