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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학도에서 환경지킴이로 “나는야 제주 할망”[여성의 날 특집 인터뷰] 강순희 주부교실 제주지회장
“제주 환경생각하면 할일 많아…이젠 제주 사학도 될 것”

▲ 강순희씨. 제주민속자연사박물관에서 문화관광해설사로 자원봉사활동을 하고 있다.
제주도의 상징은 청정, 깨끗하고 아름다운 자연이다. 그러한 청정한 자연을 지키기 실생활에서부터 달라져야 했다. 특히 제주 여성들의 인식이 변해야 했다. 여성교육이 필요했던 것이다. 그래서 뛰어들었다.

국사교사에서 평범한 주부로, 평범한 주부에서 환경지킴이로, 여성 의식 교육자로, 그리고 문화관광해설사로. 그의 나이 64세. 옛날로 치면 고령의 나이지만 지금 할머니라는 소리를 듣고 손주만 보기에는 너무 할 일이 많다.

강순희. 그는 현재 전국주부교실 제주도연합회 회장이면서 제주도 문화관광해설사다. 그 이전에 그는 사학도다. 박근혜 대통령과 대학 동기동창이다.

그는 제주시에서 태어났지만 어린시절 서귀포시에서 자라 여고시절은 다시 제주시에서 보냈다. 학창 시절을 산남·북에서 모두 보냈다. 한라산을 먼발치에서만 보지 않고 산남·북을 오가면서 느꼈기 때문에 그의 제주 환경 사랑은 남다르다.

당시 대학나무(감귤나무)의 도움으로 제주 여성으로서는 흔치 않게 서울에서 대학을 다녔다. 서강대 사학과. 제주의 자연과 서울의 많은 지식 덕인지 그는 근검절약은 곧 청정 제주 보존이라는 소신을 갖게 됐다. 그리고 제주 여성들의 인식 개혁이 자신이 추구하는 소신을 확산시킬 것이라는 생각도 가지게 됐다.

제주도는 할머니의 역사라는 말을 하는 그는 제주 여성이야 말로 강한 여성이자 따뜻하고 포근한, 아름다운 여성이라고 말한다. 그러한 여성이 활동하고 대우받아야 제주가 발전한다고 보고 있다.

그런 그를 7일 제주자연사박물관에서 만나봤다. 그는 관람객들에게 제주의 민속에 대해 한참 설명을 하고 있었다. 관람객들도 그의 설명에 매료돼 시간 가는 줄 몰랐다.

교사를 했었다고 들었다.

“신성여중에서 1974년부터 77년 6월까지 3년 동안 국사를 가르쳤다. 당시 박정희 대통령이 국사교육을 강화해서 일주일에 4시간씩 국사교육을 했다. 그러다가 결혼을 하면서 남편이 직장이 서울이어서 그만두고 서울로 갔다.”

국사교사로서 지금의 국사교육을 어떻게 보나?

“솔직히 국사교육에 대해 생각을 깊이 해보지 못했다. 제가 학교를 다닐 때, 국사라는 것은 솔직히 부끄러운 얘기지만 외우는 교육이었다. 의식화되고, 처절하게 느끼는 교육이 아닌 시험위주, 암기식 교육에 치우쳤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 그러다 대학 다닐 때, 유명한 교수들로부터 르네상스, 서양 지성사 들으면서 제가 충격을 많이 받았다. 앞으로의 교육은 암기식, 시험위주의 교육이 아닌 역사를 마음으로 다가가는 교육이 돼야 한다. 다행히 요즘 젊은 교사들이 그런 교육을 많이 한다. 한국 현대사 교육은 아직 정립되지 않아 아쉬운 부분이 있다”

전국주부교실과 언제부터 인연이 됐고 어떤 활동을 했나?

“1987년 다시 제주로 내려왔다. 당시 전국주부교실 제주도지부 소비자상담실이 있었는데 요청을 받고 2년 동안 상담업무를 했다. 당시 상담업무가 상당히 어려웠다. 당시 제주에서는 소비자 상담이라는 것이 처음 있었던 때였다. 그때만 해도 소비자보호법이 지금처럼 제도화 되지 못했다. 연고 내지는 개인적인 사정에 의해 해결하는 방법이 전부였다. 그래서 스트레스도 많이 받고 고민도 많았다. 소비자 불만에 대해서는 상인들의 협조를 구하기 어려웠다. 반품·환불에 대한 개념이 지금보다 덜했다. 제도보완이 필요했다. 그 다음에 상인들의 의식을 바꾸고 소비자를 보호해야 한다는 인식을 심어주는 교육이 절실했다. 하지만 오히려 소비자들은 불만이 많았지만 상담을 받는 것 자체를 꺼리는 경향이 많았다.”

소비자 인식 개선에 많은 노력을 했을 것 같다. 기억에 남는 에피소드는?

“소비자 인식이 많이 개선되기는 했다. 무엇보다도 언론인들이 사무실에 많이 찾아왔었다. 그때만 해도 기사거리가 많지 않았기 때문에 소비자 분쟁이 기사거리가 됐기 때문이다.”

이후에는 어떤 활동을 했나?

“2년간 근무한 뒤 잠시 쉬다가 애들이 초등학교에 다니면서 학교 어머니회 활동을 했다. 당시 많은 일을 한 것이 생각난다. 1991년도인데 컴퓨터라는 것이 일반화되지 않을 때였다. 어머니들을 대상으로 강사를 초빙해 8비트 컴퓨터 교육을 했다. 주부교실 다닐 때 컴퓨터 교육과 일본어 교육은 반드시 필요하다 느꼈다. 그래서 학부모들도 컴퓨터 교육이 필요하다고 느껴 한 것이다. 지금은 잘 못한다. 이 메일과 워드를 작성하는 정도다.(웃음) 또 다른 활동으로는 자원 재활용 활동을 했다. 매주 수요일에 학생들에게 신문지와 종이, 병을 가져오도록 해서 판매 금액으로 어린이 도서를 구입했다. 100만원 상당이 됐다. 학예 발표회 때에는 헌 체육복과 전과(참고서)를 후배들에게 물려주는 사업을 했다. 재활용하고, 자원절약도 되고, 후배들을 생각하는 마음을 갖도록 하기 위해서다. 제주도에서 처음 시도한 것으로 알고 있다.”

자원을 재활용해서 도서를 구입했다. 그리고 체육복·참고서 물려주기도 했다. 이런 생각은 어떻게 갖게 됐나?

“제주도를 청정지역으로 만들겠다는 생각을 젊은 시절부터 해 왔다. 1987년, 그러니까 노태우 대통령이 당선되고 나서 취임하기 전이다. 12월16일 KBS방송에서 ‘대통령에게 바란다’라는 프로그램에 출연한 적이 있다. 당시 대통령에게 ‘제주도는 맑은 바다, 좋은 한라산 등 이런 자연에 합당한 기업이 무엇인가를 생각하면 오염시키지 않는 기업이 와야 한다. 스위스의 정밀산업 같은 기업이 와야 한다. 그런 청정이미지에 맞는 기업을 제주도에 유치해야 한다’고 용감하게 건의했던 기억이 생생하다. 지금 생각하니 겁도 없이 나간 것 같다. 이런 얘기를 할 수 있고 생각한다는 것은 제주도에서 유년시절을 보낸 탓도 있지만 젊은 시절 서울에서 많은 것을 보고 느꼈던 것 때문인 것 같다.”

당시 ‘청정’보다는 ‘개발’이 제주도에 주를 이뤘을 텐데

“지금도 물을 그렇게 아낀다. 지금은 세탁기가 물을 받을 수 없지만, 예전에는 마지막 나온 물을 받아서 걸레를 빨기도 했다. 물을 함부로 버린 적은 없다. 조금 귀찮지만 제주도를 위한 것이라고 생각한다. 지금도 그 습관이 배어 있다. 어머니회 활동을 할 때에도 학부모들의 의식을 바꿔야 한다고 생각해 어머니회원들을 처음으로 회천 쓰레기매립장을 견학시키고, 도두동 하수종말처리장도 견학간 적이 있다.”

▲ 강순희씨가 관람객들에게 제주해녀에 대한 설명을 하고 있다.
국사교사에서 주부교실 소비자 상담사, 어머니회 회장, 문화관광해설사 회장, 제주도여성특별위원회 위원장, 주부교실 회장 등 다양한 활동을 하고 있다. 특히 제주도는 여다(女多)의 섬이지만 보수적이다. 이런 활동이 쉽지는 않았을 것 같다.

“솔직히 집안일은 잘 못한다. 집안일 못한다고 야단을 맞는다. 상황에 끌려간 것 같다. 사회가 나를 불렀다. 그것을 인정상 뿌리치지 못했다. 그러다보니 이렇게까지 오게 됐다. 뚜렷한 철학이 있던 것은 아니다. 제주를 아끼고 청정해야 된다는 생각, 환경에 대해서는 누구보다 엄격해야 한다는 소신 때문이다.”

8일은 유엔이 정한 ‘3·8세계여성의 날’이다. 제주 여성의 사회활동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는가?

“직업적으로 사회에 공헌할 수 있으면 가장 좋다. 하지만 직업이 없더라도 가정에 충실하면서 여성 활동을 해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주변에서 보면 집안일, 가족에 대해서는 소홀히 하면서 활동하는 분도 없지 않다. 집안에 대한 근간이 첫째다. 제주여성들의 사회활동은 많이 모자라다. 끊임없는 교육을 통해서만이 활동범위도 넓어지고 소재거리, 주제도 다양해질 것이다. 주부교실 단체 예를 들면 1년에 한번 중앙회 대회에서 유명인의 특강을 많이 듣게 한다. 단체마다의 그런 워크숍, 교육, 토론 등 많은 다양한 형태를 가지고 교육시키는 것이 여성들의 발전을 주도한다고 생각한다. 단체장을 맡으면 그 위치에 안주하지 말고 끊임없이 노력해야 한다. 지속가능하게.”

과거 소비자 하면 여성들, 특히 주부들이 주를 이뤘다. 여성 교육의 필요했던 이유는?

“제주도가 여성이 굉장히 강하고 능력이 대단하다. 그 능력을 인정받지 못해 아들 중심 사회로 가다보니 정규교육을 받지 못한 분들이 많다. 학교 다녔으면 정말 잘할 것 같은 분들이 있는데 상당히 아쉬워 제 일처럼 다가온다. 정말 능력도 있고 공부도 잘했는데, 아들을 교육을 잘 시키려다 보니 딸을 희생시키는 그런 부분이 있었다. 그래서 여성들의 평생교육이 중요하다. 정규교육을 통해 자격을 못 받았지만, 여성들이 평생 동안 교육을 받는 것이 어떤 힘보다 못지않다. 평생교육을 통한 젊은 날에 교육을 받지 못한 것을 만회할 수 있을 것이다.”

문화관광해설사를 하게 된 이유는?

“제가 사학과를 나왔다고 하지만 부끄러운 부분이 상당히 많았다. 사학은 중앙정부, 궁궐의 역사다. 지역의 역사를 알면 알수록 제가 작아지는 것 같다. 모르는 부분이 너무 많았다. 2004년도에 교육을 받았다. 제주의 역사, 향토의 역사, 문화를 관광객들에게 잘 알려주고 싶다고 생각했다. 역사·문화만이 아닌 자연까지도 관광객들에게 확실하게 알려 줄 수 있었으면 했다. 제가 교육을 받을 뿐만 아니라 남들에게도 교육시킬 수 있는 입장으로 발전할 수 있던 것 같다. 제주의 역사를 아직도 공부를 다 못했다. 굉장히 보람을 느낀다.”

앞으로도 계속 할 것인가?

“올해부터 연령제한이 없어졌다. 건강이 허락할 때까지 할 것이다. 제주역사에 대해 더욱 공부하고 해설도 할 것이다. 제주 여성사도 모임에 가면 얘기하는데 이런 부분도 공부하고 알려 줄 것이다”

제주인으로서, 그리고 어머니로서 제주의 젊은 여성들에게 하고 싶은 말은?

“처음에는 여성으로서 태어나고 자라난다. 여성성이 어머니로서, 할머니로서, 시간이 흐름에 따라 변한다. 제주도의 역사는 할머니의 역사라고 얘기한다. 설문대할망의 전설, 영등할망의 굿이 있다. 현실적으로는 만덕할망의 정신이 있다. 제주의 역사는 할머니의 역사다. 할머니의 자애로움, 손주를 한없이 껴안고 예뻐하는 할머니의 모습으로 커야 한다. 여성들의 배려, 다정함, 포근함 그런 문화가 되면 제주도 사회가 발전할 것 같다.”

그는 주부교실 회장으로서 앞으로도 소비자 환경교육에 중점을 두고 교육에 나서겠다고 밝혔다. “소비자들, 주부들이 환경에 대한 인식을 갖는다면 이러한 인식이 제주도 전체에 확산될 것이다.” / 제주도민일보 김영하 기자

김영하  yhkim9356@nav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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