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직 대통령의 국가장이라는 큰 의미를 고려, 발인을 함께 하는 '부분 참석'의 형식으로나마 고인에 대한 최대한의 예우를 갖추겠다는 의미로 풀이된다.

박 대통령은 이날 오후 1시께 검정색 정장 차림으로 김영삼 전 대통령의 빈소가 차려진 서울대병원 영안실을 다시 방문했다. 해외순방 귀국 직후인 지난 23일 김 전 대통령의 빈소를 조문한 데 이은 두 번째 방문이다.

박 대통령은 이날 국회에서 열리는 영결식에 앞서 서울대병원에서 진행된 발인식에서 김 전 대통령의 차남 현철씨의 손을 잡고 인사를 건네는 등 유족들을 또 한번 위로했다.

박 대통령은 김 전 대통령의 관이 운구차에 실리는 모습을 말 없이 지켜보며 두 손을 모은 채 고인의 마지막 길을 배웅했다. 김 전 대통령을 실은 운구차가 서울대병원을 출발해 국회로 향하자 박 대통령은 청와대로 돌아왔다.

김 전 대통령의 영결식이 이날 오후 2시부터 국회의사당 앞뜰에서 1시간20분간 거행되지만 박 대통령은 참석하지 못하는 상황이 된 것이다. 지난 해외순방에 따른 감기와 피로누적 때문이다.

앞서 박 대통령은 지난 14일부터 7박10일간 주요 20개국(G20), 아시아태평양경제협력체(APEC), 아세안+3(ASEAN+한·중·일) 및 동아시아정상회의(EAS) 등 다자회의 참석을 위해 터키, 필리핀, 말레이시아 등 3개국을 연달아 방문했다.

출국 전부터 감기 증세가 있었던 박 대통령은 빡빡한 해외순방 일정과 약 30시간의 긴 비행시간에 따른 피로 누적까지 겹친 상태인 것으로 전해졌다.

이로 인해 전날 일정을 모두 비운 박 대통령은 당초 이날 오전 참석할 예정이었던 창조경제 박람회 개막식에도 불참했다. 박 대통령은 매년 창조경제 박람회에 참석해 축사를 해왔지만 '순방을 앞두고 있고 컨디션을 고려하지 않을 수 없다'는 참모진들의 건의를 받아들인 것으로 전해졌다.

박 대통령은 오는 29일 프랑스 파리에서 개최되는 제21차 기후변화협약 당사국총회(COP21) 정상회의와 체코 프라하에서 열리는 중유럽 4개국 지역경제협력체 비세그라드 그룹과의 정상회의 등을 위해 또 한번 5박7일 동안의 해외순방에 나설 예정이다.

지난 23일 새벽 다자외교 강행군을 마치고 귀국한지 6일 만에 다시 출국해야 하는 무리한 일정이어서 평소보다 더욱 박 대통령의 건강 관리에 신경을 써야 하는 상황이라는 게 청와대의 설명이다.

이 때문에 청와대는 박 대통령의 김 전 대통령 영결식 참석 여부를 놓고 막판까지 고민해 왔다. 최근 서울 기온이 영하권으로 떨어지는 등 날씨가 부쩍 추워진 가운데 영결식이 외부에서 1시간 이상 열려 자칫 건강이 더 악화될 우려가 있어서다.

그러나 불참을 결정할 경우 전직 대통령의 헌정 사상 첫 국가장에 현직 대통령이 함께 하지 않은 오점을 남길 수 있다는 우려, 고인과 박 대통령의 껄끄러웠던 관계를 주목하는 시각이 청와대의 고민을 키웠다.

그동안 현직 대통령들은 전직 대통령의 영결식에 가족장을 제외하고는 대부분 참석해 왔다. 이명박 전 대통령은 2009년 노무현 전 대통령과 김대중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 참석한 바 있으며 2006년 노무현 전 대통령도 최규하 전 대통령의 영결식에서 헌화했다.

이에 따라 박 대통령은 건강에 주는 부담은 최소화하는 한편, 전직 대통령의 마지막 길에 추모와 예우를 표하는 모습을 보여주는 차원에서 발인에만 함께 하는 형식으로 장례 절차에 부분 참석하는 방안을 선택한 것으로 보인다.

이와 관련해 김성우 청와대 홍보수석은 기자들과 만난 자리에서 "영결식 참석과 관련해 대통령 주치의는 '고열 등 감기 증상이 있는 상황에서 추운 날씨에 오랫동안 야외에 있으면 곧 있을 해외순방 등에 차질을 초래할 우려가 있어서 장기간 외부공기 노출을 자제할 필요가 있다'고 건의했다"고 전했다.

김 수석은 이어 "그러나 박 대통령은 최대한 예우를 표하기 위해 운구가 출발하기 직전 빈소인 서울대병원을 다시 가서 김 전 대통령과 영결하면서 고인의 명복을 빌고 유족들을 다시 한번 위로하려고 결정했다"고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