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강봉수 / 제주대 윤리교육과 교수·제주교육희망네트워크 대표

▲ 강봉수

“키워드로 읽는 논어(論語)와 세상보기의 도(道)”라는 제하의 강의를 지난주에 종강했다. 무려 14주에 걸친 장정이었다. 종강 날엔 수강생들과 책거리 파티도 했다. 대학에서 학동들을 만나는 것과는 색다른 경험이었고, 올해 들어 가장 보람 있는 일로 기록될 것이다.

제주대안연구공동체와 제주주민자치연대로부터 일반시민을 대상으로 하는 이 강좌를 부탁받았을 때 솔직히 걱정이 앞섰다. 우선, 내가 이 강의를 감당할 수 있는가 하는 점이었다. 철학의 부재시대에 나처럼 얼치기 학자가 감동과 의미를 던지는 강의를 할 수 있을지, 최소한의 수강생이라도 확보할 수 있을지 걱정이 이만저만 아니었다.
 
둘째, 한미FTA로 농업인들이 울고 해군기지 공사강행으로 구럼비가 결단나는 제주의 암울한 현실에서 철학적 고준담론이나 하고 있어도 되는지 하는 점이었다. 강의보다는 차라리 그 시간에 강정에라도 한 번 더 기웃거리는 것이 낫지 않겠는가 하는 생각이었다.

나는 주최단체의 강요(?)를 빌미삼아 모험을 하기로 했다. 논어를 다시 읽고 6개월에 걸친 작업을 하여 강의교재를 엮어냈다. 두렵고 설레는 심정을 안고 수강생을 만나러 갔다. 놀랍고 떨렸다. 연령층을 가리지 않은 50명이 넘는 수강생들이 나를 기다리고 있었기 때문이다. 3월 개학이 되면서 수강생이 줄기는 했지만, 14주 동안 펼쳐진 가르침과 배움의 ‘교학놀이’는 열기가 식을 줄 몰랐다. 무엇이 그들로 하여금 이 자리로 오게 하고 열기를 뿜게 했을까? 결단코 얼치기 학자 때문이 아니다. 그들은 마치 철학과 인문학에 굶주린 사람들처럼 보였기 때문이다.

철학이 시대적 아픔의 산물이듯이, 한국과 제주가 낳은 아픈 현실이 철학에 대한 배움의 갈망으로 표출된 것이 아닌가 싶다. 민주주의가 퇴행하고 자유가 억압당하고 인권이 유린되는 야만의 시대, 비정규직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일터에서 퇴출되어 하루아침에 삶의 토대가 송두리째 무너지는 비탄의 시대, 강정에서 단적으로 보여주듯 지역주민의 의사는 무시된 채 온갖 불법과 탈법만이 횡행하는 눈물의 시대, 그야말로 도가 무너지고 예악형정이 붕괴된 이 시대가 철학적 반성을 요구하고 배움의 갈망을 분출시킨 것이다. 만족스럽진 않지만 그러한 반성과 갈망이 수도권과 제주에서 국회의원 선거로 이어졌고, 악의 시대를 심판했다고 여긴다.

우리가 갈 길은 멀었다. 단적으로 ‘월가를 점령하라’는 구호에서 보듯이, 신자유주의와 금융자본주의에 대한 세계문명사적 반성이 전개되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한국사회에서는 더욱 교묘한 방법으로 기존체제의 공고화를 위한 기획들이 시도될 것이기 때문이다. 더욱이 문제는 기존시스템이 교육을 통하여 재생산되고 있다는 점에 있다. 학벌이 신분을 좌우하고, 경제력이 그 학벌을 뒷받침한다. 애오라지 돈이 삶의 척도가 되고 경쟁만능의 교육시스템을 정당화한다. 그래서 우리 학교에서는 왜 사는지, 무엇이 좋은 삶인지, 교육과 배움이 왜 필요한지를 결코 묻지 않는다. 국가적 수준의 획일화된 교육과정으로 그들의 시스템에 맞는 아이들을 재생산할 뿐이다.

우리 교육은 철학하지 않는다. 아니 철학할 기회를 모조리 박탈할 뿐이다. 인문사회과목도, 그나마 철학에 가까운 도덕과목도 애오라지 진학을 위한 박제된 지식교육의 일환일 뿐이다. 학교폭력 등 뭔가 문제가 있을 때마다 인성교육을 강화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이지만 그것이 진정한 철학교육을 하자는 것인지 개념도 애매할 뿐더러, 그 목소리조차도 메아리 없는 구호로 그칠 뿐이다. 우리 학생들은 삶에 대해 주체적으로 질문해 본 적이 없다. 이러한 사정이 대학에 온다고 달라지는 것도 아니다. 대학생들도 온갖 스펙 쌓기와 박제된 지식만을 외고 있을 뿐이기 때문이다.

논어 수강 열기에서 보여준 철학적 반성과 배움의 열기는 계속 돼야 한다. 주체적으로 자기 삶을 반추하는 기회로 삼아야 한다. 나아가 그러한 고민이 악을 산출하는 시스템을 무너뜨리기 위한 결기로 이어져야 한다. 얼치기 학자의 논어강좌를 수강해 준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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