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중문화로 보는 제주 및 제주어

<대중문화로 만나는 제주어>

* 영화

1. 이재수의 난

벌써 10년이 지났다. 1999년 개봉한 이 작품은 제작당시 제주를 들었다 놨다. 주연배우를 오디션을 통해 뽑겠다는 소식이 전해지면서 너도나도 ‘영화 주인공’의 꿈을 꾸게 만들었던 전력이 있다. 근데 알고보니 주연은 이정재, 심은하였다. 허탈하기 그지 없었다. 당시 최고 스타였던 이정재, 심은하랑 경쟁해야 했다니, 미리 말이라도 해줬음 김치국물은 들이키지 않았을텐데.

여튼 당시엔 가장 잘나가는 감독이었던 박광수 감독이 연출하고, 「순이삼촌」등으로 제주의 역사를 증명했던 한국의 대표적 작가 현기영의 걸작 「변방의 우짖는 새」가 원작이 되다보니 제주 안팎에서 많은 기대를 모은 영화였다.

여기에 당시에는 엄청난 제작비였던 35억원이 투입됐다. 한국영화계에서 흔치않게 시도되는 ‘블록버스터급 사극’이었다. 엄청난 제작비에, 스타감독․배우, 게다가 제주를 소재로 한, 제주를 주 무대로 해 찍었던 대작 상업영화였으니... 제주도가 들썩일만 했다. 아부오름에 터를 잡은 촬영지에는 많은 제주인들이 단역으로 오고갔다. 당시 우근민 지사도 도포를 입고 단역에 출연했을 정도니..

1901년 제주도에서 일어난 천주교인과 주민들 간 실제로 일어난 충돌사건을 다뤘던 이 영화는 아쉽게도 기대밖의 성과를 내고 만다. 개봉 3주만에 극장에서 내려야 했던 굴욕을 겪었고, 제주인조차 무슨 내용인지 모르겠다는 탄식이 흘렀다.

결정적으로 이 영화에서 배우들의 대사를 전혀 못알아듣겠다는 힐난이 쏟아졌다. 이정재의 어색한 제주어 연기에 제주인들은 손발을 오그라뜨려야 했고, 도외인들은 무슨 말인지 소통불가에 빠졌다. 이후 제주를 소재로 영화를 만들때 ‘제주어’를 어떻게 처리해야 하느냐는 고민거리가 선두에 섰다.

2. 끝나지 않는 세월

2005년 작으로 최초 4․3 장편영화로 기록된 작품이다. 아쉬움이 많은 영화다. 가장 먼저 이 영화를 만들고 홀연히 세상을 뜬 고 김경률 감독의 빈자리가 갈수록 커 보인다. 4․3의 전반적 과정을 모두 담아내려는 혼신이 느껴지나 제작비와 인력 부족에 의해 역사를 구현하는데 한계를 여실히 드러냈다.

독립영화라는 속성으로 대중들과 자주 만날 수 없다는 안타까움도 자리한다. 제주영화 역사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4․3의 대중화란 면에서 새로운 장을 연 작품이지만 지금은 시중에서 쉽게 영화를 구할 수 없다.

「끝나지 않는 세월」은 제주 4·3사건으로 살아남은 사람들과 죽어간 사람들의 이야기를 과거와 현재를 교차시키며 역사의 굴곡을 보여준다. 영화는 철저히 제주도민의 힘으로 탄생했다. 2004년 7월, 제주 지역 사람들로 구성된 배우와 스텝으로 크랭크인한 영화는 독립영화 지원금과 제주도민의 모금으로 재정을 마련, 의미있는 걸음을 걸었다.

주연급 할아버지를 직접 제주 4·3사건 희생자 유가족 중에서 캐스팅했고, 18명의 스텝들과 주연, 조연, 보조 출연을 포함해 총 300여 명이 출연료를 받지 않고 영화의 완성을 도왔다.그래서인지 이 영화 속에서 제주어는 거의 완벽(?)한 수준이다. 제주어가 영화를 온통 장식하고 있다. 일반인을 캐스팅한지라 어색한 연기 속에서 쏟아지는 제주어가 일면 친숙하게도, 한편으로 도외인들에게는 귀를 쫑긋 세우게 만드는 전달의 고충도 느껴지게 한다. 그렇다 하더라도 제주어의 쓰임새가 가장 빛난던 작품이다.

* 드라마

1. 탐나는도다

지난해 8월부터 9월까지 MBC에서 방영된 이 드라마는 아름다운 제주해안 풍광이 기가막히게 찍힌 작품이다. 대중적 인기를 얻지 못했지만 마니아층에서 열렬한 지지를 얻어냈다. 심지어 일부 팬들은 조기종영에 반대하는 광고를 중앙지에 실었을 정도였다. 이런 노력에도 불구하고 저조한 시청률로 16부에 조기종영하는 아픔을 겪었다.

탐라 해녀 장버진(서우)과 한양에서 귀양 온 선비 박규(임주환) 그리고 탐라에 표류된 영국 청년 윌리엄(황찬빈)을 중심으로 탐라와 한양에서 펼쳐지는 좌충우돌 이야기를 담고 있다. 정혜나의 만화 「탐나는도다」가 원작이다.

이 영화는 주․조연 배우들이 꽤 노력한 흔적이 엿보이는 제주어 연기가 시선을 붙잡았다. 그래도 전국 지방어 중 가장 어렵다는 제주어 아니던가. 결과는 그리 신통치 않아 보인다. 특히 주연 서우가 귀엽게 조잘댔던 제주어는 많은 이들에게 강원지역 언어와 헷갈리게 했으니.. 제주사람들도 닭살 돋았던 어색한 제주어는 어쩌면 전국 시청자들과 교감을 힘들게 한 한계가 아니었나 생각이 들 정도다. 제주어는 그리 쉽게 공략할 수준이 아님을 절감케 했다.

2. 인생은 아름다워

2010년 3월부터 현재까지 인기리에 방영되는 주말 드라마다. SBS에서 방영되고 있다. 특히 한국의 거장 김수현 작가가 제주를 소재로 집필을 맡았던 데에 일찌감치 제주안에서 큰 화제를 불렀다.

펜션을 운영하는 한 대가족의 일상을 김수현 작가의 특유 필체와 대사로 개성있게 그려내고 있는 작품이다. 50부작으로 예정돼 있는 이 작품은 예전 김수현 작가의 흥행작에 비해서는 기대밖 성과를 낸다고 평가받지만 탄탄한 김수현 드라마의 팬층이 지지세를 이어가면서 흔들림없는 질주를 보여준다.

어쩌면 이 드라마는 제주어를 가장 자연스럽게 구현하는데 성공한 작품으로 기록될지 모르겠다. 극중 노부부로 등장하는 김용림․최정훈씨의 기가막힌 제주어 연기는 제주인들 조차 놀라움을 드러냈으니 말이다. 점점 깊이가 느껴지는 배우들의 제주어와 김수현 작가가 과거 제주인들의 삶의 애환을 잘 녹여낸 대사들이 어우러지면서 실제 제주인이 삶을 살아가는 착각과 감탄을 늘어놓게 한다.

물론 도외인들이 봤을 때 여전히 소통이 어색한 제주어라는 점에서 배우들의 연기에 호불호를 가리기는 힘들겠지만 제주어를 맛깔나게 잘 빚어낸 드라마임은 확실하다.

* 시, 노래로 즐기는 제주어

제주어만으로 이뤄진 시를 통해 제주어의 아름다움에 흠뻑 빠진 사람들이 있다. 제주어시인 고훈식씨도 이같은 일에 앞장서는 대표적인 한사람이다. 그는 사라져가는 제주어에 대한 아쉬움으로 제주어 시를 써내려가기 시작했다.

제주어를 중심으로 써내려가는 그의 시는 제주인에게는 보물과 같은 존재다. 제주도에는 제주어로만 표현할 수 있는 감수성이 있다. 같은 음식이라도 조리 방법에 따라 그 표기나 발음이 달라기고, 물건 하나하나마다 그것을 표현하는 고유명사가 존재하는 것도 제주어 만의 특징이다.

이러한 단어들이 모여 만들어진 제주어시는 제주인에게 보다 많은 감수성을 전달하게 된다. 또 제주어의 다양한 형용사들도 제주만의 정서를 표현하기 위한 좋은 재료가 된다.

고씨는 또 주민자치프로그램 등을 통해 제주어시 강좌를 하면서 제주어를 알리는 일에도 앞장서고 있다. 그를 통해 제주어로 만들어진 시를 접한 수강생들이 제주어의 아름다운을 새삼 다시 느끼게 된다고 한다.

시뿐만이 아니라 제주어로 만들어진 노래도 제주어를 알리는 또 다른 방법이 되고 있다. 가수 장윤정의 히트곡 ‘어머나’를 제주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인터넷에서 큰 인기를 끌기도 했다. 얼마전 폐막한 탐라문화제에서도 제주어로 부른 어머나를 선보여 관객들의 큰 호응을 얻었다.

이처럼 기존의 대중가요의 가사를 제주어로 바꿔 부르는 것이 유행하고 있다. 이러한 현상이 제주어를 모르는 사람에게 제주어를 알리는 쉽고도 재미있는 방법일 것이다.

기존에 있는 대중가요뿐만 아니라 새로운 노래를 직접 창작해 부르는 가수들도 있다. 제주어가수 양정원씨가 대표적이다. 우연한 기회에 제주어로 만든 노래를 선보인 그는 사람들의 많은 관심을 받았다. 이에 지금까지 발매한 정식앨범만 3장이 됐을 정도로 활발한 활동을 하고 있다.

한일해협권영화제 그랑프리 수상작인 오멸 감독의 ‘어이그 저 귓것’은 양정원씨의 인생을 바탕으로 시나리오를 제작하기도 했다. 또 이 영화에는 양씨는 직접 직접 출연하기도 했다. 그는 제주어를 알리는 후속작에도 출연할 계획이라고 한다.

제주어를 보급하는 일에 앞장서온 그는 다양한 공연도 활발히 펼치고 있다. 오는 15일에는 남원1리 방문자센터에서 노래공연과 함께 강연을 펼칠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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