얼마전 학원 강사인 친구를 만났다.

여러 지역에서 두루 아이들을 가르쳐 온 친구는 학교 구역마다 가정환경이나 교육열, 부모 스타일 등이 차이가 있다고 말했다. 사실 그 친구는 오랜 강사 경력만큼이나 지역별 가정환경 분석이 특기다.

어느 지역은 돈이 많아 학원비가 밀리는 아이들이 없고 카드를 받아보면 모두 플래티늄 이상이라던가, 어느 지역은 형편 어려운 가정이 많아 방과후 운동장에 홀로 놀고 있는 아이들이 많다는 말 등이 그런 예다.

소위 잘 나가는 부모들은 자신과 같은 강사들에게 교양있고 매너있게 말을 걸지만 어쩐지 눈빛은 까다로우며, 사는 게 바쁘고 힘든 부모들은 강사들에게 의지하거나 걱정은 하는데 무기력한 모습을 보인다는 등의 말도 이어졌다.

그런데 신기한 것은 ‘구역별 빈부’의 차이를 떠나 학부모들에게는 한 가지 공통점이 있는데, 그것은 자녀 또래 아이들의 상황을 잘 모른다는 것이다.

아이의 성적을 올리는 방법에 대해서는 잘 알고 있지만 그 또래 아이들이 어느 정도의 ‘비행’을 저지를 수 있는 지에 대해서는 감이 한창 떨어진다는 것이다. 쉽게 말해 정보 부족에서 오는 상상력의 결여라고 했다. 여전히 어린 아이로만 보기 때문이란다.

하지만, 매일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는 내 친구는, 아이들이 생각보다 성적으로 조숙하고 많이(?) 알며 훨씬 이른 시기부터 담배를 태우거나 야한 동영상을 접하고 있다고 말했다.

예컨대, 초등학교 5학년인 아들에게 그 엄마는 이불을 덮어주고 엉덩이를 토닥이겠지만, 그 아들은 엄마가 “잘 자라”며 문을 닫고 나간 뒤 몰래 휴대전화를 꺼내 친구에게 받은 야동을 감상하고 있을 지도 모른다는 것이다.

문제는 아이들이 클릭 몇번으로 보는 야동의 수준이 생식기가 노출되고 변태적 행위가 오가는 완연한 ‘포르노그라피’라는 데 있다. 더 큰 문제는 대개의 포르노그라피가 그렇듯, 성(性)을 사이에 두고 상대를 대하는 방식이 도무지 ‘인간적’이지 않다는 것이다.

그런데도 부모들은 언제나 ‘학’ 부모 로만 존재, 아이들의 일상을 모두 알려하지 않는다고 친구는 말했다.

특히 친구는, 야동의 문제가 단순한 성적 호기심을 넘어 습관적으로 접하게 되고(클릭이 쉬운 탓에), 영상 속 여성들이 모두 성적 도구로 표현된다는 점에서 아이들의 가치관 형성에 끼칠 악영향이 심히 걱정스럽다고 했다.

남자들에겐 예쁜 여자와 안 예쁜 여자가 있다는 우스갯소리가 있다. 남자들에겐 쉬운 여자와 덜 쉬운 여자만 있다는 무서운 말도 있다.

클릭 한번이면 말초 신경을 자극하는 포르노그라피가 넘쳐나는 세상이다.

그 속에는 자극적인 자세와 행위로 남자들의 손길을 갈구하는 ‘배역’이 있다. 그들은 촬영이 끝난 뒤 자신의 일상으로 돌아가겠지만 성욕과 폭력, 복종과 지배가 난무하는 빨간 영상은 또다른 수만번의 클릭을 따라 인터넷 이곳저곳으로 배달된다.

아이들이 자신도 모르게 성욕을 풀 도구로 여성을  ‘이해’하는 것은 아닌 지 걱정이다. 세상은, 포르노 속 모텔이 아닌데 이것을 말해줄 부모가 세상에 많지 않은 것 같다는 친구의 말이 자꾸 귓가에 맴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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