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루다의 우편배달부> 저자 안토니오 스카르메타

현대 라틴 아메리카 문학에서 가장 주목받는 작가 중 하나인 안토니오 스카르메타의 대표작 ‘네루다의 우편배달부’가 민음사 세계문학전집 104번으로 출간됐다.

이미 20여개 언어로 번역된 이 소설은 영화 ‘일 포스티노’로 제작되면서 우리나라를 비롯한 전 세계에 더욱 이름을 알렸다. 노벨 문학상을 수상한 위대한 시인인 파블로 네루다를 주인공으로 한 이 소설은 제목에서부터 호기심을 불러일으킨다.

우리에게 익숙한 투사로서의 네루다가 아니라 시의 본질이 무엇인지를 우편배달부를 통해 일상의 빵처럼 친근하게 일깨우는 네루다가 등장한다.

작품 자체가 하나의 메타포라고 할 수 있는 이 소설은 시인과 우편배달부 마리오를 통해 한 편의 시가 삶과 자연과 세계와 만나 마침내 새로운 삶과 사랑을 이끌어내는 문학의 진실과 감동을 소박하면서도 아름답게 그리고 있다.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는 어느 무명의 저널리스트의 회고로 시작한다.

1970년대 초 칠레의 작은 어촌 마을 이슬라 네그라에는 그 마을의 가장 고명한 주민인 파블로 네루다에게 우편물을 전달하는 것이 유일한 업무인 젊은 우체부 마리오 히메네스가 있다. 아름다운 마을의 소녀 베아트리스를 보고 첫눈에 사랑에 빠진 마리오는 네루다에게 소녀를 위한 시를 써달라고 조른다.

네루다는 우체부에게 메타포를 가르쳐주어 베아트리스에게 사랑을 고백하게 하고, 베아트리스 어머니의 강력한 반대에도 불구하고 마리오와 베아트리스는 결혼을 하게 된다.

이후 네루다가 대통령 후보로 지명되어 이슬라 네그라를 떠나 있을 때나 주프랑스 대사로 임명되어 파리에 있는 동안에도 둘은 편지를 주고받으며 우정을 이어간다. 피노체트가 일으킨 쿠데타로 살바도르 아옌데가 목숨을 잃고 네루다 역시 죽음을 눈앞에 둔 순간에도 마리오는 목숨을 걸고 네루다를 찾아와 그의 곁을 지킨다. 냉혹한 군부독재가 시작되자마자 마리오는 실종되고 이야기는 끝이 난다.

스카르메타는 마리오의 개인적인 삶과 칠레에 엄습한 정치적 냉혹함 사이에서 밝고 로맨틱한 사랑과 1973년 네루다와 아옌데 대통령의 죽음이라는 비극 사이에서 절묘한 평행선을 만들어낸다. 스카르메타의 표현대로 ‘열광적으로 시작해서 침울한 나락으로 떨어’지는 이 이야기는 한편으로는 민주화를 바라는 투쟁의 이야기이며 동시에 사랑과 시와 문학을 이야기하는 감동적인 노래이다.

안토니오 스카르메타는 위대한 시인에게 경의를 표하고 칠레의 민주화를 염원하면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를 썼다.

스카르메타는 말한다.

“나는 늘 네루다에 관해 무엇인가 쓰고 싶었다. 1969년 이슬라 네그라의 네루다 자택을 방문했을 때 이미 영화도 찍고 싶었다. 유명하고 위대한 네루다가 아니라 내면적인 네루다, 따스함과 인간적인 유머가 넘치는 바닷가의 네루다를 작품 속에 담았으면 했다”

때문에 이 작품은 위대한 시인 네루다에게 바치는 헌사인 동시에 칠레 민중에게 바치는 헌사다.

쿠데타가 발발한 이후 독일에서 망명 생활을 하는 고초를 겪으면서도, 스카르메타는 독자들에게 투쟁심보다 감동을 선사하려 했다는 점이 작품성을 더욱 돋보이게 한다. 이후 이민이라는 가족사에 영감을 얻어 쓴 ‘시인의 결혼식’(1999)으로 ‘네루다의 우편배달부’에 버금가는 인기를 누렸으며 이 작품으로 프랑스의 ‘메디치 외국 문학상’ 이탈리아의 ‘그린차네 카보우르 상’을 수상했다.

특히 2003년 ‘승리의 춤’으로 스페인어권의 권위 있는 문학상인 ‘플라네타 상’을 수상했데 이는 50여년의 수상 역사에서 라틴 아메리카 작가로는 3번째 영광이었다.


<무슨일이 일어났는지 아무도> 저자 김영하

언젠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는 햄릿이라는 인물이 비현실적이라는 한 독자의 질문에, '이보게, 젊은이. 햄릿은 지금 내 앞에 있는 서 있는 자네보다 훨씬 더 살아 있네'라고 답했다고 한다. 이 대목을 읽다가 문득, 나라는 인간과 내 소설의 관계 역시 그와 비슷하지 않은가 돌아보게 됐다."

소설가 김영하(42)씨가 2004년 '오빠가 돌아왔다' 이후 6년 만에 단편 소설집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는 아무도'를 내놨다.

영국의 대문호 윌리엄 셰익스피어(1564~1616)가 창조한 인물인 햄릿이 실존 인물보다 더 살아있다는 아르헨티나의 소설가 호르헤 루이스 보르헤스(1899~1986)의 말에 연장선상에 놓인 소설들을 담았다. 김씨가 "어지러이 둔갑을 거듭하는 허깨비일지도 모르는 자신의 존재보다 더 '살아 있는' 것"을 묶은 것이다.

이번 소설집에 실린 단편들은 대개 문예지의 청탁 없이, 작가 자신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먼저 쓴 소설들이다. 몇 편은 어떤 지면을 통해서도 선보인 적 없는 미발표작들이다. 여기에 현재로 살아 있는 이야기들을 선보여온 작가는 이 소설집에서 그 정점을 보여주며, 지금 이 순간 벌어지고 있을지도 모르는 '무언가'에 대해 생각하게 만든다.

작가의 간결하고도 명쾌한 문장에 실려 있는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유쾌한 상상력, 섬뜩한 아이러니가 여운을 남긴다.

자신이 로봇이라 주장하는 남자와 연애하는 여자의 이야기 '로봇', 헤어진 연인이 여자의 결혼을 앞두고 여행을 떠난다는 '여행', 목소리를 잃고 악어로 변해 죽은 가수를 다룬 '악어', 아이스크림에서 기름 맛이 난다고 항의하는 부부 이야기 '아이스크림' 등 총 13편이 실렸다.

특유의 현대적 감수성과 속도감으로 일상의 단면을 예리하게 오려내는 솜씨는 여전하다. 간결하면서도 명쾌한 문장에 실린 날카로운 현실인식과 재기발랄함은 단편에서 더 큰 여운을 발휘한다.

김씨는 "이제는 가끔 마음이 내킬 때면 가벼운 마음으로 단편소설을 쓰고 한다"며 "대체로는 청탁 없이, 마치 첫 단편을 쓸 때 그러했던 것처럼, 작곡가가 악상이 떠오를 때 그렇게 하듯, 그 순간의 머릿속에 떠오른 것들을 적어나간다"고 밝혔다. "어쩌면 나는 아주 멀리 돌아 처음 시작한 지점으로 돌아와 있는지도 모른다." 272쪽, 1만원, 문학동네


<빅 픽처> 저자 더글라스 케네디

조국에 대한 비판적 관점으로 자신만의 소설 세계를 구축해가는 미국 태생의 소설가 더글라스 케네디를 대표하는 ‘빅 픽처’

빼어난 착상 위에 반전을 거듭하는 폭발적 흡입력의 스토리가 펼쳐져 유럽을 사로잡은 장편소설이다. 변호사 '벤'에서 사진가 '게리'로 살아가게 된 한 남자의 일상 속으로 초대하는, 생생한 유머와 위트가 버무려진 스릴러다.

주어진 삶에 만족하지 못한 채 일탈을 꿈꾸고는 하는 우리를 완전한 몰입의 세계로 인도하고 있다. 특히 벤이 잃어버린 꿈으로 인해 고독과 슬픔, 방황과 일탈에 빠져든 모습은 마치 거울처럼 우리를 비춘다. 이루지 못한 꿈에 대해 생각하느라 밤마다 잠을 설치는 우리에게 섬뜩한 긴장감을 안겨주고 있다.


<덕혜옹주> 저자 권비영

어린 나이에 고종황제의 죽음을 목격한 후, 일본으로 끌려가 냉대와 감시로 점철된 십대 시절을 보낸 덕혜옹주는 일본 남자와의 강제결혼, 10년간의 정신병원 감금생활, 딸의 자살 등을 겪으면서 정서적으로, 신체적으로 쇠약해진다.

치욕스러운 시간 속에서 그녀를 붙들었던 건 조국에 대한 그리움과 삶의 터전을 되찾겠다는 결연한 의지뿐이었다. 그러나 그녀가 그토록 사랑했던 조국은 해방 후에 그녀를 찾지 않는데….

고종황제의 막내딸, 조선 최후의 황족, 덕수궁의 꽃이라 불렸던 덕혜옹주는 태어난 순간부터 철저히 정치적 희생자로 살아가게 된다. 그녀는 비극적인 운명 앞에서 때로는 분노하고, 때로는 저항하고, 때로는 체념했지만 눈을 감는 그 순간까지 조국을 잊지 못했다. 그런 덕혜옹주의 이야기를 여성 작가 특유의 세밀한 필체로 그려내었다.

 


<공중그네> 저자 오쿠다 히데오

뾰족한 물건만 보면 오금을 못 펴는 야쿠자의 중간 보스, 공중그네에서 번번히 추락하는 베테랑 곡예사, 병원 원장이기도 한 장인의 가발을 벗겨버리고 싶은 충동에 시달리는 젊은 의사, 그들을 맞이하는 '엽기 정신과 의사' 이라부와 사계절 핫팬츠 차림의 간호사 마유미... 이들이 별난 정신과 병원을 배경으로 벌이는 기상천외한 사건들을 담은 작품으로, 한국 독자에게는 다소 생소할 오쿠다 히데오의 작품이다.

주인공 이라부가 다섯 명의 환자들과 벌이는 엽기적인 언행은 너무나 황당무계하고 제멋대로여서, 의사인 그에게 환자복을 입히는 편이 차라리 나을 것 같기도 하다. 도무지 해결될 것 같지 않던 환자들의 강박증은 난리법석 끝에 치료된다.

저자는 이 과정을 코믹하게 그려가는 한편, 진지한 태도로 환자들에게 능동적인 힘을 부여해 간다. 그는 이들이 치료되는 과정을 통해 자신을 지키고 추스를 수 있는 존재는 자기 자신밖에 없다는 메시지를 전한다. 자칫 무거워질 수 있는 이야기를 저자 특유의 재담으로 유쾌하고도 감동적으로 기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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