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주출신 고건혁씨 ‘붕가붕가 레코드’ 대표로 인디계 주름잡는 밴드들 키워내

㈜제주바람 홍보이사로 제주에서 신개념 문화투어 기획하기도

[제주도민일보 김혜림 기자] 무표정한 얼굴로 무심한 듯 싸구려 커피를 노래하던 '장기하와 얼굴들'. 그야말로 외계인 같은 등장이었다.

특이한 컨셉으로 기존의 가수들과는 전혀 다른 매력으로 대중을 사로잡았다. 장기하와 얼굴들이 무한 인기몰이를 하던 그 때,‘곰사장’이라 불리는 한 남자가 그들의 뒤에서 흐믓한 미소를 짓고 있었다. 제주 출신의 고건혁씨다.

'곰사장'이란 애칭으로 통하는 고건혁씨는 10대에 밴드를 했지만 막상 밴드를 해보니 음악에 재능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동시에 기획과 홍보에 재능이 있다는 사실도 깨달았다.

그 후 그는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을 위해 내 친구들은 음악을 놓지 않고 계속 할 수 있게 하고 싶다는 생각으로 대중에게 음악을 전달하는 일에 뛰어들어 장기하와 얼굴들,눈뜨고 코베인 등의 인디밴드들이 속한 ‘붕가붕가 레코드’의 곰사장님으로 변신했다.

그런 그의 고향이 바로 제주다. 그리고 다시 새로운 도전을 제주에서 시작하려 하고 있다.

▲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인터뷰] 붕가붕가레코드 고건혁 대표

▲‘지속가능한 성장’도 아닌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다. 재밌다. 의미는?

대중음악을 한다고 하면 흔히 두 가지 이미지를 떠올린다. 대중이 좋아하는 음악을 해서 스타가 돼 떼돈을 벌거나,남들이 들어주든 말든 골방에 틀어박혀 돈 벌기는 포기한 채 자기만의 음악을 하는 것.

굳이 얘기하자면 우리도 후자에 가깝긴 하지만 돈을 벌기는 벌어야겠다는 생각을 했다. 어쨌든 기본적인 수준의 소득은 있어야 살 수 있으니까.

그런데 만약 스타가 되려고만 하지 않는다면 필요한 만큼만 벌자고 목표를 세운다면,자기가 하고 싶은 음악을 하면서도 가능하지 않을까 생각했다. 그리고 그래야만이 오랫동안 음악 활동을 지속할 수 있지 않을까. 이러한 고민과 의지를 담은 모토가 바로 지속가능한 딴따라질이다.

▲ 음악을 직접 하고 싶지는 않나.

고등학교 때까지는 그런 생각을 했지만 재능이 없다는 사실을 깨달았다. 노래를 아주 못하는 음치인데다가 마땅한 내면도 갖지 못한 것은 그렇다고 쳐도 어떤 악기건 간에 연습을 하기가 너무나 싫었다.

더욱이 장기하를 비롯해 음악적 재능이 출중한 친구를 만나게 된 이후에는 완전히 포기했다. 회사가 망하게 되면 그때는 생각해 볼지도 모른다.

▲ 장기하와 얼굴들. 붕가붕가레코드 제공.
▲ 장기하와 얼굴들이 엄청난 관심을 받았다. 기존 대중가수들과는 다른 '신선함' 혹은 '특이함' 이라고 생각한다. 어떻게 만들어지게 됐나.

재능이 칠할에 운이 삼할이다.

일단 칠할은 장기하의 재능이다. 첫 히트곡인 ‘싸구려 커피’를 생각해 보면 적당한 위트와 공감을 살 수 있는 구체적인 상황이 담긴 가사,새로우면서도 음악적으로 치밀하게 계획된 말하듯 노래하기 등 여러 가지 요소들이 잘 어우러져 있었다.

거기다 장기하가 가진 퍼포먼스 감각이 새로운 것을 찾고 있던 미디어에게 좋은 소재를 제공해준 것 같다.

나머지 삼할은 장기하와 얼굴들 이외에 여러 재능 있는 인디 음악인들이 등장하면서 전반적인 사회의 관심이 증가하는 등의 환경적 요인이었을 것이다.

▲ 이번에 설립한 ‘제주바람’에서 올레길과 공연 강연이 2박 3일간 이어지는 신개념 문화투어를 예정하고 있다. 기획은 어떻게 하게 됐나.

제주에서 태어나서 고등학교까지 살다가 육지로 올라간 게 10년이 넘는다.

그 사이 명절 때만 왔다갔다 하다 보니 집 이외의 다른 곳에 대한 감각이 전혀 없는 상태였다.

그러던 중 제주에서 인디 레이블을 운영하는 선배의 제안으로 소속 팀을 데리고 내려왔고,그 때 제주 이곳 저곳을 돌아다니면서 제주가 갖고 있는 아름다움과 그 사이 발전한 인프라를 체감하면서 여기서 뭔가를 할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마침 제주에서 새로운 인디 음악을 만들고자 마음을 먹은 선배들도 있었고 그 선배들과 많은 고민을 하게됐다.

구체화시키는데 영감을 준 요인들이 여럿 있다. 하나는 부산 국제 영화제였다. 부산이라는 도시를 아시아 영화의 중심으로 만든 것처럼 제주를 아시아 음악의 중심으로 부상시킬 수 있는 페스티벌을 만들고 싶다.

또 미국 텍사스에서 열리는 SXSW였다. 음악 페스티벌로 시작해서 영화와 IT를 흡수하며 현재 전세계적으로 가장 핫한 페스티벌로 떠오른 이 ‘멀티 페스티벌’이 한국 페스티벌의 미래라고 생각했고 그와 비슷한 것을 한국으로 갖고 들어오고 싶었다.

물론 역량도 그렇고 조건도 감안했을 때 이런 페스티벌을 지금 당장 제주에서 만들 수는 없다. 그래서 그에 대한 디딤돌로 월마다 하는 행사를 생각했다.

거기서 제주가 가진 독특한 면을 살려보려 하니 자연스레 ‘관광’이라는 말이 떠올랐다. 하지만 일반적인 관광이 아닌 ‘생태’를 중심으로 한 관광. 그렇다면 공연과 생태여행이 합쳐진 아이템이라면 어떨까 생각하게 된 것이다. 그렇게 해서 만들어진 것이 ‘Great Escape Tour’다.

▲ 제주출신 세 명이 의기투합했다. 제주를 선택한 이유는. 단순히 고향이라는 점이 아닌 다른 의미가 있을 것 같다.

일단 어디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생태를 갖고 있다는 게 가장 매력적이었다. 더불어 최근 저가 항공 등의 활성화를 통해 관광객이 계속 늘고 있다는 점도 기회로 여겨졌다.

그런 양적인 성장에 비해 관광 콘텐츠의 질적인 발전은 더디다는 느낌 역시 뭔가를 만들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더욱이 제주에 근거를 두고 있는 젊은 콘텐츠 기업들이 이와 같은 기획에 관심을 보이기도 했고,장기적으로는 동아시아의 중심지로서 국제적인 네트워크 허브 역할을 할 수 있다는 지정학적 위치도 중요했다.

하지만 결국엔 고향이기 때문이다. 새로운 산업 기반을 만들어 제주에 살고 있는 이들이 먹을만하고 즐길만한 뭔가를 만들고 싶었다.

▲ 붕가붕가레코드 소속의 인디밴드 '눈뜨고 코베인'. 붕가붕가레코드 제공.
▲ 제주에서 인디밴드나 뮤지션들이 내려와 공연을 하는 일이 부쩍 늘었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노력만큼 많은 관심을 받지 못한다. 원인이 무엇일까.

장르적으로 편중된 미디어 환경 때문이다.

한국에서 가장 영향력을 가진 것은 공중파 TV와 포털 사이트라고 했을 때,결국 거기서 다루는 음악은 대부분 아이돌에 국한된다.

그나마 수도권 지역만 해도 홍대 앞 같이 다양한 음악이 존재하는 공간에 대한 접근성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인디 음악이라는 것을 인지하고는 있지만,거기에 접근할 수 없는 제주를 비롯한 비수도권 지역 거주민들은 인디 음악의 존재 자체를 모를 수밖에 없다.

결국 필요한 것은 시간이다.

수준 높은 인디 음악인들이 꾸준하게 내려온다면 제주도민들에게도 인디 음악의 존재가 인지가 되고 3만원 정도의 돈을 내고 공연을 보는 문화도 만들어지지 않을까 하는 생각이다.

▲ 요즘 가장 생각하거나 고민하고 있는 것은.

‘Great Escape Tour’에 관객이 많이 들었으면 좋겠다.

제주 현지의 인식에 비춰봤을 때 티켓 값이 비싸다는 얘기가 들린다. 그에 대한 고민을 많이 했다. 하지만 이 정도 가격을 받지 않으면 도저히 운영이 안 된다.

더 이상 제주에서 공짜로 공연을 보는 문화가 사라졌으면 하는 바람도 있고,돈을 내고 공연을 보는 문화가 만들어져야 문화의 발전도 가능한 것이다.

아무쪼록 많은 제주도민들이 함께 할 수 있으면 좋겠다.

 *신개념 제주 문화투어 ‘Great Escape Tour in jeju Island(GET)’행사는 공연+여행+강연이 결합된 문화투어다. 그 첫번째 행사가 오는 18일부터 20일까지 제주도 전역에서 개최된다.

2박 3일동안 '델리스파이스'를 비롯한 인디밴드의 공연을 즐기거나 그들과 함께 올레길을 산책하는 등 다채로운 프로그램에 참여할 수 있다. 자세한 사항은 GET홈페이지(
www.getinjeju.com)를 참고하면 된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