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봉수 /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

▲ 강봉수

초등학생을 대상으로 하는 ‘제학력갖추기평가’의 실시여부를 두고 다시 논란이 일고 있다. 제주도의회의 권고에 따라 제주도교육청은 관련 용역을 발주한 바 있고, 그 결과가 나왔다. 용역결과에 힘을 얻은 도교육청은 발 빠르게 TF팀을 꾸리는 등 이 평가를 다시 추진할 계획인 것 같다. 그러나 도의회 이석문 교육의원 등이 용역결과의 부실과 문제점을 지적했고, 전교조제주지부도 도교육청의 일제고사 재추진 계획에 제동을 걸고 있다.

일찍부터 제학력갖추기평가의 문제점과 그것의 폐지를 주장해온 나로서는 이처럼 재 논란이 일고 있는 상황이 안타까울 뿐이다. 나도 도교육청에 제출된 관련 용역결과보고서를 검토해 보았다. 이석문 의원이 지적한대로 보고서는 전수평가를 전제로 한 제학력갖추기평가의 타당성을 정당화하는 짜맞추기식 결과라는 인상을 저버릴 수가 없다. 용역발주와 관련해 도의회가 권고한 부대의견 중에는 전수평가를 지양하고 표집평가를 고려하라고 했다. 그러나 도교육청의 과업지시서가 잘못된 것인지 아니면 연구자들이 일부러 누락시킨 것인지 모르겠지만, 보고서에는 전수평가와 표집평가의 장단점을 분석하는 대목이 전혀 반영되지 않았고, 전수평가의 타당성을 옹호하는데 유리한 자료와 사례만을 제시하고 있다.

용역보고서는 제학력갖추기평가가 진단평가, 국가수준의 학업성취도평가, 단위학교의 다양한 평가 등과는 그 취지와 성격이 다르기 때문에 실시해도 된다는 주장을 펴고 있다. 학부모는 자신의 자녀가 학교에서 어느 정도의 학업성취도를 보이고 있는가를 알 권리가 있으며, 교육당국과 학교는 이를 이행할 책무를 지니고 있다는 것이다.

나도 이점을 부인하지 않는다. 문제는 정작 시험의 당사자인 아이들의 입장은 무시되고 있다는 점이고, 알권리와 책무를 충족시키는 방식이 제학력갖추기평가여야만 하는가 하는데 있다. 평가들의 취지에 상관없이 너무 잦은 평가로 이미 제주의 아이들은 시험에 찌든 학습노예가 돼 있다. 특히 보고서는 치열한 고입경쟁구조에서 비롯되는 제주교육의 현실을 반영하지 않았다.

전수평가와 표집평가의 장단점에 대한 인식이 전제되지 않은 채 실시된 설문조사도 문제지만, 제학력갖추기평가에 대해 왜 학부모들의 찬성률이 높은 반면 일반교사들은 반대하고 있을까? 왜 이 평가가 자녀의 학력수준을 파악하는데 도움을 주고 학습태도 형성에 긍정적이라고 학부모들이 여기겠는가? OECD가 발표했듯이, 우리 아이들의 공부에 대한 흥미도는 세계 최하위이다. 우리아이들은 자발적으로 공부하지 않는다. 이를 학부모들도 교사들도 알고 있다. 그래서 시험이라도 치러야 공부를 한다는 인식이 저간에 깔려있다. 학력수준을 알고 싶어 하는 학부모들의 심정에는 우리 아이가 앞으로 입시의 첫 관문인 고입의 문턱을 넘어설 수 있을 지 미리 점검하려는 욕망이 자리하고 있다. 진정한 교육적 의미에서 학력제고와 학습태도 형성을 위해서라면 일제고사식의 평가를 옹호할 학부모가 없을 것이다. 우리 아이들과 학부모들을 그렇게 만든 책임은 교육당국에 있다.

교장과 교감들도 제학력갖추기평가에 긍정적이라고 한다. 그들은 관리자이다. 상위관리자인 교육감의 시책에 대놓고 반대할 교장과 교감이 계실지 의문이지만, 그들도 관리자이기에 자기학교 아이들의 학력제고에 책무가 있고 교사들에 대한 관리수단도 필요하다. 학력제고의 방법은 다양할 수 있다고 본다면, 제학력갖추기평가와 같은 일제고사는 가장 손쉽게 교사들을 다잡을 수 있는 수단이 될 것이다.

대부분의 교사는 이런 식의 평가에 반대하고 있다. 학생들만 평가받는 것이 아니라 교사들도 평가받고 있기 때문이고, 그들의 책무를 저버리려 하는 것이 아니라 정말 이 시험이 정상적 교육과정의 운영을 허물고 있기 때문이다.

제주도교육청은 제학력갖추기평가가 제 학년에 갖춰야할 학력을 제고하기 위한 것이고, 제 학력에 미달한 아이들을 돕기 위한 것이라고 강조하고 있다. 아이들의 학업성취정도를 가장 잘 알고 또 그들의 성취를 높일 수 있는 사람은 학생을 직접 가르치는 교사들이다. 도교육청은 교사들에 대한 관리와 통제에 앞서 아이들의 학업성취도를 높일 수 있는 방안을 그들과 논의하고 그들에 대한 지원책을 강구해야 마땅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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