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문권 <천주교 제주교구 신부>

조선 후기 실학자였던 다산 정약용은 28세에 문과에 급제, 여러 벼슬을 지내다 천주교 박해가 있던 신유교난(辛酉敎難)에 연루돼 장기 유배된다. 그 후 다시 황사영 백서사건에 연루, 강진으로 유배되어 40세부터 18년 동안 유배생활을 한다.

그는 유배시기 동안 왕성한 저술활동을 하면서도 일상의 편지들을 통해 지인들과 교류하고 또한 아버지로서 자녀들의 가정교육에도 소홀하지 않았다. 특히 정약용은 자신을 유배 보낸 세력들에게 간청하여 유배에서 풀려나게 하겠다는 아들의 편지에 대해서 다음과 같은 답장을 써 보냈다고 한다.

“천하에는 두 가지 큰 기준이 있는데 옳고 그름의 기준이 그 하나요, 다른 하나는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이 두 가지 큰 기준에서 네 단계의 큰 등급이 나온다.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이고, 둘째는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경우이다. 세 번째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이익을 얻음이요, 마지막 가장 낮은 단계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이다.”
 

정약용의 관점으로 본 제주 해군기지


지난 7월 15일 강정해군기지 관련 행정소송에 대해서 ‘국방·군사시설사업 실시계획 승인처분은 무효지만 변경승인처분은 적법하다’는 법원의 판결이 있었다. 판결내용이 매우 어렵다. 결론적으로 강정해군기지에 대해 그동안 제주도정과 해군이 강조했던 절차적 정당성은 부당한 것이고, 해군의 기지건설 실시계획은 정당하다고 판단한 것이다. 실시계획 승인이 무효인데 변경승인은 적법하다는 것은 이해하기 힘들지만, 이 판결로 인해 강정해군기지건설에 어느 정도 협상의 시간을 벌었다는 것이 중론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약용 선생이 아들에게 보낸 편지에서 해군기지 문제에 대한 제주도민의 판단기준을 찾는 것은 어떨까?

정약용 선생이 전하는 천하의 두 가지 큰 기준에서 옳고 그름을 보자. 강정에 해군기지 추진과정은 판결에서 보듯이 옳게 한 것이 아니라 그르게 한 것이다. 김태환 전 제주도정과 해군 그리고 제8대 제주도의회가 주민을 배제하고 강압적으로 밀어붙이기식으로 한 것이라 해도 과언이 아니다. 많은 제주도민들이 주민들과 소통하여 절차를 밟고 정당하게 해군기지 건설을 해야 한다고 요청할 때마다 도정과 해군, 도의회는 불통의 연속이었다.

또 다른 기준은 이롭고 해로움에 관한 기준이다. 해군이 언급하는 안보문제는 국가발전의 근본이 된다. 하지만 현재 대한민국은 제주해역보다는 서해가 국가안보를 수호하는데 우선순위인 것 같다. 선택과 집중이라는 대통령의 말씀을 굳이 따르지 않더라도 현재 한반도의 위기는 제주지역이 아닌 서해바다인 것이다. 경제 발전이라는 것도 이로움의 하나이다.

하지만 경제발전은 담보하기 힘든 현실임을 증명하는 제주도의 보고서는 사장되었다. 관광지 개발이라는 이로움을 이야기하나 이 또한 결과가 불분명하다. 많은 올레꾼들이 선택하는 코스가 바로 강정지역이 아닌가.제주에 오는 올레꾼은 순수 자연이 남아있는 그곳을 걷고 싶어하지 군부대를 보고 싶어하는 것은 아닐 것이다. 오늘도 올레꾼들은 ‘해군의 땅’이라 강조하는 철조망으로 둘러쳐있고 커다란 철문으로 막혀버린 해안선을 걷지 못하고 동네 마을길로 걸어다니고 있다.


옳음 고수하고 해 입는 길이라도 택해야


정약용 선생이 전하는 옳음과 이로움이, 이상적인 모습만이 아닌 해군기지건설에서 현실화되었으면 한다. 그동안 김태환 전 도정과 제8대 제주도의회, 해군이 보여준 모습은 정약용 선생이 전하는 그름을 추종하고도 해를 보는 경우였다. 정당한 절차를 밟는 옳음을 선택했다면 아마 해군기지건설이 어느 정도 이루어지는 이로움도 있었을 것이라 생각한다.

우근민 도정과 제9대 제주특별자치도 도의회에서는 옳음을 고수하고 이익을 얻는 것이 가장 높은 단계를 해군기지건설에서 보고 싶다. 이것이 불가능하면 차선책으로 옳음을 고수하고도 해를 입는 것을 택해야 할 것이다. 그 이하로는 생각하고 싶지 않다. 최소한 중간은 해야 할 것 아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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