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송강호 선생님.
오늘로 98일째인가 봅니다. 지난 4월초 구럼비해안 철조망을 넘어 해군기지 공사현장에 들어가셨다가 구속되신지 3개월이 훌쩍 넘었지요.

선생님이 저희 신문에 글을 쓰시기를 원하신다는 얘기를 전해듣고 한편으로는 고마움과 다른 한편으로는 민망함에 마음이 무거웠습니다. 선생님 말마따나 강정마을도, 제주도 아닌 ‘육지 사람’인 선생님이 이땅에 해군기지 건설을 막고 평화와 환경을 지키려 몸부림치시다 지난해 7월에 이어 두번째로 구속되셨음을 새삼 기억하면서 제주사람 가운데 한 사람이자, 기자로서의 책망 때문에 말입니다. ‘우리는 길을 잃었습니다’라는 제목으로 주신 선생님의 글을 보면서 더욱 그러했습니다.

〈제주도민일보〉만이 해군기지로 고통을 겪고 있는 강정주민들의 애환을 어루만지는 유일한 도내의 종이신문이기 때문에 교도소에서도 매일 구독을 하고 계신다는 선생님의 과분하신 칭찬 또한 못내 송구스럽습니다. 해서 ‘앞으로도 어둠속에서 고난을 당하는 시민들의 눈물자욱이 묻어나고 땀냄새가 배어있는 신문으로 남아있기를 바란다’는 선생님의 말씀을 가슴에 깊이 새겨 두었습니다.

거짓에 속은 제주 사랑
송 선생님. 거짓에 속으셨다 하셨지요. 특별자치도요, 평화의 섬이라는 거짓에 속아 제주를 사랑해서 찾아오셨다요. 무려 60년간 독립투쟁을 벌이던 인도네시아 반다아체에 정부와 평화협정 체결이라는 희망의 메시지가 전해지던 지난 2005년, 3만명의 무고한 시민들이 총칼에 의해 희생된 제주도가 평화의 섬으로 선포됐다는 소식에 설레는 마음으로 제주로 오실 결심을 하셨다고요. 그런데 막상 와보니 강정마을에선 막연한 국가안보를 내세워 주민들의 삶의 터전을 강제로 빼앗아 거대한 해군기지가 건설되고 있었지요.

여기엔 세계에서 유일한 경쟁국인 중국을 포위해 동북아시아의 패권을 장악하려는 미국,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몸집 불리기’에 여념이 없는 국방부와 해군, 이데올로기의 덫을 씌워 국민들을 옥죄던 독재시대의 부활을 꿈꾸는 극우보수세력, 국가를 넘나드는 ‘군산토복합체’ 의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습니다.

못내 부끄러운 것은 ‘육지사람’인 선생님도 아는 해군기지의 진실을 제주도지방정부를 비롯해 이 땅 제주를 사는 사람들 가운데 상당수가 무관심하거나 모른체하고, 심지어는 ‘떡고물’을 얻어먹으려 눈을 붉히고 있다는 것입니다. 화해와 상생의 4·3특별법 정신과 평화·인권·환경·생명이라는 인류보편적 가치들은 그들에겐 거추장스러운 수사에 불과할 뿐입니다. 천혜의 절경을 파괴하며 해군기지를 강행하는 한편에선 세계 7대자연경관인가 뭔가 되기 위한 투표에 ‘올 인’해서 호들갑을 떠는 제주도정의 무개념과 몰가치적 행태를 보시면서 선생님이 느끼셨을 분노와 답답함 또한 미루어 짐작이 됩니다.

선생님은 매일 아침 구럼비 바위에서 이렇게 기도를 올리셨다지요. 해군기지로 파괴되어 가는 거룩한 구럼비바위와 희귀 해양생물들을 비롯한 숱한 어종이 서식하고 돌고래가 춤추는 아름다운 중덕바다를 지켜달라고. 전멸의 위기에 처해있는 작은 미물들의 생명을 아끼고 사랑하는 것이 곧 평화를 지키는 일이니 살아있는 구럼비 생태계와 강정 앞바다의 모든 생물들을 지켜 보호해 달라고 말입니다. 구럼비를 깨부수고 시멘 콘크리트로 매장하려는 미치광이 같은 발상을 한 자와 그를 시행하는 자 모두를 징벌해 달라고도 하셨지요.

희망의 불씨를
송 선생님. 어둠이 아무리 깊은들 다가오는 새벽을 어찌 막을수 있겠습니다. 때론 더디고 힘에 부쳐도 결국은 공공의 선과 가치, 건강한 상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 배웠습니다. 〈제주도민일보〉가 ‘20년 같은 2년’을 버텨온 것도 이러한 믿음과 희망의 끈을 놓을수 없기 때문입니다.

제주사회 구석구석에는 민주사회의 가치와 상식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분들이 적지 않습니다. 국무총리실의 속내야 어떻든 강정마을과 해군기지 ‘끝장토론’을 협의하고 있는 것도 제주사회의 바른 목소리들을 무작정 외면하고 강행하는 것은 곤란하다고 판단했기 때문이 아닐런지요.

송 선생님의 말씀처럼, 이제는 제주가 다시 살아날수 있는 길을 찾기 위해 정부·해군과 제주도정,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도민들이 둘러앉아 진정성있게 소통의 문을 열어야 할 때 입니다. 저마다의 욕심이나 아집은 버리고 같이 갈 새롭고도 바른 길을 찾아나가기 위한 대화를 시작해야 할 때이고, 지금 돌아서지 않는다면 다시는 돌아올수 없는 나락으로 떨어질수 있음을 잊어서는 안되겠지요.

송 선생님. 이제 무더위가 본격적으로 시작됐습니다. 부디 건강 챙기시고, 몸과 마음을 다해 제주를 사랑하시는 진정한 ‘제주사람’으로, 제주의 바른 길잡이로 남아 희망의 불씨를 틔워 주십시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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