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지난 20여 년 간 방송과 언론을 통해 가장 많이 들었던 단어 중의 하나가 ‘경쟁’일 것이다. 경쟁은 ‘참 좋은 것’으로 끊임없이 반복적으로 홍보되었고, 우리 국민은 이 단어에 거의 세뇌되다시피 하였다. 그래서 우리 대부분은 경쟁의 신봉자로 지난 20여년을 살아왔다. 이러한 경쟁이 일어나는 장소가 바로 ‘시장’이다. 경쟁의 활성화를 위해서는 시장에서 자유 경쟁을 제약하는 요소들이 없어져야 한다. 이런 조건은 현실에서는 사실상 불가능하겠으나 고전파 경제학자들은 이러한 조건을 전제한 시장, 즉 ‘자유 시장’을 상정하였다.

우월적 지위로의 쏠림현상

자유 시장의 원리가 관철되기 위해서는 수많은 사람들이 상품구매를 위해 경쟁적으로 시장에 나와야 하고, 또 수많은 사람들이 경쟁적으로 상품을 생산하여 시장에 내다 팔아야 한다. 이러한 거래가 시장에서 자유롭게 이루어지면 시장가격을 중심으로 수요와 공급이 균형을 이루게 되는데, 이러한 과정을 통해 효율적으로 재화가 분배된다.

자유 시장의 논리에 의하면, 시장에 참여하는 경제주체들은 그저 열심히 경쟁하면서 자신의 이익을 이기적으로 추구하기만 하면 된다. 그러면 ‘보이지 않는 손’에 의한 최상의 자원 배분으로 최대의 효용을 얻게 된다는 것이다.

그런데 실상은 그렇지 못한 경우가 더 많다. 첫째, 많은 재화와 서비스들은 소비자와 공급자 사이의 정보 비대칭으로 인해 시장에서 공정한 거래가 일어나지 못하게 되는데, 의료서비스의 경우가 그렇다. 공급자인 의료기관은 정보의 압도적 우위와 우월적 지위를 갖는데, 여기서 공정한 시장가격이 형성될 리 만무하다.

둘째, 공급자 간의 자유 경쟁의 결과로 자연독점 또는 경제의 양극화를 초래하게 되는데, 이는 곧 노동시장의 양극화로 이어진다. 셋째, 자유 시장이 초래한 양극화로 인해 구매력이 없는 경제주체들이 늘어나고, 이들은 시장으로부터 배제된다.

자기증식에 골몰하는 대자본

필자는 보수적 경제학자들도 모두 인정하는 시장실패의 사례인 경제학적 공공재(공공행정, 공공인프라 등)나 외부성이 강한 재화(대규모 기초연구 등)를 정부가 직접 제공하는 당연한 현상을 논의하자는 게 아니다. 앞서 언급한 세 가지의 사례들도 사실상의 시장실패에 해당한다. 이 경우 사회 전체적으로 엄청난 비효율과 함께 필요 재화에 대한 접근 형평성이 크게 낮아진다. 그래서 정부의 개입이 필요하다.

그런데 시장만능주의자들은 광범위하게 드러난 시장실패를 과소평가하며, 신자유주의 경제위기에도 불구하고 정부의 시장개입을 비판한다. ‘비즈니스 프렌들리’를 고수하는 현 정부와 주류 엘리트들의 이 완고한 태도의 배후에는 단기적 시각에만 머물며 자기증식에 골몰하는 대자본이 버티고 있다.

반복되는 시장실패와 양극화의 심화는 마침내 소비의 구조적 위축과 파국적 경제위기를 초래하게 된다. 정부의 합리적 시장 개입, 즉 공정을 위한 규제와 누진적 증세가 필요한 이유다.

어떤 정부는 ‘책임 있는 큰 정부’의 기조 하에 효과적인 시장 개입을 하는 데 비해, 다른 정부는 자유 시장을 신봉하며 ‘신자유주의 작은 정부’ 노선을 견지한다. 왜 그럴까? 이들 정부의 정체성이 달라서다. 오랫동안 자유 경쟁과 시장 만능에 지친 우리 국민은 구성원 모두를 위한, 모두에 의한, 모두의 정부를 원한다. 이것이 복지국가다. 이는 중앙정부뿐만 아니라 지방정부에도 그대로 해당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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