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청명, 한식 무렵엔 오름 가득 사람 꽃이 핍니다[칼럼] 김동섭 / 문학박사·항일기념관장
▲ 김동섭

낮과 밤의 길이가 같다는 춘분(春分)이 지났습니다. 저녁 무렵 부쩍 늘어난 일몰시각은 퇴근길도 라이트 없이 달릴 수 있을 만큼, 정말 길어진 것을 느낄 수 있는 때입니다. 그러나 이제부터는 낮의 길이가 더 길어만 져 가겠지요? 하지만 심한 바람과 비 날씨는 오는 계절을 시샘이라도 하는 듯 오늘도 그냥 지나치지 않고 차갑고 매서운 바람이 미밋동산을 안은 광장을 쩌렁쩌렁 휘감아 돌아들고, 18.8km의 먼 발길 떠나는 19코스 올레꾼들의 발걸음을 더욱 종종 걸음을 치게 하는 시각입니다. 이처럼 꽃샘바람의 심술이 비행기도 막아서고, 크루즈선도 돌아서도록 했지만, 그래도 찬란한 봄의 향연이 코앞에 와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습니다. 머지않아 오동나무에 꽃이 피고 종달새가 지저귀며, 먼 산 아래에서 무지개를 볼 수 있는 때가 됐기 때문입니다.

청명 무렵, 나라에서는 식목일을 정해 나무심기를 권장하고 있습니다. 또한 예부터 한 해의 농사를 시작하는 때로 여겨, 농사에 필요한 여러 가지 일들을 준비하기도 했습니다. 또 이 무렵에 오는 한식(寒食)과 혼동을 일으키는 경우가 많았으므로 ‘한식에 죽으나 청명에 죽으나’라는 말이 생겨나 쓰여 오기도 하는 때입니다. 우리 제주에서는 선묘(先墓)를 단장하고 그간 하지 못한 손 볼 일들을 행하는 때로 여겼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이 무렵이 되면 우리 제주에 있던 ‘신구간’처럼 모든 신(神)들이 하늘로 올라가서 어떤 일을 해도 화를 입지 않는다고 믿었기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래서 인지 이 시기 우리 제주는 묘제(墓祭)를 지내는 사람들로 오름 가득 자리한 산담 만큼이나 많은 사람들로 가득하게 됩니다. 특히, 묘제는 오대(五代) 자손에서 지제(止祭)된 이후의 조상에 대한 제의를 가리킵니다. 이러한 묘제는 보통 춘추단절이라 해서 봄 2월과 3월 그리고 10월에 지내게 됩니다. 그리고 묘제의 날짜는 그 선조의 생일을 기해서 지내는 수가 많고 그 밖에 종친들끼리 의논해서 적당한 제일을 정하기도 합니다. 이렇게 묘제를 지내는 것은 ‘선영(先塋)의 기일 제사는 지제(止祭)했지만, 자손된 도리로서 그냥 보낼 수가 없으니, 그날 적갈 한 점, 제주(祭酒) 한 잔이라도 올린 다음 갈라먹어도 먹자’는 뜻에서라고 합니다. 이 묘제는 선묘에 가서 지내게 되는 제사로 흔히 ‘동성(同姓)은 백대지친(百代之親)’이라고 하는 것처럼 만나면 더 이상 반가울 수 없는 사이가 종친(宗親)이 중심이 돼 치루게 되는 것입니다. 이 날의 제물(祭物)은 주손이나 망인이 생전에 사재로 마련한 ‘제월전’을 사용하는 이가 준비하게 됩니다.

군위오씨 집안에서는 이 날 한 해 동안 종친회의 활동을 묘제에 참가한 많은 종친들에게 보고하고 새로운 한 해 동안에 행할 중요한 종친회의 사업을 보고하기도 합니다. 또한 화려하거나 빛나지는 않지만 고향에 살면서 많은 시간과 노력으로 선친들의 선묘를 관리하는 등 노력하는 청년들을 격려하기도 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종친으로서 사회의 귀감이 되도록 노력한 후손에게는 격려와 칭찬은 물론 학생에게는 장학금을 전달하면서 더욱 분발해 줄 것을 당부하기도 합니다.

더욱이 올 해는 총선을 치르는 해입니다. 그래서 인지 이 시각 촌음의 시각을 나누어 써도 바쁜 사람들이 있습니다. 보다 살만한 세상을 만들겠다면 한 표를 부탁하는 정당과 정당의 지역 대표들이 분주하게 시간을 쪼개며 자신이 선택돼야 함을 외치고 있는 사람들입니다.
이 시절이 지나고 나면 가녀린 이슬비의 고사리 장마가 이어지고 이슬같이 내리는 습기를 머금고 자라나는 고사리는 아침 저녁을 달리 훌쩍 자라나곤 한답니다. 특히 토질이 좋은 넓은 밭의 에움이나 자왈밭 덤불 사이에는 굵게 살찐 토실한 고사리들이 지천에 가득하게 피어나고, 새벽 어스름을 서둘러 달려온 아낙네의 부지런함에 자리를 내어 주어야만 하는 때입니다. 특히, 귀신이 먹는 채소로 제사에는 반드시 사용했던 것이었기에 제사를 모시는 집안의 아낙네들은 서둘러 깨끗한 곳을 찾아 제사에 사용할 고사리를 장만하기에 바쁜 시절이기도 했습니다.

청명(淸明), 한식(寒食)이 되면 우리 선인들은 우선 그간 신경쓰지 못했던 조상을 모신 선영(先塋)의 자리들을 손 보고, 그리고 나서 종친을 중심으로 선조에 대한 묘제를 치뤘던 것입니다. 이를 통해 피를 나눈 혈연(血緣)의 결속을 다지는 동시에, 지역과 국가에 이바지 할 수 있는 자신을 발견할 수 있도록 격려하고 독려하는 시간을 가졌던 것입니다. 더군다나 오랜 동절기동안 메마르고 건조하게 된 산하(山河)를 생각해, 화기(火氣)를 가하지 않는 음식으로 하루정도 먹음으로써 화기취급에 주의해야 했던 현실적 요구도 충족했던 지혜도 엿볼 수 있을 것 같습니다. 이처럼 우리 선인들의 삶을 통해 볼 때 자연에 대한 경외심과 5000년 역사를 통해 얻은 축적된 삶의 지혜를 엿볼 수 있을 뿐만 아니라. 혈연과 지연을 중심으로 한 효(孝)와 충(忠)은 물론, 자연과 이웃, 다른 사람에 대한 배려와 한 해 살림살이를 준비하는 자세도 읽을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됩니다.

김동섭  kds0493@jeju.g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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