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상이 <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제주대 교수>

필자는 10년전 이맘때 보건의료정책을 전공하는 연구자로 제주대학교 의과대학의 의료관리학 교수가 되었다. 그리고 한 학기쯤 지났을 때, 당시 우근민 지사의 제주도정이 추진하였던 ‘국제자유도시 10개년 계획’ 개발 연구에 참여하게 되었다.

필자는 보건의료분야의 집필을 맡았다. ‘국민의 정부’ 시기 의료보험통합과 의약분업 입법 등을 추진하는 데 주도적 역할을 담당하였던 필자의 경험과 전문성을 살려 제주도 의료의 공공성을 높이는 데 도움이 되고 싶었던 것이다. 이것이 참여 동기였다.
 

의료공공성 챙기지 못한 제주 


그 때 이래로 필자가 파악하고 있는 제주도 의료의 문제점은 다음과 같다.

첫째, 여전히 중대질병에 걸렸을 경우 비행기를 타고 서울로 가는 환자가 많다는 것이다. 둘째, 보건소와 공공병원 등이 제주도의 공공보건의료 안전망으로의 구실을 거의 수행하지 못하고 있다는 것이다.

셋째, 일이 이렇게 된 데는 제주도 당국의 철학부재와 무책임이 일차적 원인이라는 점이다. 상황이 이러함에도 제주도정은 지난 몇 년의 세월을 내국인 영리법인 의료기관 허용문제로 소비하였다.

도정의 행정력과 재정의 낭비뿐만 아니라 제주도 사회의 분열과 갈등이라는 엄청난 사회적 비용을 치룬 것이다. 그러는 동안 제주도 의료의 공공성은 후퇴하거나 정체되었다.

지난 6·2지방선거에서 우근민 후보는 내국인 영리병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선거공약을 내걸었다. ‘의료민영화’의 현실화를 우려하던 많은 도민들은 이 공약을 반갑게 받아들였을 것이다. 그리고 이 공약이 우 후보의 당선에도 영향을 미쳤을 것이다.

다행스럽게도 우근민 지사는 공무원들에게 영리법인 병원을 더 이상 언급하지 말도록 지시하였다고 한다. 많은 사람들이 우 지사의 이 발언을 ‘영리법인 병원을 허용하지 않겠다는 뜻’으로 받아들이며 환호성을 내질렀다. 필자도 그렇게 믿고 있다. 의료 공공성의 강화는 주식회사 병원과는 상극이기 때문이다.

하지만 영리법인 병원이 없다는 것만으로 제주 의료의 공공성이 저절로 달성되는 것은 아니다. 의료 공공성 강화에 대한 제주도 당국의 단호한 의지와 충분한 재정투자가 수반되어야 한다.
 

확고한 철학이 우선돼야

먼저 도내 보건소의 기능을 건강증진과 질병예방 뿐만 아니라 의료이용과 사회복지서비스까지를 연계하는 수요자 중심의 포괄적 제공체계로 확대해야 한다. 이를 위해서는 더 많은 인력과 재원이 필요하며, 기존 인력에 대한 교육훈련의 강화와 보상 및 평가의 체계화가 요구된다.

더불어 제주대학교병원과 제주·서귀포의료원 등 도내 공공병원을 의료 공공성 강화의 교두보로 삼겠다는 도정의 확고한 의지와 충분한 재정투입이 요구된다. 그렇다고 이미 급성 병상의 과잉상태인 제주지역(구 제주대학교병원 자리)에 공공병상을 더 짓겠다거나 제주도에는 전혀 필요하지 않은 ‘경기도 의료원 식’의 별도 관리조직과 고위직 자리를 만드는 일을 추진해서는 안 된다.

이건 명백한 낭비다. 중요한 것은 공공의료에 대한 제주도정의 확고한 철학과 이를 뒷받침할 도민이 체감할 정도의 효과적 재정투입이지 비효율과 옥상옥의 낭비가 아니기 때문이다. 제주도 공공보건의료의 올바른 발전을 위한 ‘새로운’ 우근민 도정의 역할을 기대하며, 제주도민과 함께 엄정하게 지켜볼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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