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집국장의 편지] 오석준/ 편집국장

▲ 오석준

깃발이 다시 솟아올랐습니다. 우근민 퇴진 !
지난 2009년 당시 김태환 지사 주민소환투표에 이어 3년만에 강정마을 주민들과 시민사회단체·평화활동가들이 ‘도민을 위한 도지사는 죽었다’며 다시 도지사 퇴진 깃발을 들어올린 것이지요. 지난 24일 도청앞에서 우 지사의 사진은 불에 태워졌고, 강동균 강정마을회장과 고권일 강정 해군기지 반대대책위원장은 삭발로 결연한 의지를 표시했습니다.

이들을 분노하게 만든 직접적인 발단은 이제나저제나 고대해왔던 해군기지 공사중지 명령을 우 지사가 전날 한 종합편성채널과의 대담에서 ‘요건이 안된다’고 했기 때문입니다. 지난 2010년 선거때 ‘주민들의 편에 서서 해군기지 문제를 해결하겠다. 정부의 압력에 굴하지 않겠다’고 했던 우 지사에 대한 배신감에 멍든 강정마을 주민들의 가슴에 불을 지른 것이지요. 파장이 커지자 우 지사는 ‘공사중지 명령을 안내리겠다는 것이 아니라, 청문결과 정지명령이 가능하다고 볼수 있는 법적 근거를 확보하지 못한 상황을 설명한것’이라고 해명하고 나섰지만 ‘버스’는 이미 지나가고 말았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의 우 지사와 단절선언은 지난 4월 12일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명령에 따른 3차 청문이 끝난지 한달 보름여가 되도록 법률자문이다, 15만t급 크루즈선 입출항 시뮬레이션 재현이다 뭐다하며 시간만 질질 끌고 있는 우 지사의 속내를 이젠 다 알았다는 뜻이겠지요. 우 지사에겐 더이상 기대할게 없다는 얘깁니다.

2년전 취임사에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해 우 지사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강정마을 주민들, 제주도민, 국방부 모두가 수긍할수 있는 방안을 마련하겠습니다. 어느 일방의 맹목적인 양보를 강요해서는 안됩니다. 합리적인 중재자로서의 역할을 다해서 도민대통합의 전기를 마련하겠습니다” 그리고 이런 말도 했지요. “제가 지사직을 물러난후 ‘우근민 도지사와 함께 한 시간이 즐거웠고 행복했다’라는 말씀을 도민 여러분이 하실수 있도록 온 몸을 다바쳐 제주발전을 위해 헌신하겠습니다”고 말입니다.

2년이 지난 지금 강정마을 주민들을 비롯해 해군기지를 반대하는 도민·국민들과 우 지사 사이의 간극은 너무 커 보입니다. 무엇보다 경찰 공권력을 동원한 정부·해군의 억압에 피눈물을 흘리면서도 우 지사의 약속을 믿었는데, 이제와서 공사중지명령을 내릴수 없다고 하니 결국 우 지사의 사기행각에 놀아났다는 배신감 때문입니다.

15만t급 크루즈선이 이용할수 있는 민군복합형관광미항을 건설해 국가안보 사업을 하고, 주변지역 발전계획에 대한 정부의 지원을 통해 지역발전도 도모한다는 우 지사의 ‘윈 윈’ 해법은 씨알이 먹혀들지 않은지 이미 오래지요. 제주도의회 행정사무조사와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 해군기지 소위원회 조사 등을 통해 15만t급 크루즈선의 안전한 입출항이 사실상 불가로 판명났고, 국방부가 단독으로 실시한 시뮬레이션 재현도 제주도가 요구한 3가지 케이스에 대한 검증을 국무총리실과 해군이 거부하는 등 ‘답’이 나왔는데 여기에만 매달리는 속내가 뻔한데 어떻게 믿을수 있느냐는 것입니다.

게다가 공유수면 매립공사 정지명령에 따른 3차청문에서 제주도가 현재의 항만설계는 15만t급 크루즈선 2척이 동시 계류가능한 2개 선석 건설이 아니라고 판단되고, 서측 돌제부두를 고정식에서 가변식으로 조정하는 것 또한 실시설계 변경사유임을 들어 다시 승인을 받을 때까지 공사정지처분을 하겠다는 의사를 해군측에 전달한 바 있음을 감안하면 더욱 그러합니다. “제주의 미래는 15만t 크루즈선이 아니라 구럼비에 있고, 강정마을에 있고, 제주도민의 자존심에 있다. 도민들의 자존을 짓뭉개는 도정은 반드시 끌어내려야 자존있고 줏대 있는 도민으로 살아갈수 있다”는 외침에서도 우 지사와의 간극은 확인됩니다.

지난 26일엔 새누리당 대선 후보군 가운데 한사람인 임태희 전 대통령실장이 강정마을을 찾았습니다. 1000여명의 유권자 가운데 고작 87명의 박수로 통과된 해군기지 유치 건의, 불·탈법적인 절대보전지역 해제 등 과정·절차적 잘못, 마을공동체 파괴, 공권력의 억압과 종북좌파 매도 등 강정마을 주민들의 하소연을 들은 임 전 실장은 “대한민국에서 어떻게 이런 일이 일어날수 있는지, 이런 상황을 정부부처에 정확하게 전달하겠다”고 했지요.

민주공화국에선 일어나선 안되는 일이 일상화되면서 ‘제2의 4·3’에 대한 걱정이 현실화되고 있는 곳이 강정입니다. 그럼에도 정부도, 국회도, 도지사도, 도의회도, 지역사회 ‘주류’임을 자처하는 집단들도 ‘나몰라라’하고 비켜선 것이 강정, 그리고 제주의 아픔이자 비극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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