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요일에 만난 사람] 연극인 강상훈 극단세이레극장 대표

제주지역에 ‘소극장’ 문화 정착될 수 있도록 혼신의 힘 다할 터

[제주도민일보 김성진 기자] 볼거리와 즐길거리가 많은 현대사회에서 연극은 과거와는 달리 대중의 시선에서 점점 멀어지고 있다. 제주의 경우도 현재 3개 극단만이 명맥을 유지하고 있을 뿐, 상당수 극단들이 이미 그 자취를 감췄다. 이 같은 힘든 환경 속에서도 연극공연 뿐만 아니라 소극장운동을 가장 활발하게 펼치고 있는 극단이 있다. ‘극단세이레극장’이다. 극단 세이레는 제주 최초의 극단 ‘이어도’ 출신들이 주축이 돼 지난 1992년 만든 단체로, 연극인 부부 강상훈 씨와 정민자 씨에 의해 20년째 그 맥을 이어오고 있다.

세이레는 순수 우리말로 이레 즉 7일을 세 번 맞는다는 뜻으로, 21일은 갓 태어난 아이와 세상 사람들의 만남을 금하는 기간이다. 또 곰(웅녀)이 환웅으로부터 쑥과 마늘만 받아 동굴 속에서 견뎌 마침내 인간으로 변한 기간이기도 하다. 다시 말해 새로운 탄생을 위한 인고의 시간, 외부와의 격리를 통한 순수한 영적인 시간이다. 강 대표는 단원들이 꿈꾸는 연극적 이상을 위해 다가올 새로운 고행을 기쁜 마음으로 맞이하겠다는 의연한 각오를 표현하고자 극단이름을 ‘세이레’라고 지었다고 한다. 문화적으로 척박한 제주 땅에서 연극을 통해 새로운 문화를 창조하려는 창단멤버들의 결연한 의지가 엿보인다.

지난 1992년 ‘극단세이레레파토리컴퍼니’란 이름으로 문을 연 ‘극단세이레극장’은 부인 정민자 씨가 대표로 있는 ‘세이레어린이극장’을 합쳐 2007년 신제주 연동사거리에 복합문화공간 ‘세이레아트센터’로 새롭게 개관한다. 현재 세이레아트센터에는 성인극과 아동극, 인형극 등이 연이고 올려지고 있다.

세이레 극단은 한 달 장기공연을 위해 기획, 연습, 세트준비 등에 3개월 정도를 보낸다. 자체 소극장이 있기에 가능한 일이다. 현재 무대에 올려지고 있는 작품은 ‘B언소’. 변소를 달리 쓴 말이다. 사연을 가진 사람들이 냄새나는 공간을 배경으로 시끌벅적 관객의 웃음을 끌어낸다.

척박한 환경 속에서도 연극을 천직이라 여기며 30년 외길 인생을 살아온 제주의 참 연극인 강상훈 극단세이레극장 대표를 만나기 위해 극단을 찾았다.

- 한 달여 일정으로 ‘B언소’ 작품을 소극장에서 공연하고 있는데, 어떤 작품인가.
“각각 독립된 장면들로 구성된 일종의 ‘연극 꼴라쥬’다. 각각의 장면이 하나의 짤막한 극으로 완성되고, 동시에 서로 분자구조 같은 연결을 가지고 통합된다. 어느 번잡한 도시의 공중변소가 무대 위에 올려 진다. 남자용 공중변소, 무대 뒤쪽에 똥칸이 넷, 객석을 향해 무대 앞으로 소변기들이 있다.

세상의 변소 같고 쓰레기 같은 일들이 화장실에서 벌어진다. 볼일 급한 두 남자의 똥칸 앞에서의 다툼, 자신의 무능함에 지친 술 취한 가장, 습관성 장염 환자와 욕심 없는 남자, 북에 있는 땅 때문에 통일을 기다리는 사람, 변소의 낙서, 그리고 인질극 등의 장면들로 구성된 풍자적 코미디다.”

-도내 연극계의 산증인으로 알고 있다. 현재 제주연극 어떤가.
“현장을 떠나지 않고 작업을 계속해 와서 그런 말을 듣는 편이다. 제주에 극단이 탄생한지가 한 30년이 됐다. 그 전에는 아마추어 극회와 학생예술제 연극 등이 전부였고 극단의 모습을 띤 것은 지난 1978년 창단한 ‘극단이어도’라고 할 수 있다. 이때부터 등록된 단체에 의해 제주에서 정식 공연이 이뤄졌다.

제주 소극장의 형태는 대략 1980년대 ‘수눌음’극단의 ‘카페동인’을 그 시발점으로 볼 수 있을 듯하다. 하지만 전문극장이라기보다는 카페식극장이라고 할 수 있는 공간이었다. 어쨌든 소극장연보에 그 이름을 올리는데 무리수가 있기는 하지만 그 의미는 크다고 볼 수 있다. 그 후 많은 단체들이 자체 소극장을 만들어 운영해 왔다. 하지만 운영난으로 폐관하고 현재는 민간소극장 ‘세이레’와 ‘예사랑’, ‘간드락소극장’ 등 3곳만 남아 있다. 그나마 이들 단체들도 모두 자금난을 겪고 있어 안타깝다. 서귀포지역에는 현재 활동하고 있는 연극단체가 전혀 없는 실정이다.”

-제주에서 활동하고 있는 연극인은 몇 명 정도 되나
“협회에 가입돼 있는 회원들은 45명 정도다. 하지만 이분들이 모두 왕성하게 활동하고 있지는 못하다. 회원으로 가입돼 있으면서도 직장에 얽매어 있기 때문에 자신의 삶의 중심이 직장 쪽에 있는 분들은 거의 연극출연을 하지 못하고 있다. 간간히 스텝으로 참여하거나 1년에 한편 정도 무대 출연하는 것에 만족하고 있는 실정이다. 다시 말하면 상설적으로 출연하는 경우는 거의 드문 편이고, 그런 만큼 현재 제주지역 극단은 동호회 수준의 극단이라고 할 수 있다. 현 상황을 넘어서는 게 우리들에게 주어진 과제라고 생각한다.”

-생업으로 삼고 있는 도내 연극인들의 직업도 다양할 것 같은데…
“제주뿐만 아니라 육지부(서울) 연극인들도 투잡, 쓰리잡 하는 경우가 많다. 왜냐하면 공연스케줄이 잡히기 전까지는 어쨌든 자기의 삶을 유지해야 하기 때문이다. 아무리 연극판이 좋아 이 속에서 계속 활동한다고 하더라도 결국 생계는 자신이 해결할 수밖에 없는 게 이쪽 세계의 현실이다. 그래서 회원 대부분이 아르바이트를 하거나 택시기사·건설업종사자·보험설계사로 일을 하고 있다. 연극과 관련된 조명스텝이나 무대스텝으로 일하는 경우도 있다.”

-30년 동안 오직 연극만을 고집해온 이유가 있을 텐데…
“사실 아주 우연한 기회에 연극을 시작하게 됐다. 대학 1학년 때까지도 말수가 별로 없었던 자신을 연극판으로 이끈 이가 대학선배다. ‘극단이어도’에서 연극을 시작(1982년)하게 된 게 엊그제 같은데 어느덧 30년이란 세월이 흘렀다.

연기라는 세계는 인간의 삶을 축소해서 보여주는 세상이다. 그래서 참 마음에 든다. 너무나 매력적이다. 이게 전업 연극인으로서 연극만을 고집하게 한 원동력이 됐다. 연극은 모든 인간 군상들의 모습들을 가감 없이 보여줄 수 있다. 혼자만 할 수 있는 작업도 아니다. 그렇다 보니 때로는 의견조율이 잘 안 돼 다투기도 하고… 심한 경우는 서로 등을 돌려 안보는 일도 있다.
 
공통의 목적을 가진 사람들이 모여서 하는 작업들, 그리고 그러한 과정 속에서 흘리는 땀방울, 진한 감동, 관객의 환호는 연극인이 아니면 느낄 수 없는 삶의 소중한 자산이다. 이 같은 모든 것들이 연극무대에 오래도록 서게 하는 힘이 되고 있다.”

 
-제주 소극장운동을 말할 때 ‘극단세이레극장’을 빼놓을 수 없다. 어떤가.
“극단세이레는 지난 1992년 만들어졌다. 창단 후 지방 연극의 살길은 소극장운동임을 깨닫고 소극장을 개관했지만, 재정상의 어려움 등으로 인해 그 후 문닫기와 열기를 여러 차례 반복했다. 처음 문을 연 소극장은 1993년 제주시 동문로 뒷골목이었는데, 그 당시 ‘극단자유무대’와 통합하면서 자유무대소극장을 인수해 ‘세이레극장’으로 개명했다.

초기에는 육지의 극단을 초청해 전국 소극장 축제를 개최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쳤지만, 운영난에 시달리다 얼마 견디지 못하고 문을 닫았다. 이후 제주시 용담동으로 거처를 옮겼지만 경제적 한파와 전국적인 연극 활동의 침체로 인해 암울한 시기를 보냈다. 그러다가 신제주로 자리를 옮겼는데, 이 역시 얼마가지 않아 건물을 비워줘야 하는 상황에 처했다. 그렇게 떠돌다 지금의 연동사거리에 자리를 잡은 게 2007년이다.

개관-폐관, 재개관-폐관, 재재개관의 악순환을 거듭하며 얻은 지혜가 소극장을 공연장뿐만 아니라 예술교육센터로 활용하는 방안이었다. 현재는 소극장을 ‘세이레아트센터’로 개명해 60석 규모의 소극장 1관과 2관, 그리고 북카페를 갖춰 운영하고 있다. 1관은 어린이극장 공연장과 단원 연습실, 예술교육장소로 활용하고 있고, 2관은 한달 이상의 장기공연장으로 운영되고 있다.”

-주요 작품을 소개한다면…
“‘위기의 여자’(시몬느 드 보봐르 원작)를 창단 공연작으로 무대에 올린 이래 ‘배비장전’ ‘콜렉터’ ‘굿나잇 마더’ ‘백조의 노래’ ‘아일랜드’ ‘수업’ ‘하녀들’ 등 셀 수 없이 많은 작품들을 공연했다. ‘제주바다는 소리쳐 울 때 아름답다’ ‘늙은 부부 이야기’ ‘막차 탄 동기동창’ ‘북어대가리’ 등은 그동안 치러진 전국연극제 제주도 예선대회 수상작들이다.”

-연극인으로서 앞으로의 계획은 뭔가.
“오랜 세월 연극을 하다 보니 소극장에 대한 소중함을 알게 됐다. 소극장은 연극 태동의 산실이다. 다양한 군상들을 실험해 낼 수 있고 다양한 연극사조를 보여줄 수 있는 창조적 공간이다. 그래서 너무 소중하고 필요하다. 소극장을 운영해야겠다고 마음먹은 것도 그 때문이다. 돈을 벌 생각이었으면 처음부터 소극장을 하지 않았을 것이다. 돈과는 무관한 연극에 대한 나의 순수한 열정의 발로다. 소극장들이 있음으로 해서 연극문화가 꽃피워질 수 있는 건 분명한 사실이다. 이번 소극장은 개인적으로 네번째다.

소극장 문화를 꽃 피우고 싶다. 이 소극장이 각종 공연뿐만 아니라 예술교육도 병행해서 할 수 있는 그런 장소로 운영됐으면 좋겠다. 그걸 위해 북카페도 오픈했다. 연극인은 물론 타 장르의 많은 예술인들이 자주 찾아와 차를 마시며 담소를 나누는 사랑방이 됐으면 하는 바람이다. 또한 좋은 작품들이 단명하지 않고 소극장을 통해 오랜 기간 올려 지도록 하는 게 개인적 소망이자 계획이기도 하다.”

인터뷰를 마친 강 대표는 오후 연극무대 출연 준비를 해야 한다면 서둘러 자리를 떴다. 그에게 있어 연극은 아직도 도전의 대상이자 삶인 듯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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