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충열 <㈔제주씨네아일랜드 이사장>

며칠 전 커피숍에서 차를 마시고 있는데 본의 아니게 옆 테이블에 앉은 3명의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엿듣게 되었다. 그날 그분들의 주제는 아이들의 자율학습에 관한 얘기였다.

한 어머니가 말을 했다. “나는 무조건 찬성이야. 싸움을 해도, 말썽을 피워도 학교에서 피우는 게 낫지 밖에서 피우면 골치 아프지 않아?” 

옆에 있던 다른 어머니가 말을 이었다. “근데 학원때문에 걱정이야. 학원 시간하고 겹치면 어떻게 하지? 그래도 학원비는 줄일 수 있겠네. 그리고 아무리 멍하니 있다고 해도 자리에 앉아 있으면 뭐 배우는 거라도 있지 않겠어?”

마지막 어머니가 거들었다. “애들이 일찍 오면 내가 그 시간에 집에 있어야 하는 거잖아. 난 그렇게는 못하지.”

마지막 어머니의 말에 다른 어머니들은 깔깔 웃으며 박수를 쳤다.

"평화도 비싸면 안돼"

세상엔 참 다양한 사람들이 있다. 자율학습인지 타율학습인지 알 수는 없으나 이것 한가지만 두고서도 이러저러한 의견들이 많으니 말이다. 옆 테이블에 앉은 어머니들의 이야기를 들으면서 우리 아이들은 너무나 획일적인 교육을 받고 있다는 생각을 떨쳐버릴 수가 없었다.

몇년전, 제주는 가칭 ‘평화학교’ 설립 문제로 한바탕 떠들썩해진 일이 있었다. 당시 평화학교를 추진하던 분들은 “제주도가 진정한 ‘세계 평화의 섬’으로 거듭나기 위해서는 제주의 미래 세대들에게 평화교육이 일상화되고 정착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런데 이 평화로운 이름의 학교 설립은 곧바로 시민단체들의 반대에 부딪힌다. 그 이유는 등록금이 연간 400만원이나 하는 학교라 귀족학교임이 틀림없고, 이러한 등록금은 학교선택권 자체를 차별하는 것이라는 주장이었다.

평화학교 설립은 나름 제주에서 신망을 얻고 있는 인사들이 주축이 되었는데 물론, 그분들이 추진하는 사업을 시민단체들이 이러저러한 논거를 대면서 비판을 하는 것은 결코 비생산적이라고 생각지도 않았다. 나는 다만 이 학교설립에 대한 문제가 생산적인 비판을 통해서 결론적으로 아이들이 다양한 교육을 받을 수 있는 과정이 되어주기를 간절히 바랬다.

평화학교와 귀족학교의 차이는 뭐?

하지만 어찌된 일인지 이 평화학교 설립은 귀족학교의 오명만 뒤집어 쓴 채 철회되고 말았다. 그리고 최근 제주도엔 국제학교가 들어서게 되었다. 제주지역 신문들은 이 국제학교에 대한 도민들의 관심이 매우 높으며 제주도 학생 특례입학 정원을 5%로 정했다는 소식을 전했다. 등록금은 3300만원 정도가 될 것 같다는 보도도 ‘아무렇지 않게’ 전했다.

이 보도를 듣고서 신문과 인터넷을 아무리 뒤져봐도 어떤 시민단체도, 그 누구도 이 국제학교에 대한 비판을 찾을 수가 없었다. 그 누구도 이 학교가 귀족학교이며 학생의 학교선택권을 차별하는 것이라고 주장하는 것을 보지 못했다.

어떤 예능프로그램에 코메디언이 나왔다면 이렇게 얘기했을 것이다.

“왜들 그러세요. 평화학교는 너무 싼 학교였잖아요. 그래서 우리가 반대했던 거잖아요. 표정이 왜들 그러세요? 평화학교 설립이 안되서 안타까운 사람들 처럼. 이제 우리 격에 맞는 학교가 생겼잖아요. 입학금 3300만원이면 뭐. 그래도 사돈에 팔촌까지 보낼 수 있잖아요. 왜들 그러세요? 표정이?”

비판은 일관성이 있어야 한다. 그래야 그 말을 믿게 되는 것이다. 그래야 그것이 단체가 되었던 개인이 되었던 존립의 이유가 생기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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