캘리그라피 오월 제주에물들다展

 

  ▲ 캘리그라피 오월이 선보인 제주에물들다展. 이은혜 기자.

[제주도민일보 이은혜 기자] 바깥은 35도를 넘나드는 폭염인데, 마주앉은 그녀들에겐 은은한 ‘오월’의 향기가 난다.
 
제주어를 캘리그라피에 녹여낸 제주에물들다展에는 마침 전시회의 주최 ‘캘리그라피 오월’ 대표 김초은(41)·박인성(35) 씨가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그녀들은 입을 모아 “제주어는 시각적 언어”라고 말한다. 캘리그라피와 제주에 대한 봄볕같은 대담.
 
 
 
 
- ‘캘리그라피’ 자체가 낯선 사람이 많다. 한마디로 정의한다면?
 
(김) 보통 감성 손글씨라고 말씀들 하신다. 내 생각을 붙이자면 자신의 진솔한 마음을 글에 담아 보는 사람이 공감하는 일이다. 한 예로 수강생 중 나이가 있는 분들이 삶의 경험을 녹여내 잘 따라오신다. 아무래도 감정이 묻어나는 정도가 다르달까. 서예가 정신을 담는 작업이라면 캘리그라피는 감성을 담는 일이다.
 
 
- 제주어를 녹여낸 캘리그라피, 발상이 특별하다.
 
(김) 마음을 열어야 글씨에 몰입이 되는지라 수강생들이 수업에서 제주어를 쓰시는데 궁금했다. 배우다 보니 제주어가 시각적 언어더라.
 
(박) 제주어 자체가 함축적이다. 제주의 젊은세대들도 표준어를 추구하다보니 제주어가 많이 잊혀진다고 들었다. 사전봐가며 감수받아가며 공부했는데, 공부할수록 잊혀지기 아까운 언어라는 생각이 든다. 들으면 들을수록 시적이라 더 빠져서 작업했다.
 
 
제주 토박이 아닌가?
 
(동시에) 아니다. 둘다 ‘육지’에서 와 제주에 정착했다. 지금 자리에 없는 강효진 팀원만 제주 토박이다. 육지사람이다 보니 오히려 제주어에 매료됐다. 감탄사가 나올만큼 예쁜 말들이 많더라.
 
 ▲ 모든 작품은 제주어로 작업했다. 이은혜 기자.
 
- 작업한 제주어 중 가장 기억에 남는 말은?
 
(김) ‘잘도 아꼽다’(아기자기하고 사랑스러우며 예쁘다 라는 뜻의 제주어)라는 말이 나도 모르게 계속 쓸 정도로 표현이 참 좋았다.
 
(박) ‘폭삭 속았수다’(정말 애쓰셨습니다 라는 뜻의 제주어)가 기억에 남는다. 할머니가 일하시는 분들께 쓰시는 모습이 정겹고 좋았다. 제주어는 예쁘고 표현하기 편한 말이다.
 
 
- 작품활동과 제주어 공부를 동시에 하다 보니 어려움이 있었겠다.
 
(박) 캘리그라피가 제주어와 ‘찰떡궁합’이다. 느낌을 표현하는 단어가 많고 함축적이라 쓰는데 오히려 도움이 됐다.
 
(김) 다만 ‘내것’이 되는데 시간이 많이 걸렸다. 익숙해지기까지는 어려웠지만 제주어와 조금은 친해진 기분이 든다. (본인)고향이 부산인데 경상도말에 비해 제주어가 부드럽고 귀여웠다.
 
 
- 카페에서의 전시라니 ‘열린’ 느낌이 난다. 작품도 엽서크기거나 그보다 조금 큰 정도다. 특별한 이유가 있나.
 
(김) 이번 전시는 엽서형태로 제작해 ‘가져갈 수 있는 작품’을 만들고 싶었다. 큰 작품은 말 그대로 작품으로 인식된다. 작품이면서 동시에 지닐 수 있는 무언가를 추구했다.
 
 
- 엽서라는 개념이 여행과도 잘 어울린다. 제주를 찾는 수많은 여행자들과도.
 
(김) 여행지에서 우연히 캘리그라피 엽서를 발견해 가져가서 추억으로 삼을 수 있겠다 싶었다. ‘이게 재주 말이래’하고 전달될 수도 있지 않겠나. 받는 사람도 제주어 한마디를 배우면, 언젠가 제주에 올 때 느낌이 다르겠지.
 
(박) 엽서에 담긴 캘리그라피는 오롯이 제주어고 특유의 느낌이 들어가 되려 육지분들의 호응이 있을 듯 하다.
 
 
 ▲ 작품 뒤쪽엔 화산석을 받침대로 이용, 온건히 '제주의 것'으로 만들었다. 이은혜 기자.
 
 
- 전시회 준비는 얼마나 걸렸나?
 
(박) 3개월 정도 걸렸다. 작품 하나가 온전히 나오기까지 백번이고 천번이고 썼다. 처음이다보니 시행착오도 많았지만 개인적으로 작업과정이 또 하나의 공부가 됐다.
 
 
- 예전 스태핑스톤 김명수 기획자가 제주에서 수도권으로 올라가는 ‘문화의 역류’를 말씀하셨는데 인상깊었다. 제주어 캘리그라피와도 상통하는 말 같다.
 
(김) 캘리그라피의 대세가 수도권임은 부정할 수 없는 사실이다. 제주어를 접해보니 이처럼 ‘시각’적인 언어가 있을까 싶더라. 각도를 달리해 제주어로 캘리그라피를 써 보자 하는 생각이 번뜩 들었다.
 
 
- 듣다보니 제주 키워드 ‘관광’에 캘리그라피를 입혀도 좋겠다는 생각이 든다
 
(박) 동의한다. 한 예로 수강생 중 펜션을 운영하는 분이 계신데 스스로 만든 명함부터 간판까지 열의를 가지고 듣고 계신다. 본인이 쓴 글자를 컵에 입히거나 명함을 만드는 작업도 무척 좋아하신다. 알려드리는 입장에서도 신바람이 난다.
 
 
  ▲ 카페 한켠에는 캘리그라피가 새겨진 머그컵이 눈에 띄었다. 이은혜 기자.
 
- 팀 이름이 ‘캘리그라피 오월’이다.
 
(김) 제주에서 나름 최초로 캘리그라피를 시작해보자고 마음 먹은게 오월이다. 흔히들 ‘계절의 여왕’이라고도 하고. 뵙게되는 분들이나 저나 모든 사람이 오월처럼 반짝반짝 빛나시길 바라며 지었다.
 
(박) 뜬금없지만 오월은 운전하기 정말 힘들다. 풍경과 햇살과 바람이 모두 눈을 잡아끌어 집중하기 어렵다. 특히 제주의 오월은 더욱 그렇다. (이 대목에서 세 여자는 모두 진지하게 공감했다.)
 
 
- ‘오월’팀은 원래 알던 사이인가
 
(김) 제주에서 캘리그라피를 통해 처음 만났다. 우스갯소리로 이렇게 함께 작업하는건 ‘운명’이라고 한다. 그런데 이게 참 즐거운걸 보니 인연이다 싶다. 사실 캘리그라피를 하지 않았으면 정착을 고민했을 수 있다. 이걸(캘리그라피) 통해 제주와 가까워졌다.
 
 
 ▲ 캘리그라피 오월은 입을 모아 '제주어'를 시적인 언어라 칭했다. 이은혜 기자.
 
조곤조곤 이어가는 대화는 캘리그라피 오월의 글씨만큼이나 다정했다.
 
차분하지만 반짝이는 눈으로 ‘육지여자’들은 제주어를 향한 애정을 쏟아냈다.
 
한편 제주어를 캘리그라피에 녹여낸 제주에물들다展은 오는 8월31일까지 제주시 COFFEE 99.9와 서귀포시 Cafe숑에서 동시에 진행된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