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제주대 의료관리학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지난 지방선거에서 정치적 쟁점으로 급부상하였던 무상급식 문제는 하나의 이슈를 넘어 우리가 국가발전 전략으로 어떤 복지를 추구할 것인지를 놓고 정치권뿐만 아니라 학계와 시민사회에 큰 논쟁거리를 제공하였다.

이 논란은 지금도 계속되고 있고, 장차 2012년 총선과 대선을 전후로 더욱 가열될 전망이다. 국가로부터 의무교육을 제외하고는 제도적 복지를 받아본 경험이 거의 없는 우리 국민의 입장에서는 나쁘지 않은 상황 전개다.

10월 20일 김황식 국무총리가 노인의 지하철 무료이용과 학교 무상급식에 대해 ‘과잉복지’라고 비판하면서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에게 혜택을 주는 보편적 복지에 반대”한다는 발언을 했다.

이에 대해 보수 언론들은 보편적 복지가 재정위기, 무임승차, 도덕적 해이 등을 불러오고 결국 복지에 중독된 게으름뱅이들의 세상을 초래할 것이라며 진보개혁진영을 비판하며 김 총리를 옹호하고 나섰다.

보편적 복지 반대, 보수진영의 전통

사실관계부터 확인해보자. 현재 우리나라가 김 총리의 말대로 “과잉복지” 상태인가? 국내총생산 대비 사회복지비의 비율을 보면, 북유럽 국가들은 28-30%,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국가들의 평균은 21%다. 경제력 규모가 세계 13위인 우리나라는 9%에 불과하다. ‘과소복지’다.

국무총리가 사실을 호도한 것이다. 이런 방식으로 보편적 복지를 반대하고 잔여주의 선별적 복지를 옹호하는 것은 ‘경제적 자유주의’를 신봉하는 보수진영의 오랜 전통이다.

그런데 보수진영이 지난 6·2지방선거 이래로 보편적 복지에 예민하게 반응하고 있다. 보수의 체통마저 벗어던지며 ‘사회주의’나 ‘좌파 포퓰리즘’으로 거침없이 공격한다. 그럴만한 이유가 있다.

최근 보편적 복지가 시민사회에서 논리적 정당성과 함께 정치사회적 지지를 획득해 나가는 데 대해 보수진영이 다급하고 불안해서다. ‘경제적 자유주의’를 금과옥조로 여기며 ‘작은 정부’를 고수해온 신자유주의자들은 지난 30년 동안 지속해온 선별적 복지의 한계가 다음과 같이 명백하게 드러나는 데 대해 매우 당혹스러워 한다.

복지와 성장, 유기적 통합체

첫째, 선별적 복지는 지속 가능하지 않다. 자산조사를 거쳐 선별된 일부 빈곤층을 위한 복지재원을 중산층 이상의 국민이 일방적으로 부담하는 현재의 구조는 양극화로 인한 빈곤층의 증가와 고령화로 인한 복지수요의 급속한 증대를 견뎌내지 못한다.

복지 수혜자와 재정 부담자의 이러한 분리는 정치사회적으로 중산층의 조세저항과 감세요구에 직면하게 되는데, 결국 복지재정의 한계로 인해 선별적 복지의 질 저하와 복지수준의 양극화로 귀결된다.

둘째, 선별적 복지는 인권의 제도화와 거리가 멀다. 복지를 얻기 위해 자신의 노동력을 상품화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필요 복지를 누구에게나 제도적으로 보장하는 보편적 복지라야 인권에 부합한다.

셋째, 선별적 복지로는 ‘우리가 한 배를 타고 있다’는 공동체 의식을 함양할 수 없으며, 신자유주의 양극화 사회의 모순과 분열을 강화할 뿐이다. 보편적 복지로 촘촘히 짜인 안전망이야말로 사회적 자본과 인적 자본을 극대화하고 지식경제가 요구하는 창의성과 도전정신이 넘쳐나는 역동적 사회를 보장한다.

넷째, 선별적 복지는 행정비용이 많이 들고 수혜의 기준선을 설정하기도 어렵다. 자산조사를 통해 일부 국민을 골라내는 일은 비효율적이며 공정하기도 어렵다. 보육, 교육, 의료, 요양 등의 사회서비스와 기본적 소득보장을 일생에 걸쳐 사회구성원 누구나 보편적으로 누리도록 하는 것은 공정한 경제와 혁신적 경제를 통해 지속적 경제성장을 가능케 하는 가장 확실한 방법이다.

역동적 복지국가의 논리에 의하면, 보편적 복지와 경제성장은 이분법적 대립물이 아니라 유기적 통합체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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