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 편집국장

▲ 오석준

이제 2년입니다. 지난 15일이 제주도민일보 창간 두돌이었지요.
돌이켜보면 20년 같은 2년이 아니었나 싶습니다. ‘벽’은 생각보다 훨씬 높고 단단했습니다. ‘유력언론’을 자처하는 기존 지역신문·방송에 길들여진 인식과 구조, 지역신문이 그게 그거 아니냐는 냉소어린 시선, 종이신문을 멀리하는 세태 등 아직도 ‘지뢰밭’이 곳곳에 널려있지요.

하지만, 또하나의 신문이 아니라 유일한 신문, 신문다운 신문을 만들자는 꿈, 가려지고 왜곡된 진실의 맨얼굴을 드러내어 생산적인 비판과 건강한 담론을 통해 제주공동체의 보다 밝은 미래를 위한 ‘소통의 문’이 되겠다던 다짐을 제대로 실천하지 못한데 대한 변명은 안되겠지요. 무엇보다 저희들 스스로의 치열함과 역량이 부족했던 탓이니 말입니다.

지난 2년, 제주사회는 무엇이 달라졌을까요. 2010년 지방선거를 통해 도지사를 비롯한 지방권력과 ‘주류’를 자처하는 세력들이 교체된 것을 제외하면 딱히 보이는게 없습니다. 열 몇개인가하는 이런저런 ‘장’자리도 지사의 측근이나 선거캠프에 있던 사람들로 채워져 ‘선수’만 바뀌었을뿐이고요.

정부가 지정·선포한 세계평화의 섬 제주에 공권력을 동원해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한 국민들을 억압하며 무지막지하게 강행되는 해군기지는 어떻습니까. 이승만 1인 독재체제 구축을 위한 반공 이데올로기의 광풍속에 3만여명으로 추산되는 무고한 제주도민들이 국가공권력에 희생됐던 한국현대사 최대의 비극 4·3을 강정 해군기지에서 마주하고 있는 것이 제주의 현실입니다.

여기엔 화해와 상생의 4·3특별법 정신, 평화·인권·환경·생명의 인류보편적 가치들, 민주사회의 최소한의 상식은 자리할 틈이 없지요. 국가안보라는 이름으로 ‘몸집불리기’ 욕심을 채우려는 국방부·해군, ‘1948체제’의 부활을 꿈꾸는 이명박 정권을 비롯한 극우보수세력, 국가를 넘나드는 군산토복합체(military-industrial-constructive complex)의 욕심이 똬리를 틀고 있을 뿐입니다.

제주도지방정부와 도민들이 자존이 무너지고 ‘제2의 4·3’에 대한 걱정이 현실화되고 있음에도 정부도, 국회도, 도지사도, 도의회도, 지역사회 ‘주류’임을 자처하는 집단들도 ‘나몰라라’ 비켜선 것이 강정, 그리고 제주의 비극인 것이지요.

정체모를 뉴세븐원더스(N7W)재단 이사장 버나드 웨버가 만든 사기업 뉴오픈월드코퍼레이션(NOWC)이 벌인 돈벌이 캠페인에 300억원이 넘는 혈세를 탕진한 세계 7대 자연경관 ‘투표 전쟁’에선 도지사를 비롯해 제주사회에서 주류를 자처하는 집단들의 ‘수준’을 읽게됩니다.

무제한 중복투표와 연간 1조3000억원으로 부풀려질대로 부풀려진 엉터리 파급효과 등 객관성과 신뢰성 문제, 사실상 국내전화로 밝혀진 투표전화 등 지극히 상식적이고 정당한 문제 제기마저 무시하고 덮으려고만 하는 ‘용렬함’과 무책임이 그러합니다.

최소한의 상식이 살아있다면, 드러난 문제들에 대해 도민과 국민들에게 정중하게 사죄하고 합당한 책임을 져야 하겠지요. 엄청난 혈세와 투표 기탁성금이라는 명목으로 도민들로부터 준조세나 다름없이 거둬들인 60억여원 등은 어디에 어떻게 쓰였는지, 수익은 어떻게 배분됐는지 등을 낱낱이 공개하는 것은 물론입니다.

이 와중에 도내 6개 지역신문·방송사들이 이른바 ‘유력언론사’라는 ‘선량한’ 얼굴로 각종 기관·단체·기업·도민들의 호주머니와 코흘리개 어린아이들의 저금통까지 털어 투표기탁 캠페인을 벌이면서 제주도·범도민추진위 등과 ‘짬짜미’로 예산을 받아챙기는 지경인데 말해 무엇하겠습니까.

아무리 감추려해도 객관적 사실에 민주사회 공공의 선과 가치가 더해진 진실은 본래의 모습을 드러낸다는 것이 저희들의 믿음입니다. 언젠가 결국은 민주적 가치와 건강한 상식이 사회를 지배하게 된다는 것이 역사의 경험이자 공동체를 유지·발전시키는 원동력이라는 것이지요.

창간 2주년을 맞아 도내 각계인사 200인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에서도 이러한 믿음이 틀리지 않았음을 확인하게 됩니다. 각계인사들은 당장 해군기지 공사중지명령을 내리고 국방부·해군과 지역국회의원, 제주도와 도의회, 지역주민 등이 참여하는 협의체를 구성해 해법을 찾으라고 주문했습니다.
7대경관 선정에 대해선 63.5%가 문제가 있다는 부정적인 평가속에 38%가 감사원 감사결과 등을 토대로 한 책임규명과 문책을, 37.5%가 ‘타이틀’은 활용하되 책임규명이 필요하다고 했지요.

이는 제주사회 구석구석에 민주사회의 가치와 상식이 살아숨쉬고 있음을 보여주는 희망의 메시지입니다. 올곧은 진실, 최소한의 상식과 룰이 지켜지는 건강한 제주공동체에 대한 희망의 끈을 놓을수 없는 이유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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