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이상이 / 제주대학교 의료관리학 교수·복지국가소사이어티 공동대표

▲ 이상이

올해 초 민주통합당이 복지국가 노선을 앞세운 통합정당으로 새롭게 출범하면서 수년 만에 처음으로 당의 지지율이 여당을 추월했다. 당시, 민주통합당은 약 40%의 지지율을 기록하며 여당의 30% 보다 10%포인트 정도 앞섰다.

그러나 이후 민주통합당은 지도부의 오만과 무능으로 서서히 지지율을 까먹더니, 마침내 4·11총선에서 패배하며 지지율이 역전되고 말았다. 최근에는 통합진보당의 비례대표 후보 경선부정 사태와 여당이 공세적으로 제기한 종북주의 논란 등의 매카시즘적 분위기가 여론에 일부 먹혀들면서 새누리당의 지지율이 약 40%에 이르러 민주통합당의 30% 보다 10%포인트 정도 앞서고 있다.

여야 정당별 지지율의 등락에서 보듯이, 여당과 야당은 모두 약 30% 정도의 고정적인 지지율을 기록하고 있다. 즉, 우리나라에서는 보수정당과 진보정당 각각은 흔히 ‘집토끼’라고 불리는 약 30%의 고정 지지층을 확보하고 있으며, 약 40%가 부동층을 형성하고 있다. 이 40%의 부동층 중에서 일부는 상황에 따라 기존의 여당 지지에서 야당으로, 또는 야당 지지에서 여당으로 옮겨 다니며 지지 의사를 표명하는가 하면, 나머지는 무응답층으로 남는다. 이 무응답층은 여론조사의 시기와 방식에 따라 그 규모가 작을 때는 10%대에서 클 때는 30%대에 이르기까지 다양하게 나타난다.

흔히, 보수정당 지지자 30%, 진보정당 지지자 30%, 그리고 나머지 40%를 보통 중도 유권자로 분류하곤 한다. 지난 4·11총선에서 대패하자, 민주통합당 일각에서는 당의 ‘좌 클릭’ 때문에 중도 유권자를 잃은 것이 패인이라며, 앞으로 민주통합당이 대선에서 승리하기 위해서는 정책노선 상의 ‘중도’를 강조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민주통합당의 노선과 정책이 그동안 과도하게 좌 클릭했으므로 일부를 되돌리자는 주장이다. 얼핏 보면 그럴듯하게 들리지만, 이건 틀린 말이다. ‘이념적 중도’와 ‘중도 유권자’를 구분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이들은 ‘중도’를 이념적으로 보수와 진보의 중간쯤에 위치한 ‘이념적 중도’로 이해한 것이다.

단언하건대, 나는 이러한 ‘이념적 중도’ 노선은 존재하지 않는다고 생각한다. 단지 ‘중도 유권자’가 존재할 뿐이다. 이념적 보수와 이념적 진보는 뚜렷하게 대립하면서 이념적 지향과 사람 사는 세상의 대별되는 큰 흐름들을 각기 잘 대변하고 있다. 보수가 자본과 시장과 경제적 자유를 강조하며 이를 옹호하는 세력을 대변하는 반면, 진보는 노동과 공공성과 경제사회적 정의를 강조하며 노동자와 사회적 약자를 주로 대변한다. 그리고 보수가 사회문화적으로 전통의 가치를 소중하게 지키려는 경향이 강한 반면, 진보는 미래의 새로운 전통이 될 문화적 실험과 도전을 멈추지 않는 경향이 있다. 종교적 전통에 대한 태도도 마찬가지다.

다시 말하지만, ‘이념적 보수’와 ‘이념적 진보’는 존재해도 ‘이념적 중도’는 하나의 노선으로는 존재하지 않는다. 이념(노선)과 가치, 그리고 이에 따른 정책의 측면에서 이념적 보수 유권자와 이념적 진보 유권자는 시기에 따라 그 비중이 약간의 차이는 있겠으나 각각 30% 정도씩 존재하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흔히 각 진영의 집토끼에 비유된다. 그러나 어느 쪽에도 속하지 않은 약 40%의 유권자는 ‘이념적 중도’ 노선의 지지자가 아니다. 이들은 단지 부동층일 뿐이다. 그럼에도 언론과 정치인들은 이들 ‘중도 유권자들’을 ‘중도’라고 대충 부르며 그냥 넘어간다. 여기서 우리는 정치적 ‘중도’의 의미를 올바르게 이해해야 한다.

이념적 보수와 진보 노선의 양쪽 중 어느 쪽도 지지하지 않는 중도 유권자들(부동층)은 언제나 존재하지만, 이념적으로 보수도 아니고 진보도 아닌 노선과 가치, 즉 ‘이념적 중도’ 노선은 이 세상에 존재하지 않는다는 점을 나는 다시 한 번 강조하고 싶다. 그럼에도 우리는 여전히 정치적으로 ‘중도’를 강조한다. 특히, 선거 정치에서는 더욱 그렇다. 여기서 나는 정치적 ‘중도’의 올바른 의미를 강조하고 싶다. 중도는 중용의 가치, 즉 ‘소통과 타협’이라는 적극적 방법론을 통해 새로운 정치사회적 합의를 이뤄내는 것을 의미한다. 독선적인 진영논리를 벗어난 합의의 정치, 정치사회적 대화를 통한 공론의 형성을 강조한다.

그러므로 4·11총선 패배 이후 민주통합당이 가야할 길은 2010년 6·10지방선거 이후부터 올해 초의 창당 시점까지 정립해온 복지국가 노선과 정책적 ‘좌 클릭’을 되돌리는 것이 아니라, 노선을 확고히 하면서 복지국가 정책들을 또렷하게 드러내놓고 보수진영을 포함한 국민 모두와 열린 자세로 토론하고 적극적으로 공론화를 시도하는 소통과 타협의 정치이다. ‘중도 유권자를 잡아야 대선에서 이긴다’는 말은 지극히 옳다. 이를 위해서는, 기존의 진보개혁 노선을 버리는 것이 아니라 ‘소통과 타협’의 정치사회적 대장정에 나서는 것이다. 그래서 마침내 폐쇄적 진영논리를 넘어설 때 ‘중도 유권자들’의 지지를 얻을 수 있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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