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제주에서 돼지고기처럼 여러모로 쓰였던 고기가 있었을까요? 가문잔치에는 물론, 사돈 댁으로 보내는 이바지 음식에도 돼지 뒷다리는 제일 중요하였습니다. 더군다나 혼례를 ‘일레잔치’라 하였는데, 그것에도 ‘돼지 잡는 날’을 넣었을 정도로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습니다. 다시 말해 제주에서는 돼지를 잡는 일로부터 잔치가 시작되었다고 해도 지나친 말이 아니었습니다.

그래서 잔치가 있을 과년한 딸을 둔 집안에서는 으레 돼지를 길렀던 것입니다. 정지에서 보이지 않는 곳에 위치한 집안 뒤쪽의 돗통시에는 검은 도새기가 자라게 됩니다. 보통 1년 정도를 키워 이용하게 되는데, 100근 내외가 되었다고 합니다. 돼지고기는 12부분으로 나누어서 이용하였습니다. 대가리, 휘양도래기(턱이 붙은 목), 접작뼈(앞다리 위 어깨의 살), 앞다리 2개, 갈비뼈와 살 2개, 숭(뱃살), 알룬(허리, 갈비뼈 뒤 끝에서 뒷다리 앞 끝까지), 뒷다리 2개, 부피(엉덩이, 뒷다리 위 끝에서 뒤 꽁지까지, 반드시 꼬리가 달려 있어야 함)이 그것이었습니다. 고기의 부위에 포함되지 않았지만, 배설은 소장과 대장을 말하며 창지는 간, 복부기(허파), 염통(심장), 지래(비장), 멍얼(췌장), 콩팥(신장), 밥통(위)을 가리켰습니다. 오줌통(방광)은 먹지 않고 아이들의 장남감, 주로 공차기 놀이의 재료로 주었던 것입니다. 돼지를 잡아준 사람에게는 수고비로 내장, 대가리 또는 접작뼈를 주는 게 관례였다고 합니다. 잔치 전날 가문이 모여 가문잔치를 하고 이들을 대접하는 음식을 가문반이라고 했습니다. 가문반은 돼지를 잡은 후 돼지의 귀, 창자, 머리, 허파, 간 등을 꼬치에 꽂아 만들고 돼지 뼈와 부스러기들을 모아서 상을 차렸습니다. 잔치 다음날은 사돈잔치로 이 날은 신랑 측에서 음식을 준비해서 신부 집으로 보냈습니다. 신랑 측 사돈들이 신부 집에 와서 인사를 나누었던 의례였습니다.

또한 돗통시는 거름을 만들어주는데 더없이 고마운 곳이었습니다. 일년 내내 돗통시 속에 있던 보리 짚과 돼지 똥 같은 것이 쌓이고 밟히면서 다져진 돼지거름을 10월 보리농사 때에 맞추어 마당에 퍼내게 됩니다. 돗통시에 오래 다져졌기 때문에 돼지거름을 쇠스랑으로 찍어야 파낼 수 있게 됩니다. 그것을 마당에 널리 펴고 거기에 보리씨를 골고루 뿌립니다. 그리고 마소를 몰아다 보리씨와 거름이 잘 섞여지도록 밟아줍니다. 이렇게 만들어진 거름을 긁어 한 곳에 모아 2, 3일 동안 쌓아두었다가 밭에 실어가서 거름 묻은 보리씨를 손으로 뜯어가며 파종하였던 것입니다. 돼지거름을 담아 나르는데 사용했던 것을 ‘돗거름착’이라고 하는데, 보통 질메 채운 마소의 등에 지우거나 사람이 등짐으로 져 날랐습니다. 돗거름은 비료가 없던 시절, 척박한 땅에서 밭의 지력(地力)을 높이는데 더 없이 귀중하였던 재료였던 것입니다.
지금부터 벌써 30여년이라는 세월이 흘러버렸습니다. 88올림픽을 유치하면서 대대적인 생활개선 사업이 사회전반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당시 돗통시도 대부분 헐리게 되었다고 합니다. 비위생적인 전래문화를 대표하는 것으로 돗통시가 사라지면서 정화조를 이용하는 수세식의 화장실이 보급되었던 것입니다. 돗통시의 철거는 단지 화장실의 개선을 이야기 하는 것이 아니라, 생활 속에서 발생하는 생활오수는 물론, 잡다한 오물, 인분(人糞), 인요(人妖) 등을 거름으로 재생산함으로써 환경오염을 차단하였던 구조물의 상실이라는 점과, 숱한 사연을 담았던 가옥 공간의 상실이라는 점에서 검은 도새기, 돗거름, 처첩간의 갈등으로 초래한 측도부인의 동티도 이제 더 이상 우리 제주에서는 찾아볼 수 없게 되었다는 점에서 안타까움을 느낍니다.

김동섭 설문대여성문화센터 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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