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김태일 / 제주대학교 건축학부 교수

▲ 김태일

요즈음 영화 ‘건축학개론’이 회자되고 있다. 건축학에 대한 개략적인 내용을 소재로 한 영화가 아니라 첫 사랑의 이야기를 집이라는 매개체를 통해 전개해 나가는 영화이다.
영화에서는 여러 가지 이야기를 파편적으로 던지고 있다. 스스로 마음을 열지 못하고 항상 여린 마음으로 바라만 보며 희망과 좌절을 경험하는 젊은 남녀대학생의 첫사랑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고 현대 한국사회의 가족 이야기를 담고 있기도 하다. 또 다른 측면에서는 우리의 일상적인 삶의 무대인 집, 그리고 도시의 이야기를 함축적이고 서사적으로 담고 있기도 하다.

두 남녀 주인공은 좋아하지만 그리고 사랑하지만 스스로 말하기를 어려워했고 상처받기가 두려워 스쳐지나가는 만남으로 끝나게 된다. 소통의 부족은 사람의 마음을 멀어지게 하듯이 소통 없는 건축은 삭막하고 건조한 공간과 삶이 될 수밖에 없음을 집을 만들어 가는 과정에서 잘 묘사하고 있다고 생각된다. 화려한 도시 뒤에 존재하는 서민들의 생활공간과 재개발, 그리고 한적하고 아름다운 제주도의 농가는 우리들 삶의 일상이기도 하고 도시건축의 문제점을 단편적으로 드러내고 있기도 하다.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은 과거의 흔적과 과거의 기억을 담고 있을 때 가능하다. 그리고 좋은 도시, 좋은 건축은 소통의 과정속에 형성돼 가는 것이다. 소통은 이해당사자간의 소통뿐만 아니라 자연환경과의 소통, 역사적 흔적과의 소통, 오랫동안 축적돼 왔던 지역사람들의 흔적과의 소통 등을 의미하는 것이다.

사랑하는 여자 주인공을 위해 만들었지만 전해주지 못했던 미래의 집 모형과 도면은 소중한 사랑의 추억이자 희망의 상징물이었다. 굳이 건축과 관련지어 표현하자면 자신이 살아왔던 삶의 공간을 새롭게 들여다보며 과거의 이야기, 과거의 추억을 뒤돌아보는 상징물이었다고 할 수 있다. 첫 사랑·첫 키스·첫 아이·첫 직장·첫 보금자리. 처음 이사한 곳 지역(도시). 이 모든 것이 우리들이 살아가면서 경험하게 되는 귀중한 추억들이다. 누구나가 그러하듯이 첫 번째의 경험이기 때문에 특정 공간과 장소, 건축과 도시에 대해 소중하게 그리고 강력하게 기억하는 경향이 있다. 사람은 시간이 흐를수록 나이가 들수록 과거를 뒤돌아보며 아련한 추억을 먹으며 살아간다. 그래서 더욱 추억이 깃든 장소에 대해 기억하고 설레는 마음으로 다시 찾아보고 싶어 하는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살아가는 삶의 공간속에는 추억으로 남을 수 있는 장소와 건축이 있는 것인가? 불행하게도 우리의 도시와 건축에는 소통하려는 작업, 추억의 흔적을 담아두고 남기려는 노력과 치밀한 계획이 없다. 그러니 그곳에서 살아가는 사람들은 애착을 가질수 없는 것이다. 도시의 이곳 저곳을 떠돌아다니는 유목민과 같은 삶을 살아가는 것이다.

영화 ‘건축학 개론’ 의 말미는 슬프지만 그래도 희망을 이야기하고 있다. 학창시절 약속한 집을 짓고 그 집에서 아련한 아픔의 추억을 희망으로 바꿔 가며 살아가는 메시지를 영화가 전하고 있듯이 우리의 도시건축도 아직은 희망이 있다고 우리에게 메시지를 전하고 있다. 우리는 미래를 위해 어떠한 도시건축을 만들어 가야하는 것일까? 추억담기·흔적 지우기 않기·소통하기·사람들의 생활담기. 제주의 도시건축이 가야할 방향을 제시하는 것이다.

저작권자 © 제주도민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