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09 | 패널에 유채 | 49X70cm | 프랑스 파리, 다니엘 말랭그 미술관)

20세기 초반만 해도 대부분의 공식적인 독일 예술아카데미는 여성의 입학을 허용하지 않았다. 때문에 가브리엘 뮌터(1877-1962)는 칸딘스키가 뮌헨에 설립한팔랑크스 스쿨에서 공부하게 되었다. 이곳에서 뮌터는 후기 인상주의를 발견했으며, 미래의 파트너까지 만나게 되었다.

언뜻 보기에 「저녁 무렵」은 거대한 평면과 강한 색채로 미루어 고갱 내지는 야수파의 영향을 받은 것처럼 보이는 작품이다. 일정 부분 그들의 영향을 반영하고 있음은 사실이지만, 그보다 이 그림은 1908년 뮌터가 발견한 바이에른산 유리 회화에 더 큰 빚을 지고 있다.

어느 기능공으로부터 기술을 습득한 뮌터는, 매체에 대한 실험에 큰 관심을 갖고 있던 야블렌스키와 칸딘스키에게까지 자신의 열정을 전염시켰다. 비록 위 작품이 유리가 아닌 패널에 그려진 유화라 할지라도, 단순한 모양과 윤곽선, 생생한 색채를 보여준다는 점에서는 유리 회화와 별 차이가 없다.

또한 위 그림은 뮌터가 청기사파 그룹--아이들의 드로잉을 재발견해낸--의 시조임을 말해준다. 제멋대로 쓰인 색채와 붉은 길을 배회하는 한 사람을 다룬 주제가 지루하게 느껴진다 할지라도, 이 그림은 상상 속의 이야기 같은 느낌을 전해 준다.

한편 파란 산은 그녀가 자신의 파트너였던 칸딘스키를 참조하고 있음을 간접적으로 드러내는 요소이다. 당시 칸딘스키는 「파란산」(1909)에 발표할 색채와 형태에 관한 자신의 이론을 연구중이었다. 이 무렵 칸딘스키는 뮌터의 스승 노릇을 그만두었다. 그는 마치 뮌터의 시도를 응용하기라도 하듯, 자신의 주제를 어린아이 그림 같은 모양으로 단순하게 분리하기 시작했다.
오랜 세월 칸딘스키의 명성에 가려져 있던 뮌터의 작품들은 이제야 가치를 인정받아가고 있다.발췌=「명화 10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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