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0여년의 기다림… 100세 황도숙 할머니의 절절한 소망

▲ 황도숙(100) 할머니는 북에 있는 가족들 이야기를 하다 목이 메여 잠시 말을 잇지 못하고 있다.

[제주도민일보 안서연 기자] 앞으로 20일 후면 서로의 생사조차 모르고 살아가던 이산가족들의 만남이 이뤄진다.

북쪽의 가족을 만날 수 있다는 간절함으로 7만명이 넘는 이들이 가슴을 졸이고 있는 가운데, 이제는 희망조차 저버렸다는 황도숙(100살) 할머니를 만나봤다.

▲ 황 할머니가 자신이 살아온 이야기를 들려주고 있다.
함경북도 청진시 해방동이 고향인 황 할머니는 일제치하시절 북에서 남편을 만나 결혼, 파란만장한 생활을 하는 남편을 따라 만주에까지 건너가 살았다. 그러다 1951년 1.4 후퇴때 남편이 제주도 외도파출소 소장으로 발령나 먼저 남측으로 떠났고, 뒤를 이어 황 할머니도 아들(당시 10살)과 딸(당시 5살)을 데리고 도망치다시피 만주를 떠나왔다.

당시 6.25전쟁으로 너도나도 피난을 가던 시기었던지라 제주도까지 차를 얻어타고 내려오며 갖은 구박을 당해야 했다. 자녀들이 울자 ‘들키면 어떡하냐’며 ‘아이들을 죽여버리겠다’고 말한 이도 있었다. 힘겹게 네 식구가 함께 제주도에 정착하게 됐지만, 황 할머니의 가슴 한켠엔 늘 북에 있는 친정에 대한 그리움이 자리잡고 있었다.

1953년 6.25전쟁이 휴전되면서 북은 더 이상 ‘갈 수 없는 곳’이 돼 버렸다.

부모님(부친 황윤보·모친 김계순)과 남동생 황충군씨(90살), 황운산씨(85살로 추정) 모두 행방은 커녕 생사조차 알 수가 없어 답답한 마음을 안고 살아야했다.

설상가상으로 1950년대 말 제주간호전문학교로 출장을 갔던 남편이 그곳에서 병을 얻어 세상을 떠나자, 황 할머니는 생계를 꾸려가기 위해 초등학교 교사로 근무하며 자식들을 키웠다.

그렇게 시간이 흐르고 1983년 대한적십자사에서 남북 이산가족 상봉의 기회를 준다는 소식에 부랴부랴 신청했지만 30년이 흐른 지금까지 만남은커녕 생사확인조차 된 적이 없다.

황 할머니는 “큰 동생은 철도전문학교에 다녀서 서울역에 근무한 적도 있다”고 기억하며 “모든 걸 이해할 수 있는 큰 사람이었다”고 추억했다.

▲ 북측에 있는 가족들에 대한 그리움에 눈시울을 붉히는 할머니.
그렁그렁 눈물이 맺힌 할머니에게 ‘동생들이 보고싶냐’고 묻자 “이젠 안 보고싶다. 보고싶어도 희망이 없으니 생각을 하지 않으려고 한다”고 체념 섞인 어조로 답했다.

현재 황 할머니와 함께 살고 있는 외손녀 이은희(40)씨는 “초등학교 3학년때부터 명절이 되면 가족들끼리 이산가족 찾기 프로그램을 보면서 외할머니가 북측 가족에 대한 이야기를 들려주시곤 했다”고 추억을 들려주기도 했다.

이어 “슬퍼도 내색을 잘 안하시는 분인데 5년 전 어머니가 하늘로 떠난 이후 종종 눈물을 흘리시곤 한다”고 말했다.

이씨는 “할머니에게 북측 가족을 만나게 해드리고는 싶지만 신청하고 30년이 지나도록 소식조차 알 수 없지 않았느냐”며 “할머니도 이제는 가족을 찾는 일을 포기한 상태”라고 나지막히 말했다.

지난해 대한적십자에서 고령자 이산가족을 대상으로 ‘영상편지를 남겨놓지 않겠느냐’는 연락이 왔지만 가족들은 할머니에게 헛된 희망만 안겨드릴 것이 염려돼 제안을 거절하기도 했다.

다가오는 추석, 황 할머니의 오랜 기다림에 기적이 일어나지 않는다면 할머니는 여느 때와 마찬가지로 외손녀와 함께 텔레비전으로 이산가족 상봉을 지켜볼 지도 모른다. 누구보다 애틋하게, 남동생들의 안부를 그리워하며 말이다.

남북은 오는 13일 남북 양측 가족들에 대한 생사확인작업을 거친 뒤 100명을 추려 16일 이산가족 상봉 최종명단을 발표할 예정이다.

▲ 대한적십자사 제주지부 직원들이 할머니의 집을 찾아 이야기를 나누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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