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설] 협치의 최소한 여지 인사청문회, 元 스스로 무력화
‘일방통행’식 운영에 ‘협치위 조례 보류’·인사청문 거부‘로
출범 이후 道-議 갈등이 불러와…행감·예산심의·인사청문회 난항

원희룡 제주도지사의 제주도의회와의 협치가 위기에 봉착했다. 스스로가 던진 인사청문회라는 과제가 결국 스스로의 발목을 잡은 것이다.

특히 각종 사안에서 의회와의 갈등을 빚어오다가 결국 낙제점을 받은 인사를 등용하면서 원칙을 스스로 깨버렸다는 비판이 의회에서 터져 나왔다.

게다가 의회는 일방통행 식 원 도정에 대한 견제로 엄격한 잣대의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심의를 예고했다. 더욱이 두 번째 공공기관장 인사청문회가 거부되면서 남아 있는 인사청문회조차도 난항이 예고되고 있다.

당분간 의회와의 갈등은 쉽게 봉합되지 않을 것으로 보인다. 원 지사의 대 의회 협치가 앞으로 어떤 방향으로 흐를지 주목되고 있다.

'부적격' 이성구 제주에공 사장 임명 강행 갈등 더욱 부추겨

원희룡 제주도지사는 지난 27일 제주도의회 농수축경제위원회의 인사청문회를 거친 이성구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내정자를 지난 29일 전격 사장으로 임명했다.

농수축위는 이 내정자에 대한 ‘적격’·‘부적격’이라는 표현을 삼간 채 전문성과 윤리의식·환경인식 부족 등의 이유로 “제주의 자연·문화·사람의 가치를 키우는 도정 방침과 제주에너지공사 사장 예정자가 지닌 철학과 협치에 대한 재인식이 필요하다”며 사실상 부적격 의견을 제시했다.

하지만 원희룡 지사는 농수축위가 ‘전격’·‘부적격’ 이라고 명시하지 않았고, 장기간 공백사태가 우려된다며 이 내정자에 대한 임명을 강행해 버렸다.

특히 야당과 시민사회단체의 강한 우려도 무시한 채 임명을 강행함으로써 스스로 협치를 포기했다는 비난마저 쏟아지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의회는 원희룡 도정이 요청한 인사청문회를 거부하는 형식으로 강한 불만을 표출했다.

행자위 인사청문회 거부는 이미 예견된 사건

하지만 인사청문회 거부는 이미 예견된 사건(?)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의회주의자라고 자처했던 원희룡 지사는 취임 직후부터 의회와 좋지 않은 모습이면서 상당한 난항을 예고했다.

우선 원 지사가 조직개편을 하면서 ‘옥상 옥’·‘막강파워’ 논란이 된 협치정책실에 대해 언론의 각종 비난이 쏟아지자 의회도 우려를 표명했다. 원 지사는 강행했지만 결국 의회가 이를 꺾으면서 일단락 됐다.

그런데 이번에는 감귤1번과가 갈등의 불씨를 지핀 요인이 됐다.

문제는 의회가 원 도정의 안보다 완화된 ‘1번과 전면 유통 허용’을 권고했지만 원 도정은 일방적인 입법예고로 응수하면서 시작됐다. 의회는 즉각 의회를 무시한다고 원 도정을 성토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도는 일방적으로 시행령을 개정하면서 1번과 부분 유통을 1년 뒤인 내년 9월로 못 밖아 버렸다.

제주도 산하 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장 재신임과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 조례안 처리도 의회의 불만을 샀다.

특히 제주해군기지 진상조사와 관련 의회와 아무런 협의도 없이 진행됐다는 점에서 구성지 의장이 강하게 비난했다.

원 도정과 의회와의 갈등의 정점은 구성지 의장이 제안한 ‘예산 협치’ 때문이다.

의회는 ‘예산협치’로 에둘러 표현했지만 원 도정이 ‘재량사업비’와 ‘예산편성권 침해’를 거론하면서 의회의 공분을 샀다. 박영부 기획조정실장이 사과하면서 진정국면으로 접어드나 했지만 의회를 향한 비판은 수그러들지 않았다.

의회는 급기야 협치위원회 조례안을 심의보류하고 앞으로 있을 행정사무감사와 예산안 심의에서 강도 높은 잣대를 예고하면서 원 도정과의 전면전을 선포했다.

이런 와중에 이성구 내정자에 대한 임명 강행은 갈등을 더욱 부추겼다.

모양새는 집행부에 대한 견제 역할 충실이지만 사실상 원 도정의 대 의회 접근 방식에 강한 불만의 표출이라는 시각이 높다.

'일방통행'식 도정 운영, 의회 반발 사

의회는 이런 일련의 과정을 소통이 없는 ‘일방통행’식 도정 운영 때문으로 보고 있다.

의회는 원 도정이 ‘협치’를 강조하기 위한 부활한 정부부지사나 협치정책실, 소통정책관 등이 그 역할을 다하지 못하고 있다고 판단하고 있다. 현안마다 이들의 역할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특히 원 지사가 행정시장과 5개 도 산하 공기업 및 출자·출연기관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를 제안하면서 의회와의 협치가 이뤄지는 게 아니냐는 기대가 있었지만 이마저도 원 지사가 일방적으로 깨버리면서 집행부와 의회와의 갈등으로 비춰지고 있다.

행정시장 인사청문회에서 이기승 제주시장 내정자가 통과하지 못할 때만해도 원 지사의 진정성은 의심의 여지가 없는 듯 했다. 그러나 이성구 내정자에 대한 임명 강행은 인사청문회를 무력화 했다는 비판을 받기에 충분했다.

급기야 ‘무늬만 공모’에서 ‘들러리 인사청문회’·‘무늬만 인사청문회’라는 수식어가 붙은 형식적 절차가 돼 버렸다는 비판이 쏟아졌다.

결국 원 지사의 일방통행식 도정 운영과 의회와의 협치를 위해 최소한의 여지였던 인사청문회의 원칙마저 깨버리면서 이번 인사청문회 거부는 의회의 불만이 극에 달해 터진 사건이 됐다.

인사청문회 원칙에 스스로 제시한 원칙도 못 치켜

원 지사는 스스로 제시한 원칙도 지키지 못했다는 비난도 면키 어렵게 됐다.

원 지사는 공공기관장 임명에서 전문성을 가장 최우선으로 했지만 전문성 부족은 인사청문회에서 드러났다. 이를 원 지사도 인정했지만 중간 평가를 통해 진퇴를 묻는 절차를 갖겠다는 단서 조항으로 전문성을 스스로 없애 버린 것이다.

고정식 행자위원장은 “몇 차례의 인사청문회를 거치는 동안 도민적 공감대를 형성할 수 있으리라는 긍정적인 효과를 기대했던 것과 달리 허탈감을 느끼게 한다”며 “앞으로의 청문 결과에 상관없이 제 갈 길만 가겠다는 아집의 표현이다. 그 책임은 전적으로 도지사에게 있다”고 원 지사를 비난했다.

따라서 이번 행자위의 인사청문회 거부가 앞으로 다른 상임위 인사청문회로 어떻게 확산될지 주목되고 있다.

다음 달 13일에는 환경도시위원회의 김영철 제주도개발공사 사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가 예정돼 있다. 지난 24일 공모가 마감된 제주국제컨벤션센터 사장 내정자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다음 달 중순께 이뤄질 전망이다.

이들 인사청문회들마저도 줄줄이 거부된다면 원희룡 도정의 대 의회와의 협치는 강한 파고에 직면할 것으로 보인다. 원 지사가 제시할 앞으로의 해법이 주목되고 있다.

한편 제주특별법 상 인사청문 대상인 김국주 감사위원장에 대한 인사청문회는 다음 달 18일 열릴 예정이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