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740 징용한국인 영혼과 함께 있게 해달라”…선운정사에 유골 안치

▲ 후지키 쇼겐
일본인 후지키 쇼겐(92)씨의 유골이 제주도의 한 사찰에 안치됐다. 후지키 쇼겐은 태평양전쟁 당시 유일한 생존자로 오키니와에서 징용 한국인들과 함께 생사고락을 함께 했던 일본인이다.

그의 유골이 왜 제주도에 왔을까?

아시아문화컨텐츠연합에 따르면 후지키 쇼겐씨는 지난달 31일 오키나와 전투에서 희생된 740인 한국인 청년병사들의 영혼들과 함께 자신의 유골을 한국의 평화의 섬 제주에서 함께 잠들 수 있도록 해달라는 유언을 남기고 세상을 떠났다.

69년 전 학도병이었던 후지키 쇼겐씨는 일본의 강제징용으로 끌려간 740인의 한국인 청년병사들과 함께 피비린내가 진동하는 전쟁터 오키나와 마지막 격전지에서 만나 생사고락을 함께 했다.

그는 그 740인 조선 청년 병사들의 유골을 수습하며 그들의 영혼들이라도 고국의 품으로 돌려보내주겠노라고 굳게 했다. 하지만 약속을 못 지켜 그 친구들과 만나면 면목이 없어 어떻게 할까 하며 떨리는 눈동자로 부탁하고 부인 오카이씨에게 마지막 말씀을 하시고 눈을 감았다고 한다.

후지키 쇼겐씨는 지난 4월8일 Let’s Peace 한일공동위원회 앞으로 유언장을 작성해 자신에게 무슨 일이 생기면 한일공동위원회에 전달하라고 유언장과 함께 부인에게 위임장까지 작성했다.

그는 유언장에서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관련 자신의 심정을 토로한 뒤 “제주 결성식에서 약속한대로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과 한 맺힌 영혼들을 제주로 모시고 제주국제 평화공원이 건립될 수 있도록 노력해 주시기를 부탁한다”며 “부디 오키나와와 제주를 잇는 바닷길과 하늘길이 원한과 미움을 걷어 내고 한·일 양국 간 화해의 다리로 이어 질 수 있도록 결실을 이뤄 달라”고 당부했다.

그는 또 “(Let’s Peace 한일공동기구 위원회) 여러분들의 노력이 평화와 공존이라는 한일 미래세대에게 물려줄 위대한 유산으로 남겨져 다시는 한·일 양국 간 불신과 갈등이 없는 평화로운 세상을 저승에서라도 기쁜 마음으로 볼 수 있기를 간절한 마음으로 기원한다”고 전했다.

그는 그러면서 자신의 유골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제주국제평화공원 조성지에 오키나와에서 돌아오는 전우들의 영혼들과 함께 편안히 잠들 수 있도록 도와달라고 부탁했다.

후지키 쇼겐씨의 장례식은 지난 2일 동경 니혼바시에 있는 다이안 라구지(大安樂寺)에서 제자(500명)들과 가족들이 모인 가운데 치러졌다. 가족들은 고인의 유지를 받들어 지난 7일 유골을 제주시 애월읍 봉성리 선운정사(仙雲精舍)에 안치시키고 9일 귀국했다.

한편 후지키 쇼겐씨는 지난해 11월3일 제주라마다 호텔에서 발족한 Let’s Peace 한일공동기구 창립 시 참석해 “당시 조선학도병들은 이곳에서 죽더라도 이 생지옥 같은 오키나와의 땅에 뼈를 묻고 싶지 않다고 했다. 혼이라도 꼭 조국으로 돌아가고 싶다고 간절하게 소망하던 그들의 영혼과 오키나와에 있는 한국인 위령탑을 그들이 사랑하던 조국 한국으로 돌려보내는 일이 내가 죽기 전에 꼭 이뤄야 할 소명이다. 일본인으로서 갖춰야 할 도리이고 책임”이라고 증언했다.

하지만 오키나와 재일 한국인 민단에서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제주이전 반대성명을 내며 후지키 쇼겐씨의 증언에 대해 부정적으로 얘기들이 전해지면서 후지키 쇼겐씨는 정신적 충격을 받으며 건강이 급속도로 악화되기 시작했다고 부인인 오카이씨가 전했다.

한일공동추진위는 아시아문화콘텐츠연합, Let’s Peace 한일공동기구를 올해 3월에 설립했다.

한일공동추진위 김원화 회장은 후지키 쇼겐씨의 서거소식과 유언장을 받은 뒤 “평화와 공존의 시대를 한일 양국 미래세대에게 물려주고자 했던 후지키 쇼겐선생의 국경을 초월한 우정과 숭고한 전우애를 통해 보여주신 사랑과 신의의 정신을 이어 나가야 하는 것은 동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의 책무이며 사명”이라고 강조했다.

김 회장은 “후지키 쇼겐 선생의 Let’s Peace 정신을 기리고 그 유지를 받들기 위해 오키나와 한국인 위령탑 제주이전 사업과 오키나와에서 희생된 한국인 희생자들의 영혼들을 모셔와 후지키 쇼겐 선생의 유골을 함께 안치시키기 위한 명부전(冥府殿)을 한·일 양 국민의 마음과 뜻을 모아 건립하겠다”고 밝혔다.

한편 한일공동추진위는 다음 달 18일 선생의 49재를 제주 선운정사에서 치르고 향후 실행방안을 논의할 계획이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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