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해자 주거권 박탈해 심각성 알려야…적극적으로 위기 개입하길
자녀양육방식 재교육 실시해야…피해자·가족 위한 지원정책 시급

▲ 제주지방검찰청은 16일 오후 2시 제주 칼호텔 세미나실에서 '제주도 내 가정폭력·아동학대 원인 분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가졌다.
[제주도민일보=안서연 기자] 제주지역 가정폭력·아동학대 사건이 해마다 증가하고 있는 가운데, 이를 끊어내기 위해서는 더이상 ‘집안문제’로 치부하지 말고 효과적인 위기개입과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는 의견이 나왔다.

제주지방검찰청은 제주도, 제주변호사협회와 함께 16일 오후 2시 제주 칼호텔 세미나실에서 ‘제주도 내 가정폭력·아동학대 원인 분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개최했다.

이날 조희진 제주지검장은 인사말에서 “가정폭력을 더 이상 집안문제로 덮어둘 수만은 없다는 인식이 확산되면서 2013년에는 4대악 중 하나로 가정폭력을 선정했지만 가정폭력 범죄가 늘어만 가고 있다”며 안타까움을 표했다.

조 지검장은 이어 “어찌보면 이 세상 모든 범죄는 가정폭력과 아동학대에서 비롯되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을 해본다”며 “이 문제에 대한 해결책을 마련하지 않는다면 사회는 훨씬 더 큰 대가를 치르게 될지도 모른다”고 우려했다.

그러면서 “최근 급증하고 있는 제주지역 가정폭력 문제는 심각한 수준이다. 아름다운 제주의 가정이 폭력으로 얼룩지고 파괴된다면 경제적 성장이 다 무슨 소용이 있겠느냐”며 가정폭력 대책 마련의 시급성을 강조했다.

제주지검에 따르면 지난해 1~7월 검찰에 송치된 가정폭력 사건은 전체 1만6458건 중 188건에 불과했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전체 1만9317건 중 398건이나 차지했다. 지난해 대비 전체 사건이 17.4% 증가한 데 비해 가정폭력 사건은 111.8%이나 증가한 것이다.

극단적인 경우에는 배우자와 부모, 동거녀를 때려 숨지게 한 사례도 있었다.

아동학대 사건의 경우에는 지난해 1~7월 제주에서는 단 1건만 송치됐으나, 올해 같은 기간에는 13건이나 송치돼 급격히 늘어난 것으로 확인됐다.

이 같은 범죄의 원인에 대해 검찰은 “배우자 등을 지배·통제하기 위한 수단으로 폭력을 행사하는 것으로 보인다”며 “낮은 자존감, 분노조절 능력 부족, 알코올 중독, 부모간 폭력을 목격했거나 직접 학대를 당한 경험 등이 주요 원인”이라고 분석했다.

곽영숙 제주대 정신건강의학과 교수는 “가정폭력은 가정 내에서 대물림된다. 피해자였던 자녀가 성인이 됐을 때 가해자로 바뀌기도 한다”며 “당장의 가정폭력에 대한 효과적인 위기개입과 적극적인 피해자 보호가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가정폭력 대책 방안으로 곽 교수는 단순 퇴거가 아닌 공동주거에서 가해자의 주거권을 박탈하는 ‘공동사용 주거인도제’ 도입을 촉구했다.

곽 교수에 따르면 독일에서는 ‘폭력에 대한 민사적보호법’에 따라 공동사용주거의 인도청구라는 규정을 둔다. 곽 교수는 “단순 퇴거만 시킬 경우 가해자가 자신의 집인데 ‘왜 나가냐’고 하며 퇴거명령을 잘 따르지 않으나 주거를 박탈할 경우 가해자도 심각하게 받아들인다”고 설명했다.

그러나 곽 교수는 “궁극적으로는 이 같은 사후조치보다 사전예방이 중요하다”며 “가정폭력 예방, 발견, 신고, 치료를 위해 개인, 관계인, 지역사회, 국가와 사회가 적극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 제주지방검찰청은 16일 오후 2시 제주 칼호텔 세미나실에서 '제주도 내 가정폭력·아동학대 원인 분석 및 대책 마련을 위한 세미나'를 가졌다.
강윤형 제주도교육청 학생건강증진센터 소아청소년 정신과 전문의는 아동폭력에 초점을 맞춰 원인을 짚어보고 대책을 제시했다.

강 전문의는 “부부폭력이 건강하지 못한 의사소통적 측면을 갖는다면 자녀폭력은 자녀양육방식의 하나로 체벌이 정당화되는 것과 관련이 깊다”며 “가정폭력을 줄이려면 가족문화 내지 가족관계가 변화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강 전문의는 이어 “본인의 부모님으로부터 체벌을 통해 성장해해왔던 자녀들이 부모가 되어 다시 자신의 자녀를 체벌로 다스리고 있는 과정이 지속되고 있다”며 “따듯함과 권위를 지니면서도 체벌이 아닌 방식의 자녀양육과 훈육방식에 대한 대대적인 재교육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그러면서 “심각한 아동학대와 관련해서는 부모의 정신병리가 관련돼 있을 수 있으므로 그에 대한 방당한 조처가 취해져야 한다”고 덧붙였다.

강 전문의는 또 “과학적인 조사 자료가 불충분하지만 음주 상태에서 배우자와 자녀에 대한 폭력을 행사했다는 호소를 많이 듣는다”며 “가정폭력을 해결해가는 과정에 알콜중독 문제에 대한 해결책이 같이 고려될 필요가 있다”고 제안했다.

그러면서 가정폭력 신고 이후 지속적인 사후관리 체계의 필요성도 강조했다.

강 전문의는 “가해자를 강력하게 처벌할 사건과 보호조치를 할 사건을 선별하고 보호조치를 할 사건의 경우에는 가해자들의 폭력성향을 교정할 수 있는 치료 프로그램을 적용하는 것이 필요하다”며 “지속적이고 장기적인 개입이 필요하다”고 주문했다.

아울러 “이 과정에서 피해자를 안전하게 보호하고 피해자의 심리적인 치료 또한 장기적으로 함께 진행돼야 한다”면서 “특히 아동이 성장해 성인이 될 때까지 사후관리를 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날 세미나에 참석한 전보성 제주지방법원 가정보호사건 전담 판사는 “신고된 가정폭력사건에 대해서만이라도 법원, 검찰, 유관기관이 협력해 가정폭력 행위자의 성행을 교정하기 위한 적극적인 조치를 취해야 한다”며 “불이행자에 대해서는 법집행의 엄중함을 깨달을 수 있도록 제도를 운영해야 한다”고 힘주어 말했다.

이어 “현재 법원에서는 행위자에 대한 처벌 위주의 조치만을 취할 수 있을 뿐”이라고 토로하며 “제주도와 유관기관이 가정회복가능성이 있는 경우 행위자에 대한 상담을 비롯해 가족상담을 실시하고, 피해자 및 가족을 위한 효율적인 지원정책을 개발·실시해달라”고 당부했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