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가 '소멸시효' 이유로 책임이행 거절은 부당"…1억3600만원 배상 판결

1950년 6·25전쟁 직후 군·경에 의해 일어난 민간인 집단학살 사건인 ‘제주예비검속사건’ 희생자 유족에 대한 국가의 손해배상 책임을 인정하는 대법원 첫 확정 판결이 나왔다.

대법원 1부(주심 조희대 대법관)는 제주예비검속사건으로 숨진 고모씨의 부인과 자녀 등 유족 3명이 국가를 상대로 낸 손해배상 청구소송에서 원고 승소판결을 내렸다고 16일 밝혔다.

고인인 고씨는 1950년 6월 28일 의귀출장소 경찰 등에 예비검속돼 서귀포경찰서로 끌려가 절간고구마창고에 구금돼 있다 그해 7월 29일 정뜨르비행장(현 제주국제공항)에서 총살됐다.

유족들은 2006년 3월 29일 제주4·3사건 진상규명 및 희생자 명예회복 실무위원회로부터 제주4·3사건 희생자(행방불명)의 유족으로 결정됐으며, 과거사정리위에 망인에 대한 진실규명을 신청했다.

사실 확인을 마친 유족들은 2010년 11월 ‘국가의 소속기관인 경찰 및 군이 적법절차를 무시한 채 망인에 가해행위를 한 뒤 사체를 매장했다’며 국가에 손해배상 청구소송을 제기했다.

이에 국가는 “망인의 사망시점인 1950년 7월 하순경으로부터 5년, 사망신고를 한 1956년 10월로부터 3년을 이미 경과해 제기했음으로 유족들의 손해배상청구권은 이미 ‘소멸시효’가 완성됐다”며 배상 책임이 없다고 맞섰다.

하지만 2011년 6월 23일 제주지방법원에서 열린 1심 선고에서 재판부는 ‘예비검속 진술규명 결정이 내려진 2010년 6월을 기점으로 소멸시효를 계산해야 한다’면서 숨진 고씨의 아내에게 2100여만원을, 아들과 딸에게 각각 3300여만원을 지급할 것을 주문했다.

국가가 ‘소멸시효’를 이유로 제기한 2심에서도 재판부는 어김없이 유족들의 손을 들어줬다.

2012년 5월 2일 광주고등법원에서 열린 항소심에서 재판부는 “피고는 유족들이 가해행위의 전모를 어림잡아 미리 소를 제기하지 못한 것을 탓하는 취지로 소멸시효의 완성을 주장하며 그 책무이행을 거절하는 것은 현저히 부당하다”고 판시했다.

그러면서 배상액도 1심보다 높여 아내에게는 2200여만원을, 자식들에게는 5600여만원을 지급할 것을 명했다.

국가는 이에 불복하며 재차 상고했으나 대법원 또한 유족들의 편을 들어줬다.

대법원은 판결문에서 “국가가 소멸시효 완성을 주장하는 것은 신의성실의 원칙에 어긋나는 권리남용에 해당해 허용될 수 없다”며 “원심의 조치는 정당하다”고 밝혔다.

이번 대법원 판결에 따라 앞으로 제주예비검속사건을 둘러싼 다른 소송에도 영향을 줄 것으로 보인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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