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1 | 캔버스에 유채물감 | 76X122cm | 러시아 상트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주 미술관)

파리의 아침이라는 주제에도 불구하고, 이 그림을 그릴 당시 피에르 보나르(1867-1947)가 파리에서 보내준 시간은 점점 줄어들고 있었다. 1911년, 그는 성 트로페즈로 몇 차례의 장기 여행을 떠났으며, 1912년에는 지베르니 근처의 베농에 집을 마련했다. 남프랑스에서 생애 대부분을 보낸 그는 동료 화가 에두아르 뷔야르와 함께 정기적인 해외여행을 떠나기도 했다.

그러나 「파리의 아침」을 그릴 당시, 그는 투르라크 22번가에 새롭게 마련해 놓은 파리 작업실에 머물고 있었다. 아마도 보나르는 이사를 마친 당시의 느낌, 그리고 작업실에서 내다본 도시의 새로운 전망에서 영감을 얻어 이와 같은 장면을 그린 것으로 추측된다.

「파리의 아침」은 보나르가 인상주의자들에게서 큰 영향을 받았음을 보여주는 작품이다. 빛의 효과를 재창조하려는 그의 노력은 이후 10년 간의 작품이나 풍경화에서도 두드러졌다. (1920년대에 이르러 보나르는 모네와 루느아르와 친구가 되었다.) 보나르는 일상에서 마주치는 장면이나 사물에 대한 생생한 기록을 남겼다. 그는 색채의 특별한 구성에 대해 해석을 덧붙이거나, 만약 특별한 색조나 빛의 효과를 재창조하고자 한다면 어떤 색채 조합을 이용할 것인지를 설명하기도 했다.

「파리의 아침」은 수많은 인물들을 도입하고 있다는 점에서 흥미로운 작품이다. 여기서 후경 인물들의 형태는 전경 인물들에 비해 한결 뭉개져 있는데, 이는 그들이 그늘진 곳에 있어서가 아니라, 덜 사실적이고 좀더 환영적인 모습을 담고 싶은 보나르의 의도에서 비롯되었다. 인간 형상에 대한 보나르의 지칠 줄 모르는 관심은 그를 꼭두각시 인형 디자인 및 사진 제작으로까지 이끈 원인이 되었다. 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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